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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질투(Jealousy)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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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9, 2016 02:54에 작성됨.

* 프로듀서의 P는 퍼스널리티의 P 시리즈의 P가 등장합니다.

* 다분히 스피드웨건 성분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 편만 읽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 시기상으로는 [밤 바다와 등대]의 1년 반 뒤, [익숙한, 하지만 평소보다 푸른 하늘]의 1주일 뒤입니다.

* 읽기에 따라 P가 싸가지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태양의 질투.

 

 

당신은 내게 태양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빛을 비추는 해님 말이에요.

하지만 제게는 당신이 태양입니다.

저는 당신이 없으면 자랄 수 없으니까요.

자라면서도 항상 당신만을 향해 뻗어나가는 해바라기니까요.

 

당신의 해님은 질투를 하나요?

해바라기는 언제까지 돌아보지 않는 해님을 바라봐야만 하나요?

해님도 질투를 한답니다.

해바라기도 질투를 한답니다.

 

하늘의 파랑도 좋지만, 이따금은 땅 위의 빨강도 보아 주세요.

나의 해님.

 

 

************

 

 

하루의 일과가 마무리되어가는 오후 5시.

최종적으로 정리된 한 뭉치의 서류를 들고 스케줄 보드 앞에 서서 보드 위를 글자로 채워 나가던 프로듀서는 잠시 반 걸음 물러서서 오른쪽 어깨를 빙글빙글 돌렸다. 단합 대회는 저번 주에 끝난 참이지만, 역시 3일짜리 휴가 가지고는 제대로 회복이 덜 된 것인지 이렇게 팔을 들어올릴 때마다 어깨의 뼈마디가 시큰거렸다.

‘내일 11시에 J잡지 인터뷰, 13시에 K스튜디오라. 동선이 복잡한걸……점심을 생각해둬야겠군.’

생각이 얼추 정리되자 그는 대충 휘갈겨 적었던 스케줄을 다시 바른 글자로 고쳐 적은 다음, 자리로 돌아와 회전식 의자에 털썩 앉았다. 고개를 돌려 치히로의 자리를 바라보자, 그 곳에는 마유의 사진이 표지에 실린 패션 잡지를 읽고 있는 치히로가 있었다.

“어떤가요?”

치히로는 읽고 있던 잡지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모델 출신이라서 그런가 평가가 좋네요. 제가 보기에도 예쁘고요.”

“당연하죠. 누구 눈으로 뽑은 아이인데요.”

“사실은 마유 쪽에서 먼저 다가온 거지만요~.”

웃음기를 머금은 치히로의 말에 프로듀서는 들켰다는 듯 어깨를 움츠렸다.

“뭐, 그건 그렇긴 하죠. 이제 보컬 쪽도 조금만 더 다듬으면, 작은 소극장에서 라이브도 한번 잡아볼 예정입니다.”

프로듀서와 치히로는 고개를 돌려, 이제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하는 사쿠마 마유의 스케줄 보드를 바라보았다. 음악 방송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지 이제 한 달. 약간의 불안 요소는 있었지만, 모델 시절부터 이어져온 그녀 고유의 인지도와 프로듀서의 예상보다 뛰어난,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프로다운 모습에 그녀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타지 생활도 힘들 텐데, 적응 잘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처음에 만났을 땐 금방 꺼질 것처럼 가냘픈 아이였는데 말이에요. 이게 아버지의 마음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랑하듯 말하는 프로듀서를 바라보며 치히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도 그 아이는 당신이 없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여요, 프로듀서 씨.’

그런 치히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프로듀서는 스케줄 보드를 보고 있던 시선을 약간 오른쪽으로 옮겼다. 사쿠마 마유의 바로 옆에 적힌 것은 사기사와 후미카라는 이름. 그 이름의 아래에는 널럴하게 기본 트레이닝만 들어 있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컬 트레이닝과 댄스 레슨으로 충실하게 채워져 있었다.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스케줄 보드를 바라보던 프로듀서가 작게 중얼거렸다.

“Bright Blue……라.”

