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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실험을 합시다 (3 -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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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30, 2016 02:57에 작성됨.

복용 9일차

 

 

“리바운드란 건 뭐야?”

“으응, 그 전에, 이런 실험을 하게 된 계기를 말해줄게. 아마도, 카나데가 리바운드를 이해하려면 그걸 알아야 할 것 같아서.”

휴게실의 소파에 앉아, 다리를 붕붕 흔들면서 시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부터 해야 할까……카나데는, 자기혐오란 감정을 느껴본 적 있어?”

“자기혐오?”

곰곰히 생각해보았지만, 아쉽게도 나랑은 거리가 먼 단어였다. 자긍심이 넘칠 정도로 긍정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혐오에 빠질 정도로 부정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사물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싶을 뿐.

“글쎄……난 없는 것 같아.”

“냐하핫, 그게 정상이지. 으응. 자기혐오라는 건, 모르고 사는 게 좋은거야.”

언제나처럼 고양이같은 웃음을 내면서, 시키는 어쩐지 자조적으로도 보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 있지, 프로듀서가 처음엔 되게 싫었다? 아아, 물론 그 사람의 냄새는 좋아해. 그 사람이 웃는 얼굴도 좋아하고.”

“어라라? 잠깐만, 그럼 이건 싫어하는 게 아닌가?” 라고 중얼거리면서 시키는 단어를 고르듯이 미간을 모으면서 신음을 흘렸다.

“으응, 그럼 단어를 고쳐서, 나는 그 사람이 마음에 안 들었어. 매일같이 여기저기 참견하고 다니고, 이러는 게 마치 ‘난 어른이다’라고 자랑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실험을 제안했거든?”

“제안?”

“사이언티스트는 실험을 진행함에 있어 반드시 대상자의 동의를 구하지. 그게 설마 말 못하는 동식물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난 솔직히 거절할 줄 알았어. 그 실험이라는 게, 쉽게 말하면 자기 내면의식을 가지고 노는 내용이었으니까.”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아. 나한테 준 게, 그 실험의 재료다 이거지?”

시키는 박수를 치면서 ‘정답!’이라고 말한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실험을 계획한 사람이나, 그걸 또 좋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이 업계는 이런 사람들이 아니면 남을 수 없는 걸까.

“그런데, 진짜로 봐 버렸거든. 진짜 어른이라는 걸 말이야. 으응, 그런 걸 봐 버리면, 천하의 시키냥이라도 그냥 납득하는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실험은 여기서 끝! 이라는 거야.”

시키는 마치 고양이처럼 소파 위를 뒹굴뒹굴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교복 같은 디자인의 블라우스와 스커트가 말려 올라가, 여러 모로 위험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실험은 끝이지만 사람의 멘탈이라는 건 상당히 비가역적이란 말이지. 그러니까, 한번 이쪽으로 가 버리면 보통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아. 그건 카나데도 겪어 봤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러면 여기서 질문.”

그렇게 말하면서 시키는 벌떡 일어나 나를 바라보았다.

“프로듀서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카나데를 몹시 갈망했어. 그래, ‘얀데레’가 되었지. 자 그럼 여기서, 만약 프로듀서의 얀데레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그의 가치관이 원래대로 돌아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난해한 질문인걸…….”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땡땡땡~타임 오버! 그럼 정답을 말하겠습니다!”

시키는 소파 위를 헤엄치듯 꾸물거리며 나를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장난기와 웃음기가 반반씩 섞여 있어야 할 그녀의 눈동자가, 지금은 터무니없이 진지한 빛을 띠고 있었다.

“잘 들어, 카나데. 내가 카나데에게 줬던 그 약, 사실은 몇 방울만 넣으면 충분한 물건이었어. 뭐, 이 부분은 설명을 안 한 내 잘못이긴 하지만, 아무튼 프로듀서는 터무니없는 양의 약물을 먹어놓고, 그걸 7일씩이나 버틴 거야. 솔직히 말하면, 당장 시설로 데려가서 그 머리 속을 좀 열어보고 싶어. 어떻게 된 사람인지 말이야.”

