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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HEMY] 765 미스테리 섬머워즈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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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4, 2016 23:08에 작성됨.

....

 

그렇게 두 팀 간에 쫒고 쫒기는 추격전이 벌어지려고 할 때 쯤.

 

또 다른 장소에서는 타카네가 산책이라도 하듯 사뿐사뿐 걸어가고 있었다. 모든 곳에 골고루 작렬하는 태양빛 때문일까, 앞서 푸른 머리의 소녀와 펼쳤던 대결의 열기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일까.

 

휙.

 

살짝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던 고풍스러운 소녀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깨너머로 들고 있던 물풍선 하나를 넘겼다.

 

"날씨가 참 덥군요. 이럴 때는 냉수라도 뒤집어쓰는 게 어떻겠습니까."

 

찰박.

 

얇은 고무막이 바닥에 부딪치면서, 품고 있던 내용물을 쏟아낸다. 주르륵,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미지근한 물. 그 물줄기 중 어느 하나가 타카네의 등 뒤에 서 있던 어떤 이의 발 끝에 살짝 닿고 말았다.

 

"배려는 고맙지만,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

 

타카네는 말소리를 듣자마자 뒤를 돌아보며 방아쇠에 걸려있는 검지를 꾹 눌렀다. 찌익, 강하게 분출되는 물줄기는 반대방향에서 똑같은 것과 부딪쳐 멈췄다가, 바닥에 투두둑 떨어졌다.

 

"잘 지냈니? 타카네쨩."

"예."

 

이미 흙투성이가 된 운동화가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보다 적극적이 된 타카네의 공격. 아즈사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 동안 어디에 가있었니? 한참을 찾았단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요? 자취를 감춘 건 오히려 당신이 아닙니까."

 

분명 다른 이들에 비하면 굼뜬 움직임인데도, 맞출 수 없다. 자기가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게 분명하나 상대는 그 안에서도 미소를 머금으며 쭈욱 버티고 서 있다. 이러다간 또 놓쳐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초조해진 타카네.

 

"더 이상 놓치거나 하지는 않겠습니다. 각오하시길!"

"바라던 바야!"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격추하겠다는 마음으로 힘껏 방아쇠를 당겼다. 그와 거의 동시에 기회를 엿보고 있던 아즈사도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촤아악!

 

두 물줄기가 평행선을 그리다가 서로에게 적중했다. 상반신에 넓게 퍼지는 축축한 감각. 하얀 티셔츠에는 커다란 얼룩이 생겼다. 잠깐동안 흐르는 정적, 팽팽한 긴장감.

 

"......후후."

"우후훗."

 

그 끝에는 작은 웃음소리 2인분. 이젠 더 이상 무섭게 투지를 불태울 필요는 없다. 둘다 사이좋게 탈락이니까.

 

"이런이런, 꽤나 싱겁게 끝나버렸군요."

"그렇지? 좀 더 드라마틱한 승부를 원했었는데."

 

두 사람은 축축해진 부분을 팔로 가리면서 나란히 코토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 타카네. 그 붉은 눈이 가리키는 건, 머리 양 옆에 한 쌍의 리본이 트레이드 마크인- 지금까지의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지나치게 뽀송뽀송한 갈색 단발머리 소녀.

 

모두의 리 - 더이자 평범한 소녀들의 대표, 아마미 하루카.

 

"이것 참 신기한 일이로군요."

"에, 아 안녕하세요, 가 아니지.....이, 이럴 때는!"

"잠깐 하루카쨩, 진정하렴!? 우리 탈락했으니까!"

 

하루카는 깜짝 놀라며 급하게 물풍선을 찾더니 던지려고 들었다. 아즈사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양 손을 내저은 덕분에 겨우 그 시도는 불발에 그쳤다.

 

"에, 그런가요?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데요? 서, 설마 이 근처에 있는 건 아니겠지?"

"후후, 과연 어떨까요."

"네?"

"타카네쨩도 참~ 동료를 놀리면.....아니, 지금만큼은 동료가 아니긴 해도."

 

아즈사가 친절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준 덕분에 하루카는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있었다.

