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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하지만 평소보다 푸른 하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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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2, 2016 03:21에 작성됨.

* [퍼스널리티P 시리즈] 익숙한, 하지만 평소보다 푸른 하늘(1)에서 이어집니다.

* [프로듀서의 P는 퍼스널리티의 P] 에 등장하는 프로듀서가 등장합니다.

 

 

상담이 있다는 제 부탁에 프로듀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복도의 전등이 고장이 나서 불이 안 켜졌기 때문에, 땀에 흠뻑 젖은 프로듀서 씨가 씻고 나오는 동안 저는 체력단련실 안에서 프로듀서 씨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태어나서 이런 곳에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저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운동기구를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기가 뜨거워.’

분명히 프로듀서 씨 혼자 있었을 텐데 체력단련실 내부는 후끈한 열기로 적당히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사람 혼자서 이 정도의 열을 내려면 얼마나 격렬하게 운동을 해야 하는 걸까요. 체력단련실의 한쪽 벽면에 설치된 커다란 거울 앞에는 수많은 아령, 역기가 동심원을 그리며 동그랗게 놓여 있었습니다.

‘어떤 운동을 하고 계셨던걸까?’

아령과 역기 사이에 떨어져있는, 절반은 말라붙은 수많은 땀방울이 지금까지 프로듀서 씨가 하고 있는 운동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커다란 덩치의 프로듀서 씨가, 운동복 차림으로 이 기구들을 사용하는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그러자 어제, 카에데 씨에게서 들었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습니다.

‘남은 것은, 가슴과 머리…….’

그렇게 얼마간 체력단련실을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고 있자니, 밖에서 다소 소란스러운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서두르는 듯한 발소리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프로듀서 씨가 서 있었습니다. 사복이 아니라 정장 차림이었습니다. 아니, 프로듀서 씨에겐 저것이 사복이나 마찬가지겠죠. 오래 걸려서 미안해하는 프로듀서 씨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가까이 다가가자, 머리에 물기가 남아 있는 프로듀서 씨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호흡을 고를 틈도 없이 서둘러서 나온 것이겠죠.

‘차라리 내일 말씀드릴 걸 그랬나요…….’

부정하듯 내심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프로듀서 씨는 바쁜 사람. 내일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프로듀서 씨의 얼굴을 올려다 봅니다. 새삼스럽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프로듀서 씨는 정말로 높습니다. 늘어뜨린 앞머리에 가려져서 이렇게 마주보고 서 있으면 가슴 위로는 전혀 보이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머리를 살짝 흔들어 앞머리를 흩어 놓자, 그제서야 그의 얼굴이 희미하게나마 보입니다. 프로듀서 씨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곤 고민하듯 턱을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생각을 마친 듯 프로듀서 씨는 손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약간 자세를 낮추어서, 제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런 데서 얘기하긴 그렇고, 어디 카페로 갈까.”

어떠한 열정을 품고 있는, 안경 너머에서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가 약간 부담스러웠기에 저는 약간 움츠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프로듀서 씨는 만족한 듯 싱긋 웃으며 다시 자세를 곧게 폅니다. 체력단련실의 불을 끄고, 문을 잠그는 프로듀서 씨에게 정리는 안 해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런 건 나중에 해도 돼. 지금은 네 상담이 우선이지. 사기사와 너 기숙사 살잖아?”

……라는 답변을 태연하게 했습니다.

 

회사 밖으로 나오자 여름치고는 다소 서늘한 미풍이 불어왔습니다. 저는 흐트러진 숄을 고쳐 두르고, 사원증을 패용하고 수첩을 꺼내 든 프로듀서 씨의 뒤에 따라 붙었습니다.

아이돌과 회사 근처로 걸어서 나갈 일이 있을 때, 프로듀서는 항상 자신이 ‘직원’임을 강조하는 무언가를 사용합니다. 회사의 로고가 그려진 가방을 쓰거나, 수첩을 들고 다니거나, 사원증을 일부러 잘 보이는 장소에 걸어놓고 다니기도 합니다. 듣기로는 나름대로 스캔들을 저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여 들키더라도 사내 인터뷰나 업무 답사 정도로 둘러댈 수 있으니까요.