‘과학자’의 얼굴로 이야기를 늘어놓는 시키를 나는 말없이 계속 바라보았다.

“이야기를 되돌려서. 자, 카나데를 갈망하던 ‘감정’ 이 사라지고, 가치관이 다시 돌아왔어. 그런데 아직 한 가지가 남아있네?”

“……기억.”

“딩동댕! 맞아.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있지. 머릿속에서 너를 가지고 논 기억, 사무실에서 너를 덮칠 뻔했던 기억, 그리고 어제의 일. 냐하하, 이거 직격탄이네.”

“무슨……의미야?”

“자, 감정이 순식간에 리셋되고, 가뜩이나 불안정한 멘탈인데, 남아있는 기억이라곤 죄다 저 따위 기억 뿐이야. 카나데가 프로듀서라면 무슨 생각이 들 것 같아?”

나는 그 사람을 떠올렸다. 우리를 지탱하는 것을 보람으로 삼고, 우리의 반짝임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듯한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 그가 우리를 짓밟고, 우리를 탐하려고 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자기……혐오…….”

정답인 모양이다. 시키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리바운드야. 자신의 기분을 정확히 모르는, 가뜩이나 불안한 상태의 정신을, 기억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거지. 그게 자기혐오. 이제부터는 정말 프로듀서가 하기에 따라 달렸어.”

부연설명이 필요했는지, 시키는 ‘아 참, 여기까지는 이미 프로듀서한테 다 설명한 부분이야?’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해?”

시키는 카나데에게 손등이 보이도록 검지와 중지를 세워 보였다.

“방법은 두 가지야. 하나는 그가 회복할 때까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것.”

먼저 중지를 접고, 남아 있던 검지를 천천히 접는다.

“나머지 하나는, 그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당사자인 카나데가 직접 덮어 주는 것.”

“상처를, 덮어……? 어떻게……?”

카나데의 질문에 시키는 쿡쿡,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카나데가 잘 알고 있을 거야. 여자잖아?”

 

 

하지만 이 회화 이후로, 프로듀서가 사무실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복용 11일차.

 

“네, 아이돌 부서의 센카와입니다. 아, 인사팀장님. 안녕하세요.”

프로듀서의 출근을 기다리던 치히로는 뜬금없이 인사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자택근무요? 프로듀서 씨가……?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할게요…….”

치히로가 수화기를 내려놓자, 사무실 안에 있던 인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한다.

“저기, 치히로 씨. 방금 무슨 얘기?”

“에, 저기, 그러니까…….”

린의 질문을 시작으로 제각기 다른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10여명의 시선을 받으면서, 치히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프로듀서 씨가 자택에서 근무를 하신대……요.”

“그럼 우리 일은?”

카렌의 질문에 치히로는 대답 대신 조용히 스케줄 보드를 가리켰다. 언제 저렇게 많은 것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달 동안은 공백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빼곡하게 스케줄이 들어차 있었다.

“하, 한 달……정도는 문제 없겠네. 아하하하…….”

“아무튼, 프로듀서 씨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자구요. 알겠죠?”

“네!”

기운차게 대답하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치히로는 지난 토요일에 마주쳤던, 마치 벼랑 끝에 몰려있는 듯 보였던 프로듀서의 모습을 떠올렸다.

‘정말로 괜찮은 거죠? 프로듀서…….’

 

 

 

복용 13일차.

 

혼란스러웠다.

‘기억’은 멀쩡하다. 시키와 나누었던 대화도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실험’의 시작은 카나데가 가지고 왔던 커피. 믹스커피인 주제에 물이 많았고, 거기다 미묘하게 어색한 냄새까지 뒤섞여있던 커피였을 것이다.

