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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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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3, 2016 21:27에 작성됨.

카와즈님이 제공해주신 플롯을 바탕으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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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기원 덕분인지는 몰라도, 치하야는 악몽에 시달리는 일 없이 푹 잠들 수 있었다. 그 다음날,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올 정도. 이상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누군가의 조언대로 한 것도 아니었는데.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춘 악몽. 치하야는 곤란해하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제는 잘 잤어?"

 

아침에 사무소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모두가 호들갑을 떨며 치하야의 수면을 걱정했다. 그녀는 다소 얼떨떨한 얼굴로 응, 이라고 대답했다. 모두는 기뻐하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쭉 좋은 꿈을 꿀 수 있도록 빌어주었다.

 

그 뒤로도 치하야는 계속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쭉 시달렸던 게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 같다. 다만, 모두가 바란 대로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느덧, 꽤 긴 시일이 흐른 오늘.

 

"으음....."

 

치하야는 침대 안에서 곧장 튀어나왔다. 바쁜 일정, 조금 무리한다 싶을 정도로 수면 시간이 줄었다. 그런데도 예정해둔 때보다 몇 분 더 일찍, 거뜬하게 일어날 수 있다.

 

정말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는데.

 

생생했던 두려움은 이제 색이 바랜 사진처럼 두뇌 한 구석에 남아있다. 그조차 시간이 더 지나면 심연의 저편으로 가라앉고 말겠지. 끝없이 몸집을 불리던 불안함도 어딘가 뚝, 하고 잘려나간 것만 같다.

 

대체 왜?

 

이상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다. 그동안 지고 있었던 답답한 감정들을 내려놓은 덕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가슴 안 쪽이 조금 따갑다. 일말의 걱정이, 남아있다.

 

"....."

 

심각할 정도로 아픈 건 아니지만, 잊을만 하면 콕콕 찔러온다. 끈질겨. 이것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기를. 치하야는 속으로 그렇게 빌며 집 밖을 나섰다.

 

.....

 

끼이익-

 

"안녕하세요."

 

휴일이거나, 출석 일수를 채우기 위해 학교로 가는 게 아니라면 거의 언제나 이 작고 낡은 사무소로 온다. 조금 거슬리는 소리를 내는 문을 열며, 고개를 살짝 숙이는 치하야.

 

"어서 오렴."

 

"어머, 치하야쨩. 좋은 아침~"

 

"안녕하세요!"

 

날마다 그 수가 달라지지만, 반갑게 맞이해준다는 건 변함없다. 오늘은 코토리 외에도 아즈사와 야요이 두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약간의 미소가 떠오른다. 가방을 적당한 곳에 두고, 어제 미리 몇 번을 확인했을 빽빽한 화이트보드에 다시 시선을 둔다.

 

앞으로 2시간 정도 뒤에 잡지 취재가 있다.

 

그 때까지는 음악을 듣고 있을까. 치하야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mp3 플레이어와 이어폰을 꺼내든다. 이미 출근길에서도 같은 행동을 했지만 통 질리지 않는 듯 하다. 이어폰을 낀 치하야가 원하는 곡을 찾아 재생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취재, 어디서 해?"

 

아즈사다. 이미 불러놓고는 방해하는 게 아닐까하고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치하야는 신경쓸 것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아이돌 강강, 이라는 곳에서 하는 것 같더군요."

 

"아이돌 강강? 음-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예전에 미키도 같은 곳에서 취재를 했다고 하네요."

 

치하야는 귀에 꼽힌 것을 빼고 플레이어를 껐다. 음악을 듣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도 소중한 시간이다.

 

"그렇구나."

 

"네."

 

"앗, 치하야씨 그 쪽 분과 인터뷰하게 되는건가요!"

 

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야요이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기가 하는 것도 아닌데 꽤 들뜬 표정.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걸까. 치하야는 의문을 품었다.

 

"왜 그러니?"

 

"아, 그게 실은 반 친구가 종종 그 잡지를 보고 있는 걸 봤어요."

 

"그러니? 어쩌면 취재한 것도 보게 될 지 모르겠네."

 

"그렇겠네요! 잘 됐다, 마침 그 애 치하야씨 팬인 것 같아서-"

 

"어....."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지켜봐주는 건 알고 있지만, 설마 다리 건너 가까운 곳에서도 존재하고 있을 줄은. 치하야는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 팬이 있다는 걸 안다는 건, 신기하고도 좋은 일이네."

 

"아, 네. 그렇습니다만."

 

"우후훗, 치하야쨩도 솔직하게 기뻐하면 좋을텐데."