프로듀서 씨는 키가 큰 만큼 다리도 매우 깁니다. 어떤 이야기에 나오는 ‘성큼걸이’처럼 성큼성큼 걷기 시작하면 제 느긋한 걸음으론 따라잡기 힘들 것입니다. 이번에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따라가는 데 집중해야겠습니다.

“…….”

뜻밖에도 프로듀서 씨는 걸음이 빠르지 않았습니다.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마치 흐름을 타듯, 앞사람을 앞지르기보다는 그 사람의 옆으로 흐르는 흐름에 몸을 맡기듯 느긋하게 걸어갑니다. 주제넘은 망상입니다만, 그런 움직임은 마치 자신의 바로 뒤를 따라오는 저를 배려하는 것처럼도 보여서 새삼스레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희들의 짧은 산책이 끝나고, 회사 근처에 있는 2층짜리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밤이 깊어지는 시간대지만 간소화된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진 카페 안쪽에선 은은한 백열전등이 따뜻한 빛을 가게 밖으로 뿌려대고 있었습니다.

“들어가자.”라고 말하면서 프로듀서 씨는 문을 당겨 제게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섞여 은은한 커피 냄새와 계피의 향, 그리고 목재 가구에서 풍기는 목재향기가 제 코를 자극했습니다.

“어서오세요.”

그러다 눈이 마주친, 카운터에 있던 점원이 인사를 하기에 저도 질세라 또다시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2층으로 갈까? 아니면 1층이 좋아?”

2층이 좋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상담을 부탁한 주제에 너무 요구하는 것이 많은 것 같아서 저는 대답을 망설였습니다. 프로듀서 씨는 가만히 서서 저를 살펴보더니, 2층으로 가자며 제 등을 살짝 떠밀었습니다. 괜찮다고, 1층도 좋다고 말하려 할 때, 마치 예상하기라도 한 듯 그는 씨익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게는 2층에서 내려다보는 게 더 예뻐. 한번 속는 셈치고 가 봐.”

2층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자, 카운터에서 본 종업원 분이 와서 메뉴판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안에 적힌, 책으로만 접해 본 화려한 이름을 가진 커피는 먹음직스러운 사진과 함께 자신들의 존재를 어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카페라떼와 카페오레는 둘 다 커피와 우유의 조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무엇이 다른 걸까요.

“뭐 할지 정했어?”

이런, 아무래도 메뉴를 너무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프로듀서 씨의 목소리에 간신히 현실로 돌아온 저는 조심스럽게 카페라떼를 가리켰습니다.

“이걸로, 부탁드립니다.”

“음, 좋아.”

자신이 마실 것은 이미 정해둔 듯, 프로듀서 씨는 제 선택이 정해지자마자 곧바로 종업원을 호출했습니다. 프로듀서 씨가 주문한 것은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 샷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모두 쓴 것이니 아마 두 가지가 다 들어간 것도 매우 쓴 것이겠지요. 이런 걸로 깨닫는 것도 우습지만, 새삼스럽게도 프로듀서 씨가 어른이라는 사실을 다시 실감합니다. 따지고 보면, 올해로 스물 아홉이 되는 우리 프로듀서 씨는 사무실에서는 가장 어른입니다. 미즈키 씨보다도 한 살이 더 많으니까요. 그래서 평소에는 어른스러운 카에데 씨나 미즈키 씨도 때때로 프로듀서 씨 앞에서는 아이처럼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어른의 어리광이라는 것일까요.

또 다시 생각이 옆으로 빠졌던 모양입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테이블에 두 팔을 올린 프로듀서 씨는 턱을 괸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안경을 쓰고 있지 않은 모습은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입니다.

‘어? 잠깐, 뭔가 조금 위화감이.’

앞머리 사이로 비치는 프로듀서 씨의 두 눈동자. 전구의 빛을 반사하는 까만 홍채에서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조금 더 의식을 기울이자 그 위화감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프로듀서의 왼쪽 홍채가, 아주 약간이지만 검붉은 색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홍채 이색증. 헤테로크로미아 혹은 오드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녹색과 청색인 카에데 씨와는 달리, 프로듀서 씨는 검은색과 검붉은색이 섞인 그것이었습니다.

낯선 광경에 신선함을 느끼면서 프로듀서 씨의 옆모습을 뚫어져라 보고 있자니 제 시선을 눈치챈 듯, 프로듀서 씨가 턱에서 손을 떼고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 설마 비누거품?”

“앗, 저, 저기. 안경, 안 쓰셨네요.”