 

"아아, 그렇구나....."

 

그러나 여전히 어두운 얼굴. 타카네가 그 이유를 물었다.

 

"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하하, 그게 저, 어떻게 된 일인지 벌써 탈락한 사람들만 만났거든요. 지금도 그렇고요."

"정말이니?"

"네.....이걸 좋다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하루카는 뒷통수에 손을 가져다대며 복잡미묘한 웃음을 흘렸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떼거지로 귀환하는 길의 패배자 5명을 만났고, 추가로 유키호까지 만났었다. 거기다 지금은 아즈사와 타카네까지.

 

"그럼 아무하고도 싸우지 않았던 거네?"

"네, 뭐. 그렇게 되었네요."

"그럼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싸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생존이니까요. 후후, 그런 것치고는 저는 너무 경솔하게 행동한 감이 있습니다만."

"으음....."

 

타카네의 말대로였다. 이 싸움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탈락시키느냐가 아닌 최후까지 살아남는 것. 즉, 그녀에게 있어서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는 상황. 그러나 하루카는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지금의 운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들 열심히 싸우는 가운데 혼자만이 가만 있다가 덜컥 보상을 받기에는 좀 찔리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아까 리츠코씨까지 만났다고 했지?"

"네. 그리고 유키호도요."

"히비키쨩, 마코토쨩에, 아미쨩, 마미쨩.....어머나, 그 사이에 엄청 많이 탈락했네."

"이제 남은 사람은 하루카까지 해서 다섯입니까."

 

타카네는 야요이와 이오리, 치하야,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미키를 떠올렸다. 지금쯤이면 그 넷이서 싸우고 있을 지도 모르는 법. 그녀는 하루카에게 손짓했다.

 

"타카네씨?"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만, 여기서 조금만 더 머무르는 편이 유리할 겁니다."

 

너무 더우면 저기 나무 그늘에라도 가 있는 게 어떠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잠깐 고민하던 하루카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말씀은 고맙지만, 전 역시 가봐야겠어요."

"그렇습니까. 그럼, 건투를."

"후후, 이렇게 된 이상 이 쪽도 하루카쨩을 응원할게. 지지 말아야 한단다?"

 

탈락한 주제에 너무 오래 있으면 곤란하다. 모두와 함께 정한 규칙인만큼 잘 따라줘야지. 아즈사가 조금 더 앞장 서서 하루카를 스쳐지나가고, 타카네도 그 뒤를 따랐다.

 

"네! 두 분 다 고마워요!"

 

하루카는 잠깐 뒤돌아 떠나가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결심한 그대로 쭉 앞을 걸어나갔다.

 

.....

 

하루카가 두 사람과 헤어지는 사이. 공터의, 정확히는 개수대가 있는 쪽에서는 타카네의 예측대로 전투가 한참 벌어지고 있었다.

 

"미안해, 타카츠키씨. 별로 원한 같은 건 없지만.....!"

 

원래는 이오리를 노렸지만 지속되는 격전 속에서는 점차 아무래도 상관없게 되고 말았다. 자기만 아니라면 그 모든 걸 쏠 수 있게 된 치하야. 여동생처럼 꽤나 아꼈던 동료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공격을 가했다.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모서리에 부딪쳐 튕기는 물방울에 하얀 옷자락이 조금 젖었다. 그러나 아직 탈락할 정도의 타격을 받은 건 아니야. 야요이는 두번째의 사격을 스치듯 피하며 물풍선을 치하야의 품 속으로 강하게 집어던졌다.

 

"큿!"

 

뒤로 성큼 물러나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는 있었지만, 그 여파로 휘청하고 균형을 잃고 말았다. 넘어질랑 말랑 불안하게 뒷걸음치는 두 다리. 야요이는 이 기회를 놓치지않고 두 번째의 물풍선을 준비했다.

 

격렬한 대전 중에서 가지고 있던 물총을 치하야와 미키의 협공으로 그만 놓쳐버린 이상, 이것이 그녀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이자 최후의 일격.

 

"저도, 치하야씨도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똑같으니까. 그러니까!"