 

사무소 한 구석에 모인 세 사람. 화제를 달리하면서 계속되는 대화. 이런 나날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무심결에 빌어버릴 것만 같은 온화하기 그지없는 시간.

 

"아, 그렇지 치하야쨩."

 

아즈사가 생각났다는 듯 갑자기 치하야를 불렀다.

 

"네?"

 

"이젠 좀 괜찮아졌니?"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던 것이다. 그 때 그 일을. 그 뒤로도 괜찮아졌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아무래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아, 그게."

 

네, 그렇게 대답하려고 했는데. 치하야는 그만 의도와는 다른 말을 하고 말았다.

 

"그, 설마....."

 

야요이가 바로 울상을 지었다. 고사리같은 양 손이 그녀의 것을 꼭 붙잡는다. 치하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달라.

 

"타카츠키씨.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정말이니?"

 

그 쪽을 향해있는, 조금 흔들리는 붉은 눈동자. 치하야는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괜찮아요."

 

그렇다. 지금까지 아무 일 없이 숙면을 취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치하야의 속은 바싹 타올랐다. 마치 들키면 안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직 남아있던 조각이 안쪽을 후벼판다.

 

따갑다.

 

"이젠 괜찮아요. 그런 꿈, 더 이상 꾸지 않으니까."

 

치하야는 어디까지나 사실을 고했다.

 

.....

 

"윽, 하앗!"

 

주어진 일정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모두와 작별인사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온 치하야. 자주 트레이닝까지 모두 끝내고 내일을 위해 잠을 자고 있을 터였다만, 그만 번쩍 눈을 뜨고 말았다.

 

"후우, 후우, 하아....."

 

온 몸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오랜 시간을 넘어, 치하야는 다시 악몽을 꾸고 말았다.

 

저번에 봤던 것들보다도 훨씬 직접적이고, 무시무시한 악몽을.

 

"후욱, 후으으....."

 

강가를 가로지르는 다리. 그를 따라 깔려있는 선로. 전차가 그 위를 지나간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바람을 가르며. 심상치 않다. 하늘에 설치된 카메라는 길게 이어지는 행렬을 쫒아간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다리는 일직선이 아니다.

 

키기기긱!

 

오른쪽으로 꺾인 길을 따라, 쇠긁는 소리를 내며 전차가 휘어진다. 하지만, 완전히 선로를 타지 못하고 조금씩 바깥 쪽으로 삐져나온다. 결국, 강변으로 추락하는 열차.

 

콰자작!

 

선두를 달리고 있던 차량이 바닥에 처박혀 알루미늄 캔처럼 우그러졌다.

 

쿵, 쿵!

 

그 뒤를 따라 마치 누군가 내동댕이친 것처럼 이리저리 튀는 2호차와 3호차. 나머지 차량들도 우르르 떨어져내린다.

 

파각! 투쾅! 펑!

 

깨지고, 찌그러진다. 산산히 박살난 파편이 허공을 매섭게 가르며 저 먼 곳까지 후두둑 튀어나간다. 그러다 겨우 한 차량만이 완전한 추락을 면한 체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섬뜩한 광경.

 

처참한 잔해가 클로즈업되는 것을 마지막으로, 치하야는 튕겨지듯 현실로 귀환하고 말았다.

 

"우읏....."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등 뒤에 차가운 감각이 내달렸다. 목이 바싹바싹 타오른다. 강한 갈증을 느낀 그녀는 휘청거리며 잠깐 부엌에 들어가 물을 마시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도로 침대에 기어들어가 바로 눕고는, 눈을 감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제처럼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한 번 쫒겨난 수마는 돌아올 생각이 없다.

 

침대 맡에 놓인 시계에 시선이 갔다. 새벽 2시. 기다리던 내일이 찾아왔긴 해도, 너무 이른 시간에 깨어나고 말았다. 일정을 순조롭게 소화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시간은 더 자둬야 한다.

 

수면은, 의무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불을 머리 끝까지 푹 눌러써본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본다.

 

부스럭, 부스럭

 

안 돼. 몇 번을 뒤척거리던 그녀는 결국 자는 것을 포기했다. 또 악몽을 꾸고 말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불안함이 착실하게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어떻게든 몰아내고 싶다.

 

치하야는 벌떡 일어나 이불을 내팽겨치듯 걷어냈다. 정리도 하지 않고 바로 리빙 룸으로 직행. 불을 켜고, 오디오와 음반, 헤드폰을 찾는다. 정리해둔 선반이 흐트러져도 상관하지않고,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누르고 시디를 밀어넣는다. 대충 머리를 쓸어넘기며 헤드폰에 양 귀를 맞춘다.