“응? 아아, 안경 말이지.

프로듀서 씨는 안경을 고쳐 쓰듯이 검지를 미간에 갖다 댑니다. 그러다 허전함을 느꼈는지 급히 가슴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어 다시 착용했습니다. 그런데 프로듀서 씨가 안경을 끼자, 신기하게도 양 눈동자가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갔습니다. 방금 전엔 제가 잘못 본 것일까요.

분위기가 어색해지려는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주문한 커피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선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케이크……인가요?”

“치즈케이크야. 린네 친구들이 여기 치즈케이크를 좋아하거든. 사기사와 입에도 맞지 않을까 싶어서.”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스레 포크를 쥐고, 케이크의 끝부분을 살짝 잘라내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살짝 차가운 케이크가 입 안에 들어가자 혀 위에서 스르륵 녹아 내리면서 강렬한 단맛을 흩뿌렸습니다.

“어때, 맛있지?”

“……네. 정말로, 감탄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또다시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갑니다. 달콤하네요.

처음으로 느껴보는 자극에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아마도 이 때, 프로듀서 씨는 미소를 띄운 채로 제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후 돌아가는 길에 ‘정말로 맛있게 먹는 것 같아 방해하기 힘들었다’라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

 

 

쭈뼛거리는 듯 하면서도, 강렬한 단 맛에 전율하면서 야금야금 치즈케이크를 갉아 먹는다. 조금씩 조금씩 잘라서 먹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채 절반도 남지 않은 케이크를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이따가 가면서 하나 포장해 가자. 내일 간식으로 먹게.”

“아뇨, 그렇게까지는 안 해주셔도…….”

자신도 모르게 포크에 남아 있는 부스러기까지 깨끗하게 닦아 먹은 후미카를 바라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지금 웃었다가는 비웃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새까만 액체가 담긴 컵을 들고 한 모금을 들이켰다. 폭풍처럼 몰려오는 쓴 맛에 올라가던 입꼬리가 절로 내려갔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이야기를 해 볼까?”

내 말에 후미카는 아쉬운 듯 물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단순히 자세만 바꿔 앉았을 뿐인데, 또래의 여자아이들과는 무언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늘어뜨린 앞머리 사이로 푸른 보석 한 쌍이 반짝이고 있었다. 꿀꺽, 침을 한번 삼킨 뒤, 나는 말을 꺼내놓았다.

“무엇을 상담하고 싶어?”

“단합 대회……에 관해서입니다.”

“그래.”

“프로듀서 씨는, 제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질문의 의미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후미카도 아이가 아니다. 이제 내년이면 성인이 되고, 이미 지금도 자기 자신의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런 그녀가 고작 저것을 알고 싶어서 내게 이런 상담을 걸어온 것은 아닐 것이다. 질문의 뒷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서워?”

역으로 던진 질문에, 후미카는 움찔, 하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니, 고개를 숙인 것이 아니라 자세가 움츠러들었다. 어렴풋이나마 보이던 푸른 반짝임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네, 두렵, 습니다.”

“타카가키 씨는 뭐라고 말씀하시던?”

“프로듀서 씨의 안목을 믿으라고, 이제는 각오, 만 있으면 된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후미카는 오른손으로 꾸욱, 가슴 위쪽을 눌렀다.

“그래. 그 기분, 나도 이해해. 충분히.”

후룩, 하고 일부러 소리를 내며 쓰디쓴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두려울 거야. 무섭겠지. 지금까지 사람들을 피해서 살아왔는데, 하루 아침에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춰야 한다니.”

후미카는 딱히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하는 말들은 분명히 닿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현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막연하게만 느꼈던 그 출발점이 이제 눈에 보이기 시작하지. 아마도 무거울거야. 몸도, 마음도.”

“……잘, 알고 계시네요.”

“그래. 나도 다 겪어 봤으니까.”

“프로듀서 씨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이지만. 내 얘기를 해도 될까?”

“괜찮습니다…….”

“고마워. 그럼, 어디부터 시작할까…….”

 

 

*********

 

 

“그럼, 어디부터 시작할까…….”

안경을 벗어 탁자 위에 올려놓는 프로듀서 씨의 두 눈이 먼 곳을 바라봅니다. 아마도 아련한 기억의 저편을 바라보는 것이겠지요. 신기하게도, 안경을 벗으니 프로듀서 씨의 왼쪽 눈이 다시 미세한 붉은 빛을 띠었습니다.