 

가장 최적의 타이밍을 노려서, 투척.

 

휙!

 

작은 손을 메우던 동그란 물풍선이 바람을 매섭게 가르며, 치하야의 빈약한 특정부위를 향해 똑바로 날아간다.

 

끼릭-

 

운동화 밑바닥이 길게 미끄러지는 소리. 그와 함께 야요이의 녹색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럴 수가. 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위험했네. 정말로."

 

그래, 예상 자체는 맞았다. 치하야는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잡아냈다.

 

가만히 있으면 맞고 탈락인만큼, 뭐라도 해야했다. 그게 설령 반쯤은 도박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어도 말이다. 최대한 물풍선을 상체에서 멀리 떨어트리기 위해서라도 뻗은 손이, 운 좋게 그걸 터트리지 않고 가두었다.

 

이걸로 치하야는 살아남았고, 야요이는 공격 수단을 잃었다.

 

"윽,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미안해. 아니, 이 말은 빼야겠지."

 

잘 가렴.

 

휙!

 

치하야는 잡아냈던 물풍선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피할 수 없는 공격에 야요이는 치하야처럼 똑같이 덥썩 잡아내려고 했지만, 두 손을 가운데에 모았을 때는 이미 티셔츠 목 언저리에 직격!

 

"에, 어, 으, 우앗! 차가워!"

"......아니 역시, 미안해. 그렇지만."

 

야요이가 펄쩍 뛰며 온 몸으로 당했음을 표현했다. 치하야는 한동안 그 쪽에 시선을 두고 있다가, 전보다도 유달리 차갑게 식은 얼굴로 플라스틱 탄창에 물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순순히 포기하시지!"

"싫은거야! 미키는, 절~대로 우승할거니까! 허니가 기다리고 있어!"

"하! 착각도 유분수지!"

 

깔끔하게 승패가 갈린 그 쪽과 달리, 저 쪽은 아직도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말이 싸움이지, 실제로는 개수대 주변을 뱅글뱅글 도는 김 빠진 콜라와도 같은 미묘한 술래잡기.

 

그것도 미키가 쫒기는 쪽.

 

좀 전의 기세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다시 싸울 준비를 완료한 치하야는 그 쪽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앗, 저기 UFO가!"

"방금 그거,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뒤, 뒤에, 뒤에 곰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미키는 위기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아까부터 계속 이오리에게 낚시신공을 걸었다. 이오리는 끝까지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미키가 늘어놓는 떡밥들이 하나같이 허무맹랑의 극치를 달리는 만큼, 당연한 것이지만.

 

자, 이제 나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치하야는 만땅이 된 물총을 만지작거렸다. 눈 딱 감고 저리로 달려든다면 단번에 두 사람을 탈락시키는 쾌거를 달성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역공을 받아버릴지도. 기껏 타카츠키씨까지 쓰러트리면서 왔는데 맥없이 탈락해버리는 건 사양이다.

 

"음- 그럼......아! 뒤에 맛있는 주먹밥이 보여!"

"적어도 속이겠다는 의지를 최소한이라도 보이란 말이야, 정말!"

 

저 만담과도 같은 상황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않을 터. 치하야는 한 사람이 탈락하고 난 그 때를 노리기로 했다.

 

"이제 그만 포기해! 언제까지 그런 되도 안되는 거짓말을 늘어놓을 건데!"

"에, 마빡아! 저길 봐! 야요이가 그만 탈락해버렸나본데?"

"웃기지 마!"

 

탈락하는 부위는 가까스로 제외. 그 외에는 온통 젖은 미키는 마지막으로 거짓 같은 진실을 고했다. 이미 수많은 거짓부렁에 단련되어있던(?) 이오리는 미키가 자기를 놀린다는 생각에 더욱 맹렬하게 추격했다.

 

치이익, 칙, 촤악!

 

"꺄앗, 역시 마빡이는 야요이가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거구나!"

"닥쳐! 별 시덥잖은 거짓말을 늘어놓는 주제에 잘도 그딴 말을.....어?"