그런 건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녀를 탐하려 했다는 것. 지금까지 지켜온 내 프라이드를 정면으로 때려 부수는 그 행동이, 놀랍게도 내 자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그 사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그딴 짓을 저질러 놓고도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억지로 그 기억에서 고개를 돌려 그 이후를 생각하는 나 자신이, 혐오스럽기 짝이 없었다.

“……회사, 관둘까…….”

잠깐이지만 떠오른 생각을 머리를 흔들며 떨쳐낸다.

관두는 것으로 끝이라니.

도망치는 것으로 끝이라니!

너무나도 편안한 결말이다. 고작 이 정도의 결말로는 나는 만족할 수 없다. 내가 내 욕심에 의해 내 정도(正道)를 벗어나려고 했으니, 이제는 그 욕심에 대한 벌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일단……사과하자.”

나는 통증 때문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내어, 카나데의 번호를 띄웠다. 그리고 발신 버튼을 눌렀다. 아니, 누르려고 했다.

마치 본능이 거부하듯 손갈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버튼과 엄지손가락 사이를 투명한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몇 mm만 더 전진하면 되는데, 도저히 손가락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발, 제발……!’

그 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휴대폰의 액정이 켜지고 번호 하나가 떠올랐다.

“……?!”

서둘러 액정에 떠오른 번호를 확인한다. 이치노세 시키의 번호다. 맥이 탁 풀렸다.

“여보세요.”

[하이~시키냥이에요~!]

“……그래.”

[목소리가 우울한데, 왜 그래?]

“팔이 좀 아파서. 왜?”

[아니아니~ 그냥 잘 지내는가 싶어서~ 자택근무한다며? 고생하네~]

“그래, 고생하지.”

[냐하핫, 내가 들을 말인가~ 지금도 막 실종되려는 참인데~.]

언제나처럼 데굴데굴 구르는 듯한 목소리가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듯 멈추었다.

[……저기, 나한테 할 말 없어?]

“…….”

[듣고 있는 거 다 알아. 할 말 없어? 진짜루~?]

“……하야미.”

[뭐라고~?]

“하야미는……잘 지내?”

[그럼그럼! 아주 자~알 지내지요!]

“그래……그거면 됐다. 레슨 빼먹지 말고, 일정 준비 잘 하고. 매니저들 말 잘 듣고.”

[응응, 자알 들립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예전이라면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지금 바로 떠오른 생각에 목이 메어서 말이 더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야미를 잘 부탁한다.”

[당연하……어……저기, 당신? 지금 쓸데없는 생각 하는 거 아니지? 여보세요~?]

휴대폰의 배터리를 뽑아 대충 침대 위에 던져놓고,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최대한 민폐 안 끼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아참, 지갑도 빼 놔야지.

 

 

복용 15일차.

 

치히로와 카나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학병원의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현기증으로 빙빙 돌기 시작하는 시야를 애써 바로잡으며, 카나데는 오늘 아침, 회의실에서 시키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저기, 카나데는 프로듀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으음, 모르겠는걸.’

‘그 사람은, 모든 것을 안으로 품는 사람이야. 그것이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간에 말이야. 설령 그것이 자신의 가슴을 후벼파는 칼날이 될지라도, 안으로, 안으로 점점 깊숙하게 품는 거야.’

‘헤에, 한마디로 가면을 쓰는 사람이구나?’

‘가면? 아하하, 그렇게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라구~ 카나데~? 잘 들어. 밖으로 드러나는 그 사람은 아마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람일거야. 완벽할 정도로. 하지만 그런 그의 껍질을 한 꺼풀이라도 벗겨 봤어?’

‘아니, 난 그런 쪽은 취미가 아니라서.’

‘냐하하하, 그렇지. 너는 선을 확실하게 그어두는 편이었지. 뭐, 좋아. 그럼, 그렇게 뭐든지 품는 사람의 껍질 안쪽은, 어떤 꼴이 되어 있을지, 생각해 본 적 있어?’