“내가 야구선수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

저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야구를 할 줄 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선수였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사기사와는 지금 대학생이지?”

“네.”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난 고졸이야.”

프로듀서 씨는 쑥쓰러운 듯 웃음을 지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바로 프로팀에 지명 받아서, 이듬해부터 바로 프로 팀에서 뛰게 됐지.”

“대단하시네요.”

“하하,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다들 그렇게 말해주니까 진짜 대단한 것 같네.”

프로듀서 씨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호흡을 정돈하려는 것일까요.

“지명을 받기 전에는 그냥 막연하기만 했지. 프로 무대에서 뛴다는 건 그냥 꿈이었으니까. 목표도 없이 매일마다 훈련만 하고, 연습게임에 나가고, 다시 훈련하고, 다시 연습게임에 나가고……. 이 생활을 의미없이 계속 반복했어.”

그 이야기를 듣자니 무언가, 동질감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런 기약도 없이, 아이돌이 된다는 막연한 꿈만 안고, 매일같이 레슨과 트레이닝의 반복.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덜컥,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 날이 다가온 거야. 그래, 프로 데뷔전이야.”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덜컥, 하고 찾아온, ‘아이돌’이 될 수 있는 기회.

“컨디션은 최고였어. 실력도 자신 있었지. 그런데 이유도 없이 무서웠어.”

-트레이닝은 완벽, 레슨도 더 이상 할 것이 없고, 컨디션도 쾌조. 절호의 기회를 눈 앞에 둔 셈인데도, 그런데도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 몹시 두려웠고, 몹시 떨렸다.

“하루하루 그 날이 다가올수록 증상은 더 심해졌어. 나중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왜 그런지 이유라도 알았으면 좋겠는데,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니까 더 불안했지.”

-왜 그런지, 명쾌한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불안하고, 더욱 떨리고, 더욱 무섭다.

“그렇게, 프로 데뷔전을 치뤘어. 엉망진창인 컨디션으로.”

잠시 말을 멈추고, 프로듀서 씨는 씁쓸한 듯 커피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저는 뒷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프로듀서 씨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본 뒤 부드럽게 웃었습니다. 그 표정의 의미를 알기에, 얼굴이 약간 화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시원하게 말아먹었지. 욕이란 욕은 다 먹고 마이너리그로 굴러 떨어졌어. 응. 말아 먹었지. 시원하게…….”

그렇게 말하는 프로듀서 씨의 목소리가, 약간 촉촉한 습기를 머금었습니다. 추억이라는 보물상자 속에는, 아름다운 추억뿐만 아니라 가시투성이의 트라우마도 함께 들어있었던 모양입니다.

“아…….”

“평생 먹을 욕의 1/3은 그때 다 먹었을 거야. 불면증까지 와서 한 일주일쯤 끙끙 앓기도 했고……뭐, 아무튼.”

눈을 감은 채,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프로듀서 씨는 크게 심호흡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자, 그 곳에 있는 것은 조금 전의 프로듀서 씨였습니다.

“시원하게 말아먹고, 욕도 먹고 나니까 왜 그렇게 불안했는지 원인을 알겠더라. 내 등을 밀어줄 사람이 없었던 거야.”

“등을……밀어준다.”

“그래.”

프로듀서 씨는 잠시 가게의 창 밖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다 알고 있었어. 준비는 만전. 컨디션도 좋았고, 이제 나서기만 하면 된다고, 머리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몸이 굳어버린 거야. 단 한 걸음만 더 나갔으면 충분했는데. 막연한 긴장감, 막연한 두려움. 어린 왕자의 상자처럼, 실재하지도 않는 실패를 두려워했어. 그래서……그…….”

프로듀서 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커피를 마셨습니다.

“……미안, 미안하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인지, 시선을 약간 내리깔고 있는 그는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왠지 알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사람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도를 분간하는 눈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머그잔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그의 손을 살며시 감싸 쥐었습니다. 처음 만져 본 프로듀서 씨의 손은 언젠가 만져 본 아버지의 손보다, 숙부님의 손보다 훨씬 크고, 훨씬 투박하고, 훨씬 거칠었습니다. 사람의 손에는 지내 온 세월이 새겨진다고 합니다. 분명히 우리 부서에서는 가장 어른이지만, 프로듀서 씨는 아버지나 숙부님에 비하면 한참 젊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손을 가지고 있다면, 이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일까요.