 

열심히 미키를 몰아붙이던 이오리였지만, 급히 제동이 걸렸다. 돌연 고개를 처드는 알 수 없는 위화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기 뒷편에서도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지나치게 조용해졌다.

 

설마.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쯤, 돌연 이마에 차가운 감촉이 달렸다.

 

"우, 꺄앗!?"

 

두 손으로 감싸봤자 맞아버린 건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콧날을 타고 뚝뚝 흐르는 물은 미키에게 한 방 먹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려주었다.

 

"아핫, 잡았다♪"

"너, 너어! 날 속였구나!"

"아니- 이번만큼은 진짜인걸. 그치?"

 

미키는 빈 물총을 든 손을 번쩍 들더니 적당히 흔들었다. 그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찍, 하고 적당한 굵기의 물줄기가 바로 노란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엣!? 치하야씨 방금 그거 뭐야? 미키를 쏘려고 한거야?"

".....이런, 그만 손이 미끄러졌네. 원래라면 지금쯤 내가 최후의 승자로 남았을텐데."

"우와아- 무서워 무서워~"

 

이오리는 두 사람의 교환을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미련이 남아 돌아가지 못하고 있던 야요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하아.....정말이구나."

"이오리쨩, 그, 미안해. 져버렸어."

"됐어. 나도 똑같은 꼴이니까."

 

네 사람 중 두 사람이 탈락. 이제 남은 건 둘만의 대결. 최대한 자세를 낮춘 채 완전히 빈 탄창을 떼어 물을 받던 미키는 모여있던 두 사람에게 어서 가라는 듯 손짓했다.

 

"가자, 이오리쨩. 계속 남아있으면 치하야씨하고 미키씨의 방해가 될 거야."

"네, 네. 알겠습니다. 딱히 말하지 않아도 가려고 했으니까."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 하지만 어딘가 후련한 표정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 적이긴 해도 훌륭했다. 치하야는 눈만으로 그들을 배웅하며, 만일을 대비해 약간 소모한 물마저 완벽하게 충전했다.

 

"미키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래. 그래서, 날 잡고 허니하고 하루 종일 데이트할거야."

"그러니."

 

길게 이어진 개수대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두 사람.

 

"같이 영화도 보고, 놀이공원도 가서 롤러코스터도 타고, 느긋하게 강변을 걷기도 하고. 잠깐 허니의 집에 들러 미키, 직접 만든 요리 서비스에- 나중에는 아주 근사한 호텔에서 멋진 야경을 구경도 할 거고, 음 그 밖에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시간적으로도 거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꽤나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저기 있지, 만약 치하야씨가 이긴다면- 허니하고 뭐할거야?"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사망플래그급 대사를 마구 늘어놓던 미키가 갑자기 물었다. 야요이를 쓰러트리고 나서는 더욱 표정을 굳히고 있던 치하야가 살짝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 글쎄. 난 프로듀서가 좋다기보다는, 그저 이 승부를....."

"아니다. 들을 필요는 없겠네. 어차피 미키가 이길테니까."

 

촤악!

 

".....과연 그럴까."

 

치하야는 미키가 기습적으로 날린 공격을 가뿐하게 피하고는 반격을 날렸다. 미키도 지지 않고 피하는 데 성공. 서로 짜기라도 한 듯 타타탓, 개수대에서 떨어져 널찍한 곳으로 이동하는 달과 별. 흉흉한 기운이 그들에게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가운데-

 

"잠깐! 설마 이 하루카씨를 잊고 있다는 건 아니지!?"

 

햇님 또한 의기양양하게 전장에 도착.

 

"아무리 치하야씨라고 해도.....양보할 수 없는 게 이 미키에게 있는 거야!"

"그런 건,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어!"

 

그러나 어째서인지 오늘만큼은 존재감이 다소 옅다. 난입자를 신경쓰지도 않고 스쳐지나가는 치하야와 미키. 지금 그들에게 중요한 건 자기가 탈락하냐, 아니면 상대가 탈락하냐 이 둘밖에 없다!

 

피츙, 촤자작!

 

"부탁이니까 뭐라도 반응 좀 해줘!"