‘……만신창이, 가 아닐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자아,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

‘그런데, 그 이야기를 왜 지금 하는거야?’

‘으음, 뭐랄까……상황이 내 생각보다 더 심각한 것 같아서 말이야. 더 이상 나도 관찰자로써 방관하기는 힘든 것 같아. 내 느낌이 그래.’

 

‘중환자실’이라고 적힌 팻말 앞에서, 앞서 달리던 치히로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하마터면 그녀에게 부딪힐 뻔 했지만 카나데는 가까스로 그 직전에 멈출 수 있었다.

“저, 치히로 씨. 여기는……?”

무기질적인 환경에 주위를 둘러본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치히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느샌가 두 눈에 넘칠 정도로 물기를 머금은 치히로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여기, 에요…….”

카나데는 고개를 돌려, 이중창문 너머의 살풍경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시간이 멈추었다.

 

 

 

복용 17일차.

 

 

스텝을 밟던 도중에, 그만 발이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카나데, 괜찮아?”

정신을 차려보니, 음악을 멈춘 베테랑 트레이너가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잠시 딴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괘, 괜찮아요.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베테랑 트레이너는 미간을 잔뜩 좁힌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료들의 표정도 그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왜, 왜 그래? 다들.”

“……카나데.”

내 뒤에 서 있던 린이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언제나 자신이 넘치던 그녀답지 않은, 안쓰러움이 잔뜩 묻어있는 눈빛이었다.

그만 둬.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말아 줘.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내일 하자. 다들 스트레칭 잘 하고. 이상, 해산.”

“수고하셨습니다!”

차트를 정리한 뒤, 연습실을 나가려던 베테랑 트레이너가 멈칫하고 나를 돌아보았다.

“……카나데.”

“네.”

“……힘 내. 네 잘못이 아니니까.”

대답 대신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이건 명백하게 내 잘못이야.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조심스레 내 주위로 모여드는 동료들에게, 나는 벌떡 일어나 내 발 끝을 바라보며 거절의 뜻을 전했다.

“레슨 망쳐서 미안. 나 먼저 가 볼게…….”

적당히 짐을 챙겨서 연습실의 문을 열었다. 그 때, 등 뒤에서 우즈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기! 카나데!!”

나는 나가려던 자세 그대로 잠깐 멈추어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뭐, 뻔한 말일 테지만.

“괜찮을 거에요!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그런 거, 처음부터 갖고 있지도 않았어.”

이것 봐, 뻔한 말이잖아.

나는 그대로 연습실을 벗어나 사무실로 향했다. 지금이라면, 아무도 없을 거야.

 

책상 밑은 생각보다 아늑한 장소였다.

커다란 사무용 책상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자리이기 때문일까.

‘이제 열흘째인가…….’

나는 치히로 씨가 퇴근하고, 바깥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두 시간 가까이를 책상 아래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영업을 나간 그가 돌아오기 전에 이렇게 책상 밑에 숨어 있다가, 영업에서 돌아온 그의 발바닥을 간질어주는 장난을 하곤 했다.

‘……지금도, 이렇게 있으면, 금방이라도 당신이 돌아올 것 같은데.’

다녀왔습니다! 라고.

사무실의 문을 열고, 힘차게, 구두소리를 내면서.

하지만, 그는 없다.

아니, 있지만 없다.

수많은 의료장비의 숲에서, 지금까지 고생한 보답을 받는 것처럼, 고요하게 눈을 감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자 또다시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 날 이후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이건 몇 번째일까. 당신은,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프로듀서, 내 눈물을 멎게 해 줘. 이런 거, 미용의 적이란 말이야.

그 때,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카나데~ 여기 있어~?”

시키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대충 눈두덩이를 문지른 다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기침을 하면서 목을 가볍게 풀었다.