 

마치 술을 찾는 사람의 몸부림과도 닮았다.

 

꾹.

 

마지막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녀가 그토록 갈구하던 음악이, 공기의 진동이 일정한 규칙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한다. 둔중하게 울리는 건반의 소리. 뒤이어 찾아오는 애수어린 현의 떨림. 피아노와 첼로, 두 악기가 함께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선율은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펜바흐의 미발표 곡, 자클린의 눈물.

 

치하야의 두뇌 속에 보관되었던 정보가 즉각적으로 튀어나온다. 자클린, 자클린 뒤 프레. 첼리스트. 불행한 삶을 살다 죽은 사람.

 

그녀가 병에 걸려 죽어가는 도중에도, 가장 가까운 사람은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

 

속에서 쓴 물이 올라왔다. 치하야는 인상을 찌푸리며 쓰고 있던 헤드폰을 거칠게 벗었다. 멈춤을 누르고 시디를 케이스로 집어넣었다. 음악에는 아무 잘못 없다. 우연히 고른 게 이거였을 뿐이야.

 

그렇게 믿고 싶어.

 

후우, 후.....치하야는 심호흡을 하며 끓어오르는 속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다른 음반을 뒤적거리다 또 하나를 골라 틀고는 다시 헤드폰을 썼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마치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격정적으로 튀어나가는 두 악기 소리. 치하야는 두 눈을 감았다.

 

한순간이나마 그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기고만 싶었다.

 

"......"

 

하지만.

 

"그만두자."

 

힘없이 헤드폰을 벗어던졌다. 외딴 방. 혼자 웅크려 앉은 체, 지금까지 봐왔던 꿈들을 상기해본다. 무덤, 장례식, 어둠, 사고. 단순한 악몽이 아니야. 조각조각 떨어져있지만, 실은 연결이 되어있어.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은 초조함에 시달리면서도, 치하야는 흩어진 퍼즐들을 짜맞춰 본다.

 

사고가 일어나, 누군가가 죽는다. 765 사무소와 관련있는 사람이.

 

그럼 그 사람은, 누구인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치하야는 벌떡 일어났다. 우당탕 허우적거리며 침실로 뛰어들었다. 불을 키는 것도 잊고서는 어둠 속을 헤매다, 겨우 머리맡에 둔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후우, 찾았, 다."

 

그녀는 스스로 의식하는 것보다도 빠르게 어떤 이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저장된 이름, 아마미 하루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순간 망설이다 마지막 통화버튼까지 꾹, 눌렀다.

 

뚜- 뚜-

 

"으응.....누구? 무슨, 일로....."

 

무기질적인 통화연결음이 몇 번을 반복해서 흐른 끝에 겨우 전화가 연결되었다. 잠에 취한 친구의 목소리. 치하야는 그에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울 것만 같아졌다.

 

"하, 하루카, 잘 들어줘."

 

".....응."

 

하루카는 잠이 확 달아났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떨려있어서.

 

"당분간은 전철보다는,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줘. 부탁이야."

 

이유까지 말해줄 여유는 없었다.

 

"아, 알았어. 그렇게 할게."

 

".....고마워. 이, 이만 끊을게. 밤늦게 전화해서 정말.....미안해."

 

"저, 저기 치하....."

 

뚝.

 

후우, 전화를 끊은 치하야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열이 바짝 올랐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모든 게 끝나고나서야, 방금 자기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일방적으로 내밀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나 무례한 짓을 저질렀는지도.

 

"사과, 해두지 않으면.....안되겠네."

 

마침 내일, 아니 정확히 몇 시간 뒤에는 하루카와 같이 움직이게 된다. 그 때는 반드시 사과하자. 띠리릭, 단순한 음을 조합한 벨소리가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그만 울어버릴 것만 같으니까.

 

".....하아."

 

전화는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대충 손이 닿는 곳에 갖다 둔 뒤, 침대에 몸을 던지고 아까 던져버렸던 이불을 끌어모아 둘둘 둘렀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2시간도 안되었다.

 

조금이라도 자둬야 활동에 차질을 빚지않는다.

 

다소 제멋대로의 요구에도 하루카는 분명 그렇게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엇보다, 꿈은 꿈이다. 냉정히 돌이켜보면 나는 지금까지 그저 허상의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가. 일설에는 꿈이 미래의 일을 예지한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치하야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모든 게 끝났다고, 걱정할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없다고 계속 되뇌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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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릴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바라고 바라길 계속하네(feat 대상 a)......는 파워 중2 발싸

다이나믹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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