 

보다못한 하루카는 얼굴을 붉히며 빽 소리쳤다.

 

두다다닷!

 

"에잇!"

"윽, 당할까 보냐!"

 

처절한 무관심만이 돌아왔다. 그래, 너희들이 그렇게 나온다는 거지. 새롭게 결심을 굳힌 하루카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온전히 비축해둔 물풍선 하나를 꼭 집어들었다.

 

공격만이 그들의 주의를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을 넘어- 의문의 1패를 선사해줄 수 있으리라!

 

"에잇! 맞아라!"

 

휘익!

 

"우왁!"

 

분명, 노린 것은 치하야쨩하고 미키였을텐데. 마음과는 다르게 물풍선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들어가 바닥을 적셨다. 꼭 이럴 때 덜렁이 속성 발동이라니. 하루카는 제어할 수 없는 스스로의 속성에 혀를 찼다.

 

"아, 하루카! 있었어?"

"벌써 탈락한 줄 알았는데 의외네."

 

두 사람이 이제서야 하루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서로에게 죽일 듯이 총질했으면서 이럴 때만큼은 죽이 척척 맞는다.

 

".....응. 그렇게 되었어."

 

철컥.

 

하루카는 당당하게 두 사람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굳이 지금 끼어드는 이유를 알 수가 없네."

"맞아, 우리 둘 중 하나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게 좋을텐데. 물론, 그렇다고 해도 미키는 절~대 질 생각이 없지만."

 

치하야와 미키도 멈춰 서서 서로를 겨누며 하루카를 곁눈질했다. 두 사람의 말은 충분히 일리 있다.

 

마코토나 히비키처럼 인외의 경지에서 줄타기하는 경지는 아니더라도, 치하야는 오랜 트레이닝으로 그 나이 여자애치고는 신체 스펙이 꽤나 좋은 편에 속한다. 그리고 미키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전황을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요주의 인물. 평범한 자신으로서는 한 사람도 상대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얻은 승리는 하나도 기쁘지 않아."

 

씨익. 하루카는 자신만만하게 웃어보였다.

 

촤악!

 

"꺅!"

 

그렇게 폼을 잡은 것 치고는 약 1초도 안되어 새된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어쨌든 이걸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개시다.

 

"하루카, 아무리 너라고 해도.....봐줄 생각은 전혀 없어!"

"우와, 잠깐만! 스탑! 살려줘!"

 

나는 그, 타카츠키씨도 쓰러트렸단 말이야. 마치 최후의 인간성마저 저버렸다는 듯 치하야가 처절하게 외쳤다. 하루카가 방금 전의 의연한 태도를 집어던지고 기겁하는 사이, 차가운 궤적이 한 차례 슥하고 그 둘 사이를 가로질렀다.

 

"거기 둘, 미키를 잊고 있으면 곤란한거야!"

"그렇게 안달하지 않아도, 곧 쓰러트려줄테니까!"

"지금이다!"

"앗 차거엇!"

 

하루카는 이 때다하고 약삭빠르게 미키를 쐈다. 기습에 오른쪽 어깨를 맞고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나는 미키. 공격에는 반드시 빈틈이 따르는 법. 치하야는 하루카의 옆쪽에 파고들었다.

 

"에, 으, 으앗!"

 

치이익!

 

"큭!"

 

당황에 눈이 먼 탄환이 의외로 제 할 일을 했다. 하마터면 얼굴에 직격할 뻔한 그걸 오른쪽으로 피하는 치하야. 그 순간 충격에서 회복한 미키가 타이밍 좋게 포착해내고는 총격을 가했다.

 

"잡았다!"

"아니, 아직이야!"

 

치하야도 급하게 물총을 쐈다. 크게 맞부딪치는 두 물줄기. 아까워라. 조금만 더 빨랐으면 잡았는데. 미키는 초록 눈을 굴리며 곧 하루카가 끼어들 것을 예측하고는, 그 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드, 들켰나!?"

 

찌익, 치이익! 치익!

 

한 발은 겨우 상쇄. 그 다음은 회피. 그리고 마지막도, 일단 회피 성공!

 

"우와, 아, 앗!"