“냐하하, 역시 여기 있었구나.”

“으응, 잠시 물건을 찾느라.”

“흐응~ 그래? 물건 말이지. 냐하하.”

“촬영은, 잘 갔다왔어?”

어쩐지 나를 간파하고 있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약간 울컥하면서 나는 화제를 바꾸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시키는 오키나와로 수영복 회사의 로케이션 촬영을 갔다 온 참이었으니.

“그랭~그까짓 촬영, 시키냥이 진심 모드면 그냥 낙승이지!”

그러고 보니 그날 이후로 이상하게 시키의 태도가 고분고분했다. 평소에는 프로듀……그가 없으면 꿈쩍도 하지 않거나, 실종되기 일쑤인 아이였는데.

“냐하하, 카나데~왜 이렇게 가만히만 있어?”

“……무슨 소리야?”

“시키냥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는 않냥~?”

평소처럼 고양이 같은 웃음을 짓고는 있지만, 그녀의 눈은 웃고있지 않았다.

‘으음, 뭐랄까……상황이 내 생각보다 더 심각한 것 같아서 말이야. 더 이상 나도 관찰자로써 방관하기는 힘든 것 같아. 내 느낌이 그래.’

그 때, 그녀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 지금의 그녀는, 내 아군이었다.

“……시키, 도와줘.”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나는 시키에게 매달리듯이 손을 내밀었다.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프로듀서의 집은 자물쇠가 열려 있는 상태였다.

현관문을 열고 한 걸음을 들어가 집안의 불을 켜는 순간, 나는 눈 앞에 펼쳐진 난장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맙소사…….”

유리창과 거울을 포함한, 집 안의 유리란 유리는 모조리 박살이 나 있었다. 깨진 거울과 유리창 모서리에 말라붙은 거뭇거뭇한 것이 무엇인지는, 구태여 시키에게 물어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현관에 못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내 옆에서, 시키는 냉정하게 방 안을 돌아보면서 중얼거렸다.

“……역시 감이 맞았던 것 같네. 카나데, 프로듀서의 병실, 알고 있어?”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은, 내가 아는 이치노세 시키의 눈이 아니었다.

 

“네? 면회요?”

“응응! ICU 2병동에 있는 환자를 보고 싶은데.”

귀찮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간단하게 변장을 한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간호사는 뭘 잘못 들었나, 라고 하는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시계를 확인했다. 이미 시간은 오후 9시를 넘어가고 있는 시간. 중환자실은 고사하고 일반병동의 면회시간도 슬슬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런 간호사를 향해 시키는 너무도 당당하게 말했다.

“그 환자, 전담의가 S닥터잖아? 괜찮아, 그 사람한테는 이미 허락을 받아 놨으니까.”

“박사님의 성함은 맞지만요, 손님,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거짓말을 하시면 곤란해요. 여기서도 다 확인이 가능하니까요.”

“그러라고 이름을 말해 준 거야. 어서 확인해 봐.”

미심쩍은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며, 간호사는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아, 안녕하세요, 박사님. 여기는 중환자실 병동입니다. 네, 다름이 아니라……네? 정말인가요?”

또다시 휘둥그래진 눈으로, 그녀는 이쪽을 흘깃거리며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네, 알겠습니다. 네. 그럼…….”

수화기를 내려놓고, 그녀는 주위를 둘러본 뒤 우리들을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5분이에요. 아시겠죠?”

“응, 고마워!”

 

 

 

푸식, 하는 소리를 내면서 중환자실의 문이 열렸다. 양압이 걸린 방 안에서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병실의 공기가 밖으로 확 밀려 나왔다. 위생복 차림의 카나데와 시키는 간호사의 인도를 따라 장비들을 건드리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해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은, 비록 드러나는 부분이라곤 눈 언저리와 링거가 꽂힌 두 팔밖에 없었지만, 마치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푹 쉬고 있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카나데는 3일 전, 치히로와 함께 이 곳에 왔을 때 의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화물차한테 그대로 사고를 당했습니다. 차량은 그대로 도주해서 지금 경찰이 찾고 있고, 급한 대로 환자분만 그대로 싣고 와서 치료를 했습니다.”