“그거, 후미카 노래 제목이죠?”

“네, 맞습니다. Bright Blue. 제목 잘 지었네요, 그 아저씨.”

“카에데 씨한테 들었어요. 이번에도 한 방 먹었다고 길길이 날뛰셨다던데.”

치히로의 말에 프로듀서는 멋쩍은 듯 목덜미를 주물렀다.

“그랬나요? 전 그때 바로 집에 가서 쓰러져가지고.”

“정말이지, 저도 놀랐어요. 요청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곡을 따 올 거라곤.”

“하하, 타이밍이 잘 맞았던 거죠. 우연이에요 우연.”

샐쭉하게 프로듀서를 흘겨보던 치히로는 그 말에 팡팡, 하고 손뼉을 쳤다.

“뭐어, 지금은 그런 걸로 해 두죠. 자, 쉬는 시간은 그만! 일 합시다, 일!”

“칼퇴근을 위하여.”

씨익 웃으며 서로를 한 번 마주본 뒤,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그럼 저는 사쿠마랑 사기사와 데리러 갔다 올게요. 연락 없이 늦는다 싶으면 그냥 바로 퇴근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타카가키 씨 오면 그냥 집으로 바로 보내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 참, 자동차 가져가실 거죠?”

“네.”

프로듀서가 나가고, 혼자 남은 치히로는 다시 자리에 앉아 서랍에서 차트 하나를 꺼냈다.

‘우연이라……이게 우연일 리가 없지.’

차트의 표지에 적힌 것은 지난 1년간 아이돌 부서의 업무실적을 기록한 보고서였다. 이제 생긴지 1년 반 정도 지난 새내기 부서였지만, 업무실적을 기록한 그래프는 매 월마다 성장 폭의 신기록을 갱신할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보고서의 기록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치히로 본인이었지만, 이렇게 모아서 읽어 보니까 새삼 이 부서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지 한 눈에 들어왔다.

술김에 들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프로듀서의 구상은 가까운 시일 내 정상급 인지도를 가진 사람이 생긴다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세를 불린다는 계획이었다. 비록 지금은 기초를 다지기 위해 스카우트나 오디션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매 월마다 하나둘씩 신규 후보생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상급 인지도’의 후보자로 선택된 것은, 다름아닌 프로듀서의 첫 번째 신데렐라인 타카가키 카에데. 그 때문인지 그녀는 데뷔 1년만에 그야말로 돌풍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카에데 씨의 데뷔도 파격적이었죠.’

타카가키 카에데의 데뷔는 다름아닌 연예계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모이는 도내 예능 단합대회장이었다. 그것도 개막 무대도 아닌 간단한 식전행사를 담당하는 수준.

스카우트를 수락하고, 이적 서류에 도장을 찍기가 무섭게 프로듀서는 그녀를 끌고 보컬 트레이닝과 발성법의 단련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저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그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발상의 전환. 일반인들에게는 ‘모델 타카가키 카에데’로 알려져 있지만, 업계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녀는 ‘모델이었던 신인A’에 불과했다. 그런 ‘신인 A’를, 프로듀서는 단합대회라는 장소를 빌어 신인A에서 ‘타카가키 카에데’로 바꾸어 놓았다.

단합대회에서 카에데의 존재를 드러낸 후, 프로듀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작곡가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하기 위함이 아니라, 가이드 녹음. 즉, 베이스 레코딩을 구하는 작곡가들을 찾아 다닌 것이다. 그가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동안, 카에데는 계속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갈고 닦았다. 처음부터 재능이 있던 사람이었기에 실력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분명히 자신이 생각하던 아이돌과는 동떨어진,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을 텐데 그녀는 그의 프로듀스에 단 한 번도 의문을 표하거나 거부감을 표한 적이 없었다. 조용히 그의 지시에 따라 자신을 갈고 닦으며. 카에데는 마치 무도회를 기다리는 신데렐라처럼, 호박마차에 앉아 자신을 성으로 이끌어줄 마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에 걸친 수소문 끝에 프로듀서는 마침내 그녀를 위한 노래를 준비했다. 가사와 반주밖에 없는, 제목조차 정해지지 않은 노래의 베이스 레코딩을 맡은 카에데는 몇 번인가 반주를 돌려듣고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스튜디오에 박혀, 꼬박 하루에 걸쳐 그 노래에 카에데의 색을 조금씩 씌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녹음을 마친 프로듀서는 작곡가에게 노래를 전해 주었다. 노래를 들어 본 작곡가는 노래가 담긴 USB를 프로듀서의 얼굴에 냅다 집어 던졌다.