“사기사와…….”

“프로듀서 씨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으신 건지도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둬 주세요. 자신의 상처를 후벼 파는 것은, 보는 사람도 고통스러우니까요.”

“그래, 나만 괴로운 게 아니지…….”

프로듀서 씨의 표정이 다시 풀린 것을 보고, 저는 안심하고 손을 풀었습니다.

조금 전과 같은 목소리로 돌아간, 평소의 프로듀서 씨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사기사와, 나와 만났던 날, 기억해?”

 

 

**********

 

 

심호흡과 함께 쓸데없는 감정을 마저 털어낸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 희석되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희석되기는커녕 오히려 진하게 농축되어 있었다.

“사기사와. 나와 만났던 날 기억해?”

끄덕,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나는 네게 책 한 권을 주었어. ‘사기사와 후미카’라는 책이었지.”

다시 끄덕.

“그 책의 첫 번째 챕터는 끝났어.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챕터로 넘어가려고 해.”

나는 또 다시 일부러 소리를 내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책의 표지는 없어. 뒷면에는 시놉시스도 없지. 첫 번째 챕터가 과거의 네가 써 온 것이라면, 두 번째 챕터는 이제부터 네가 써 나가는 동시에 읽어 나가야 할 부분이야.”

후미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멀리서 보면 앞머리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지만.

“처음 보는 책을 앞에 두고, 새로운 챕터로 넘어갈 때 너는 어떤 기분으로 책을 넘겼을까? 두려움? 긴장감? 아니면 설렘?”

잠시 말을 멈추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기사와. 아니, 후미카.”

처음으로 이름을 불린 그녀가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이미 넌 각오가 되어 있고, 준비도 되어 있어.”

“네…….”

”너는 나와는 달라. 이제는 등을 밀어 줄 사람도 있고, 네가 휘청일 때 뒤를 받쳐줄 동료들도 있어. 새로운 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새 챕터의 페이지를 넘기기만 하면, 그 다음에 펼쳐질 세상은 아마도 지금까지 네가 상상해 온 것보다 더 멋지고, 더 반짝이는 세상이 있을 거야.”

그녀는 다시 몸을 움츠렸다. 빛을 받아 반짝여야 할 푸른 보석이, 다시금 검은 숲의 그림자로 사라지려 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검은 앞머리를 살짝 가운데로 모았다. 내 손이 닿는 순간 그녀는 눈을 감으면서 움찔했지만, 조심스레 눈을 뜨자 크게 넓어진 시야에 당황한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네가, 내가 걸었던 것과 같은 길을 걷게 만들지는 않을 거야. 반드시.”

비록 그녀가 곧바로 고개를 붕붕 흔드는 바람에 그 절경을 오래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러면 얼마나 좋아.’라는 만족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렇게 반짝이는 건, 역시 나만 보기엔 너무 아쉽지.”

“그, 가, 감사, 합니다…….”

“후미카.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어. 네가 앞으로 나아갈, ‘사기사와 후미카’의 다음 챕터의 페이지를 넘길 결심만 가져 준다면, 그 다음은 나와 함께 나아가자.”

“프로듀서 씨와, 함께.”

“그래, 나와 함께.”

잠시 말을 멈추고, 나는 호흡과 함께 단어를 정리했다.

”내가 뒤에 있을 땐 네 등을 밀어주고, 내가 앞에 있을 땐 네 손을 당겨 줄 거야.”

잠시동안 정적이 흘렀다. 조용히 시선을 내리깔고 아직은 김이 피어오르는 머그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후미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해볼게요. 프로듀서 씨가 있으니까.”

“고맙다.”

나는 그녀를 향해 새끼손가락을 편 왼손을 내밀었다.

“그럼, 지금부터는 우리 둘만의 약속을 할까?”

후미카는 조심스레 오른손을 들어 나처럼 새끼손가락을 쭉 뻗었다.

“아니, 오른손은 안 돼. 왼손으로 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녀는 왼손을 나와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내게 내밀었다. 서로의 새끼손가락이 교차하고, 거기서 약간 더 나아가 접혀 있는 나머지 손이 톡, 하고 닿았다.