“환자분의 부상이 너무 심하고, 신원을 식별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연락을 드리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연락이 닿는 가족도 없고, 신분증도 없었고, 사지의 손상이 너무 커서 지문이나 치열을 얻을 수도 없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손발이나 턱을 제외하곤 그 이외의 장기가 생각보다 멀쩡하다는 부분입니다. 의식을 찾는 것이 우선이지만, 이대로라면 일상생활에서 다소 장애는 있겠지만, 본인의 의지와 재활 여부에 따라서는 9할 정도로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병실 안으로 들어와 그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카나데는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침대에 걸린 그의 환자카드를 끌어안고, 지금까지 참아온 슬픔을 터뜨리듯 그치지 않는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조용히 카나데의 모습을 바라보던 시키는 고개를 돌려 프로듀서의 두 팔을 바라보았다. 손목 부분까지는 사고의 여파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멀쩡하게 남은 팔꿈치 언저리와 상박 부분에는 선명한 이빨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시키의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다.

한 남자가 있다.

어두운 방 안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마약의 금단현상처럼 초조해하는 한 남자가 있다.

주기적으로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그 남자는 그것을 억제할 요량으로 자신의 두 팔을 물어뜯는다. 그 행동을 몇 번을 반복했을까?

처음에는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선택이, 나중에는 자기혐오에 이끌린 행동이 되었을 것이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역겨워서, 거울을 깨뜨렸다.

밤중의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더럽고 역겨워서, 유리창을 깨뜨렸다.

 

-……하야미를, 잘 부탁한다.

 

그 날의 마지막 통화 이후, 임무를 마친 그의 휴대전화는 배터리와 IC칩이 뽑혀 나간 채, 방의 침대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침대는 이미 유리조각 투성이라 도저히 사람이 누워있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는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웠을 것이다. 끝없는 자기혐오에 자기 자신을 상처 입히면서.

 

 

면회가 끝났지만, 두 사람은 복도에 서서 중환자실의 이중창문 너머로 병동 내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너무나도 평온해 보이는 프로듀서를 보면서 시키는 생각했다.

그가 무슨 결정을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결과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이 사고는, 오히려 그의 고통을 줄여주고자 하는 운명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그는 이미 자신의 마지막 전언을 자신에게 전했다.

 

그러니, 그가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의지란 생각보다 확고해서, 의학과 상식을 종종 뛰어넘고는 하니까. 이미 지난 8일간의 실험에서, 그것은 증명된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이 따위 실험은 하지 않겠어.”

 

그녀의 두 눈에서 시작된 한 방울의 물방울이, 툭, 하고 떨어져 병실 바닥에 두 개의 얼룩을 만들었다.

간단한 실험은, 때때로 간단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오는 법이다.

 

 

 

 

 

 

 

 

 

 

“……라는 꿈을, 꿨어.”

“푸하하, 그게 뭐야. 하야미, 너답지 않게.”

“그러게, 나답지 않은걸. 프로듀서를 만나고 나서, 나도 조금 변한 걸까.”

“글쎄, 아 맞아. 꿈이라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하야미.”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는 거, 혹시 알고 있어?”

 

<끝>

 

 

 

 

 

과연 진짜 결말은 뭘까요. 자, 이제 토템을 돌려봅시다. 카나데가 돌린 토템은 쓰러질까요, 아니면 쓰러지지 않을까요.

 

요즘 트렌드가 유열이라길래 한번 흉내내어 써 봤습니다만.

어떤가요, 그 비스무리한 게 느껴지셨나요?

느껴지셨다면 다행입니다. 느껴지지 않으셨다면,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시키냥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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