자신은 가사를 입히라고 했지, 노래에 색을 입히라고 한 적은 없다고 길길이 날뛰는 작곡가에게 프로듀서는 ‘그렇다면 이 노래, 제가 가지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불 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었지만, 작곡가는 씩씩거리면서도 결국에는 프로듀서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미 네놈의 색에 물들어 버린 노래다. 버리느니 주인을 찾아가는 게 낫지.”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노래가 바로, 타카가키 카에데의 데뷔곡이자 발표 직후 일본 전역을 뒤흔든 신곡(神曲), ‘코이카제’였다.

신곡 발표의 뒤풀이 자리에서, 프로듀서는 자신의 행동을 이렇게 설명했다.

“장인정신입니다.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자신의 노래에 애착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저는 그 점을 조금 비틀었을 뿐이죠”라면서, ‘잘 된 것은 카에데의 재능이 뛰어난 것이지 자신은 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프로듀서를 사장과 치히로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회상을 마치고, 치히로는 차트를 덮어 서랍장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돌이켜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었죠. 프로듀서 씨도, 카에데 씨도…….’

그러고 보면 프로듀서의 행동은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 타카가키 카에데라는 아이돌의 프로듀스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또 한 명, 사기사와 후미카라는 신성(新星)이 카에데의 전철을 밟아 나가고 있었다.

‘이상하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한다. ‘뭐, 결국은 될 대로 되겠지’라고 결론을 지으며, 치히로는 퇴근을 위한 마지막 마라톤을 시작했다.

 

 

*********

 

 

도내에 위치한 한 스튜디오.

 

두꺼운 방음 문을 밀고 들어가자 음향기기 앞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분위기로 보아하니 이미 테스트가 진행중인 모양이라 나는 인사 대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자, 방음유리로 격리된 녹음실 내부에서 노래에 집중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작고 아담한 체구의 소녀는 자신의 머리 크기만한 헤드폰을 끼고, 감정에 집중하듯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아이의 상태.

분명히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평소의 그녀와는 무언가가 다르다. ‘컨디션에는 문제가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조정실 한 켠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보컬 트레이너가 나를 바라보며 가볍게 목례한다.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끼고 있던 헤드폰을 벗었다.

“죄송합니다만, 잠시만 들어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트레이너는 빙긋 웃으면서 내게 헤드폰을 건넸다.

나는 안경을 벗어 재킷 주머니에 걸쳐놓고 헤드폰을 썼다. 흘러나오는 곡조는 한달 전 발표한 그녀의 노래. 하지만, 무언가가 이상하다.

‘엉망이잖아?’

클라이맥스도 아니고, 평탄하게 지나가야 할 부분에서 심각하게 비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음정도 정확하고, 박자도 정확하다. 하지만 그 뿐. 이건 노래가 아니라 마치 박자와 음정에 맞춘 절규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나는 헤드셋을 벗어 목에 걸고 녹음실 안을 한 번 바라보았다. 트레이너 또한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때,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생각이라기보다는 한 가지의 의문이었다.

“이거……몇 번째 리테이크에요?”

내 질문에, 트레이너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네 개 펼쳐 보였다.

“……네 번?”

끄덕, 하고 긍정의 제스쳐가 나왔다.

“리테이크 구간은요? 후렴구? 1절?”

트레이너는 묵묵부답이었다. 내심 뒷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마지막 답안을 제시했다.

“설마, 전체?”

트레이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 설마, 본인 요청인가요.”