“네가 나아가면, 나도 나아가. 혼자가 안 되면 둘이, 둘이 안 되면 이인삼각(二人三脚)으로.”

늘어뜨린 앞머리 너머로 푸른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만약, 세상 모두가 네게 등을 돌린다 하더라도, 적어도 나는 너의 처음이자 마지막 팬으로써 끝까지 남을 거야. 이게 오늘부터 우리들의 약속이다. 알겠지?”

“……네.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프로듀서 씨.”

한결 후련해진 듯, 표정이 풀어진 후미카를 바라보며 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케이크 다 녹았는데. 어쩌지?”

“아앗……!”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후미카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나는 조금 전까지 느꼈던 불쾌감이 씻은 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따가 가면서 하나 새로 사 줄 테니까 울 것 같은 표정 짓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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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상담 이후로, 저는 프로듀서 씨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기존의 레슨과 트레이닝에 더해 미즈키 씨의 도움을 받아 발음을 교정하고, 받아 본 적이 없는 보컬 트레이닝도 받게 되었습니다. 레슨이나 트레이닝에는 일정이 허락되는 한 프로듀서 씨가 동행하여 세부적인 조율을 해 주었고, 프로듀서 씨가 올 수 없는 경우에는 카에데 씨가 대신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따금씩 프로듀서 씨의 일정이 비게 되면, 제가 트레이닝 하는 곳의 옆에서 같이 트레이닝을 하기도 합니다. 마스터 트레이너 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문자 그대로 뼈를 깎아내는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매번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결코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프로듀서 씨의 운동은 신기했습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것들을 실제로 하고 있었으니까요.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문득 프로듀서 씨의 몸이 평소보다 훨씬 커진 것을 느꼈습니다. 약간 헐렁하던 운동복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으니까요. 신기해하는 저와 카에데 씨에게, 프로듀서 씨는 “원래 해본 사람이 금방 하는 법”이라며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저 말이 거짓말이란 걸 압니다. 밤 늦은 시각,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그의 모습을 저희들은 보았으니까요. 잃었던 것을 되찾는 데는 그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작년에도 이 사람은 이런 행동을 했겠지요. 그리고, 내년에도 누군가를 위해 이 행동을 반복할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떨어지는 것이 없는, 이타적인 희생을.

 

목소리를 다듬고, 발성법을 다듬다 보니 또 한 달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습니다. 모델로서 인지도를 늘려가던 마유는 저보다 3주일 먼저 데뷔 무대를 가졌습니다. 역시 모델 출신이라서 그런지, 데뷔 무대를 갖자마자 그녀의 인기가 순식간에 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이렇게 회상하는 와중에도 사무실의 스케줄 보드에는 그녀의 일정이 차곡차곡 채워져 가고 있습니다.

 

그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프로듀서 씨의 말대로, 하루하루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 어깨를 두드려주는 프로듀서 씨와,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는 카에데 씨가 있어서 저는 계속해서 힘을 내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왔습니다.

 

커다란 경기장. 다이아몬드 모양의 필드 가운데 작은 간이 스테이지가 세워졌습니다. 저 장소에서, 이제부터 저는 간단한 식전행사를 진행할 것입니다. 리허설은 몇 번인가 했지만 가슴이 쿵쾅쿵쾅거리고 손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유니폼 차림으로 옆에 서 있는 프로듀서 씨가 아니었다면, 몇 번은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프로듀서 씨는 저를 볼 때마다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음, 좋아. 아름다워.”

저는 내심 물음표를 띄웠습니다. 평소의 차림대로 셔츠와 스커트 차림에 약간 화려한 색상의 숄을 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쁜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늘어뜨린 앞머리를 정돈하고 가벼운 메이크업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라는 여자는 그것만으로도 그렇게 달라지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들어오고 경기장의 관람석이 조금씩 채워집니다. 단합대회 치고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고, 마지막 경기인 야구를 시작한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좋아, 이제 우리 차례다.”

“저기, 프로듀서 씨…….”

경기장 한 가운데의 대형 전광판에 스테이지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스포트라이트가 작은 스테이지를 비춥니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다가오자, 발이 딱 붙어버렸습니다. 움직이고 싶지만, 도무지 움직이질 않습니다. 저는 거의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프로듀서 씨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약속, 기억하고 있지?”