 

거기까지는 좋은데 균형을 무시한 후폭풍이 몰려오는 것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양손을 퍼덕거리며 넘어질 듯 말듯 휘청거리는 하루카. 잠깐, 여기서 치하야쨩이 날 쏘기라도 하면 탈락인데! 초조함이 가득 묻어나는 초록 눈동자에, 푸른 머리카락을 한 소녀가 비친다.

 

"이런.....!"

 

걱정이 그대로 실현되는 순간. 만약에 운이 아주 좋아 겨우 치하야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고 쳐도, 뒤에 미키가 있다. 이젠 틀렸구나.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후회는 없어. 하루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눈을 꼭 감았다.

 

쭈르륵.

 

"큿.....여기까지, 인가."

"에?"

 

설마.

 

하루카는 슬며시 눈을 떴다. 앞에 휘날리고 있는 푸른 머리카락이 보인다. 자신은 아무데도 젖지 않았다.

 

그렇다면.

 

"치하야쨩!"

"후후, 아쉽네. 레이져였다면, 어쩌면 튕겨내거나 했을텐데."

"응, 그랬을 지도 모르는 거야."

 

치하야가 고개를 조금 숙이며 평평한 특정 부위에 손을 대고는 체념과 아쉬움이 깃든 웃음을 흘렸다. 푹 젖어버린 옷감. 속옷까지 스며드는 습기.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완벽한 탈락. 숨가쁘게 돌아가던 트라이앵글의 한 면이 깨졌다.

 

".....왜 그랬어? 나 같은 건 신경쓰지 말고 피해버리면 되었을텐데."

"글쎄, 왜였을까."

 

물총이 아니라 실제 탄환이라도 맞아버린 것 같은 분위기. 다소 과격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긴 해도 이거, 일단 물총 싸움이다. 딱히 인명 피해 같은 건 나지 않았다. 세계의 존망을 건 장절한 사투 같은 것도 아니다.

 

"치하야씨~ 방해하지 말고 슬슬 비켜줬으면 하는데."

"분명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었을 텐데. 이상하네."

"계속 그러고 있으면 나중에 코토리한테 일러버릴지도 몰라?"

 

미키의 요청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치하야는 꿋꿋하게 버티고 섰다.

 

"아마도 그건.....치하야쨩에게 상냥함이 남아 있었다는 게 아닐까."

"후훗, 꽤나 낮간지러운 말이네."

"하루카도 그만 어울리는 거야."

 

불쌍하게도 미키의 말은 저 둘에게 전혀 닿지 않는 듯 했다.

 

"난 이제 틀렸어. 이러고 있지말고 어서 가. 미키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응."

 

하루카는 세상의 위기라도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미키와 대치했다. 그제서야 탈락자답게 쓸쓸히 돌아가는 치하야. 다시 한 번 이르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물총 싸움이다. 알았지 다들?

 

"미키, 그거 알아?"

"뭔데?"

"이제 우리 둘밖에 안 남았어."

"거짓말."

 

말은 그렇게 하지만 감으로 눈치채고 있었다. 미키는 흘낏 물통의 잔량을 확인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카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하루카! 널 여기서 꺾고, 허니를 쟁취해내보이고 말겠어."

 

단 한 발. 그것만으로도 마지막 승부를 짓기에는 충분하다는 자신감이 미키에게 있었다. 하루카도 그에 맞서 하나 남은 물풍선을 들어보였다.

 

"나라고 해서 지지 않아. 아니.....이겨보이겠어!"

 

승리의 여신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그것은 아마, 이걸 읽고 있는 모두의 마음 속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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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 미스테리 섬머워즈.

그것은, 프로듀서를 상품으로 걸고 벌어지는 대혈투.....(?)

준비물: 몸뚱이, 이기겠다는 욕망

* 싸움에 사용되는 물총과 물풍선은 행사 측에서 지급해줌

 

같은 느낌으로 써봤습니다. 옛날에 네x버에서 연재되었던 연x의 굴레라는 웹툰에서 나왔던 미스테리 섬머워즈를 모티브로. 본격(노)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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