또 다시 끄덕, 하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아…….”

한숨이 튀어나왔다. 감정으로 치자면 허탈함이나 허망함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었다.

그녀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조금 전의 나를 세게 한 대 치고 싶었다. 잘 나가던 그녀의 퍼포먼스가 이렇게 망가질 때까지 나는 무엇을 했지?

……아니, 이유는 알고 있었다. 그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을 뿐. 왜냐하면 그 ‘이유’라는 것이, 지금 이 장소에 그녀가 있는 이유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조정실에 있는 스태프들은 모두 계기판이나 녹음실 내부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나는 감독의 어깨를 톡톡 건드려 중지해달라는 사인을 보내고, 녹음실과 조정실을 가로막는 방음유리를 탕탕 두들겼다.

목에 건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뚝 멈추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쓰고 있던 커다란 헤드폰을 벗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웃음 띤 무표정을 유지하던 그 아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영업용 미소가 아닌, 정말 행복해 보이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 미소를 보자 또다시 욱씬, 하고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나는 뒤로 돌아 크게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여러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서야 스태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트레이너의 말대로 이렇게 테스트를 강행한 것은 그녀 본인의 의지였던 모양이다.

“아냐, 우리가 더 고맙지. 다음 일정은 2일 뒤니까, 그때까지 잘 부탁하네.”

“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스태프들이 장비를 정리하는 동안, 나는 아이스 박스에서 드링크 하나를 꺼내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쿠마.”

“프로듀서 씨!”

나를 향해 다가오려는 그 아이, 사쿠마 마유는 몇 걸음을 내딛더니 걸음이 꼬여 앞으로 고꾸라졌다. 재빨리 다가가 넘어지지 않도록 팔을 뻗어 마유를 감싸 안았다. 153cm에 40kg. 16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아담한 체구의 그녀였지만, 오늘따라 그 가벼움이 더더욱 가냘프게 느껴진다.

“고생했다. 일단 이거라도 마셔.”

드링크의 빨대 부분을 갖다 대자, 마유는 내 품 속에서 축 늘어진 채 드링크를 쭉쭉 빨아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호흡을 쉬고 나서, 그녀는 어느 정도 기운이 돌아온 듯 내 품에서 일어나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좀 진정이 됐어?”

“네, 고맙습니다.”

“그래.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이만 돌아가자.”

내 말에, 그녀는 미련이 남은 듯 녹음실을 한번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쯤 걸터앉은 자세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약간이지만 소맷자락이 뒤로 당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자, 그녀가 약간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업어 줄까?”라고 묻자, 그녀는 얼굴을 발그레 물들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뒤로 돌아 등을 내밀려다가 그녀의 옷차림을 보고 단념했다.

“그런데, 그 옷으로 업히긴 좀 곤란할 것 같은데.”

“앗……!”

그제서야 자신의 옷차림을 자각한 듯 곧바로 풀이 죽는 마유. 확실히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스커트 치고는 길이가 길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등에 업혀도 될 정도로 긴 스커트는 아니었다.

나는 녹음실의 뒤쪽을 슬쩍 돌아보았다. 스태프들은 그새 철수한 것인지, 방음실 안에는 우리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건네었다.

“잠시 이거 들고 있어 봐.”

“네? 무, 무거워…….”

“무거워도 조금만 참으세요. 엇차!”

“꺄앗!”

가녀린 그녀에게는 무거웠던 모양인지, 가방을 받아 휘청거리는 마유의 뒤로 돌아가서 낮게 앉은 다음, 무릎 안쪽과 어깨를 감싸 안고 그대로 일어섰다. 흔히들 말하는 ‘공주님 안기’라는 모습이다. 지금 자신의 상황을 파악한 마유는 아까 전보다 두 배는 더 빨개진 얼굴로 조그마한 입을 뻐끔거린다.

“저, 프, 프로듀서 씨, 이건…….”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그렇다고 업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럼 이거밖에 없잖아?”

“저, 죄, 죄송합. 아니, 감사합니다…….”