프로듀서 씨는 빙그레 웃으면서, 새끼손가락을 뻗은 왼 주먹을 내밀었습니다. 덜덜, 떨리는 왼손을 내밀어, 톡, 하고 부딪혔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

정말로 신기하게도, 떨림이 멎었습니다. 발이 가벼워졌습니다. 이제는 걸을 수 있습니다.

“사기사와. 지금까지의 너를 믿어. 네가 쌓아 온 네 자신을 믿어. 자, 두 번째 챕터를 시작하자.”

“네……!”

저는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스테이지로, 힘차게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식순이 끝나고, 저와 사무실의 동료들은 포수 뒤쪽에 마련된 VIP석에 앉아서 게임을 구경했습니다. 프로 선수였다는 말이 사실인 듯, 마운드 위에 선 프로듀서 씨의 실력은 야구를 전혀 모르는 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상대하는 타자들이 방망이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나가 떨어졌습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포수의 미트 정 중앙에 공이 틀어박힙니다. 뒤늦게 타자의 방망이가 움찔하지만, 결국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긴 타자는 꼼짝하지 못하고 그대로 아웃이 선언됐습니다.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마운드 위에 선 프로듀서는 모자를 벗어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면서 다가오는 팀원들과 악수를 하기도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하면서 제각각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이겼다!!”

우리 쪽에서는 맥주의 취기가 적당히 오른 유키 씨는 옆에서 조용히 구경하던 마유를 끌어안고 승리를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점수는 1:0으로, 유키 씨에게 듣기로는 프로듀서 씨의 완봉승 이라고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동료 타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프로듀서 씨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저는 마음 속으로나마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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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나고, 관람객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고 있을 때 한 중년 남성이 카에데를 향해 다가왔다. 남자의 잔뜩 찌푸린 얼굴은 카에데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카에데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씩씩거리는 남자는 그녀에게 물었다.

“타카가키 양. 놈은 아직 안 올라왔지?”

“네, 아마 지금쯤 선수 대기실에 있지 않을까요……?”

“이놈 이거, 어린 녀석이 완전히 능구렁이가 들어 찼구만. 한 달만 기다려 달라고 그렇게 사정을 하더니, 저런 목소리를 들려줘버리면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이번에도 크게 한 방 먹었군.”

푸념하듯 중얼거린 남성은 카에데에게 USB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 놈팽이한테 전해주게. 한 달 안에 베이스 레코딩 해서 가져오라고. 가사는 그 안에 같이 들어있어. 기한만 맞춘다면 내가 근사한 놈으로 하나 뽑아주지.”

카에데가 USB를 받자, 남자는 용건은 끝났다는 듯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다시 사라졌다.

“베이스 레코딩......?”

그녀가 받은 USB에는, 노래의 제목으로 추정되는 단어가 필기체로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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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는 트라이어드 프리무스의 공연이 한창입니다. 저 노래가 끝나면, 그 다음에는 드디어 제 데뷔 무대가 시작됩니다. 스테이지의 뒷편에서는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면서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사기사와. 긴장돼?”

“네……저기 프로듀서 씨.”

나름대로 진정을 해 보려고 합니다만,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을 때 저는 그 사람에게 왼쪽 새끼손가락을 내밉니다. 그 사람은 별 수 없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마찬가지로 왼쪽 새끼손가락을 내밉니다. 새끼손가락이 스쳐 지나가고, 그대로 움직여 움켜쥔 나머지 세 손가락이 톡, 하고 서로 닿았습니다.

 

그 날부터 시작된 우리만의 약속.

그 약속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만들어 준 무대.

당신이 등을 밀어주어 올라선 그 무대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언제나 봐 온 푸른빛.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봐 온 것보다 훨씬 푸르게 빛나는.

Bright Blue.

 

 

 

 

 

 

이상, 후미카 편을 보내 드렸습니다.

후미카도 그렇고 카에데 씨도 그렇고, 1인칭에선 존댓말 화자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반말로 했다가 고쳐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중간에 덜 고쳐진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주세요.

사실 더 길게 쓰고 싶지만 이 이상 끌었다간 배가 산으로 갈 것 같아서 적당히 잘랐습니다.

사실 이것도 망상으로 시작했는데 수습이 잘 안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동일P가 등장하는 작품에는 ~~P 시리즈라고 글머리를 달아놓는데요.

이거 그냥 달지 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목 너무 길지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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