“감사할 거 없어. 나중에 혼낼 거니까.”

터질 듯 발갛게 익은 얼굴로 말하는 마유에게 나는 아주 약간, 조금 전에 느꼈던 감정을 담아 말했다. 손끝으로 방음문의 끄트머리를 낚아채 잡아당기고, 살짝 열린 문틈을 발끝으로 낚아채 문을 열었다. 찌릿, 하고 다시 존재감을 어필하는 어깨의 통증에 살짝 미간이 꿈틀거렸다.

 

 

주차장에 주차해둔 차의 조수석에 마유를 앉히고, 그녀가 시트벨트를 채우는 동안 운전석의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차량용 방향제의 상큼하면서도 인공적인 냄새를 맡으면서 열쇠를 꽂고 시동을 걸었다.

“사쿠마.”

“……네.”

말을 걸자, 한 박자 늦게 촉촉하게 젖은 대답이 돌아왔다.

“……미안하다.”

“……?”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궂이 옆으로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기어를 넣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었다. 운전을 하고 있을 때, 마유는 보통 조용히 앉아 창 밖을 바라본다.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이상은.

사쿠마 마유는 원래 센다이 지방 잡지사의 유명한 독자 모델이었다. 마유 본인의 입으로는 슬슬 한계가 보이는 수준이었다고 하지만, 업계 종사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딱히 그렇게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천천히 스튜디오의 주차장을 빠져 나온다. 왼쪽을 주목하면서 우회전으로 도로에 진입했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휴대전화로 루키 트레이너에게 트레이닝이 끝났으면 후미카를 회사 앞으로 보내달라는 메일을 보낸다.

그런 잘 나가는 모델인 마유가, 센다이에서의 그 실낱 같은 인연에 의지해 어느 날 뜬금없이 사무소를 찾아와 모델을 관두고 아이돌이 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반가움과 동시에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었다. 고마움은 당연히 사무실에 커다란 전력이 되어줄 것이라는 그녀의 선택에 대한 고마움이었고, 미안함은…….

급정지하는 앞차를 피해, 감속하면서 왼쪽 차선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면서 휴대전화의 메일을 확인한다. 아직 레슨이 조금 덜 끝났다고, 미안하다는 답신이 왔다. 이제 다 왔으니까 직접 내려가겠다고 답장을 보낸 뒤, 다시 신호를 기다렸다.

……미안함은, 혹시나 내 선택이 그녀의 인생을 뒤틀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아이돌이 되고자 하는 이유를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저지른 행동이 얼마나 경솔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센다이에서 그녀에게 들었던 이야기. 운명의 붉은 실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그저 소녀의 망상으로만 듣고 넘겨버린 것. 그것이 내가 저지른 실수였다. 단순히 소녀의 망상으로 치부했던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인생을 좌우하는 이정표였음을 그 때의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저 멀리 높게 솟아오른 본사 건물이 보였다. 약간 속도를 낮춰,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골목길로 진로를 바꾸었다.

“사쿠마.”

이번에는, 약간 무겁게 가라앉은, 그리고 조금 갈라진 대답이 돌아왔다.

“……네, 프로듀서 씨.”

“잠시만 차 안에 있어. 사기사와 데리고 올 테니까. 기숙사까지 바래다줄게.”

“네, 에…….”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정도로 마유의 몸이 눈에 띄게 움찔한다. 괴로운 듯, 숨을 삼키면서 마유는 쥐어짜듯 대답했다.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모르는 척, 내색하지 않았다.

잠시 후 회사의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나는 뒷좌석에서 담요를 꺼내 마유의 무릎에 덮어주었다.

“미안해. 금방 올라올 테니까, 조금만 쉬고 있어.”

“저는 괜찮아요. 부디 걱정은 하지 마시길…….”

“……그래.”

담요를 고쳐 덮으며 내게 미소짓는 마유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를 제외하곤 다 나았을 터인데, 이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목이 뻐근했다.

……그래, 사실은, 고마움과 미안함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었다.

한 가지가 더…….

 

 

 

마마유 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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