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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토바 리사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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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0, 2018 15:35에 작성됨.

 

0.

“리사~ 저녁 먹게 아빠 좀 오시라고 하렴.”

“네에~.”

 

부엌에서 퍼지는 맛있는 냄새와 함께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아빠가 일하는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토바가의 가장은 휴일에도 불구하고 종종 서재로 들어가 업무를 할 정도로 근면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리사의 아빠는 집에 있을 때에도 여느 가정의 아빠들과는 달리 깔끔한 복장에 항상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있는다. 언제 어디서나 멋있는 모습을 하고 성실한 아빠. 리사의 아빠에 대한 사랑은 식을 날이 없어 보인다.

 

2층에 있는 아빠의 개인 서재는 6평 남짓한 넓이에 책장과 책상, 의자 이외의 물건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투박한 방이다. 책장에는 업무 관련으로 보이는 전문 서적들과 취미로 읽는 어려운 소설책들이, 책상에는 노트북과 보고서 용지 등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특별할 거 하나 없는 방 이지만 좁은 공간을 메운 차분한 공기에서 리사는 아빠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일에 집중 하고 있는 아빠를 부르러 서재에 가는 일은 리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좋아하는 임무 중 하나였다. 서재에 도착한 리사가 가볍게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아빠~ 엄마가 저녁 식사 하래요. 응?”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책상 앞에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조금 전까지 사용한 걸로 보이는 노트북이 펼쳐진 채 기계적인 소음을 내고 있었고 반쯤 담긴 커피잔과 뒤로 밀린 의자가 보였다.

 

“화장실 가셨나…?”

 

조용히 의문을 표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보니 아빠의 서재에 혼자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 일지도 모르겠다. 평소에는 아빠가 사용하지 않을땐 문을 닫아놓고 애초에 볼 일도 없는 리사가 들어갈 일은 없으니 가끔 청소를 하기 위해 엄마가 출입하는 일이 전부다.

 

“흐응~.”

 

은근히 고개를 내미는 호기심에 리사가 콧소리를 내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오래 둘러볼 필요도 없이 리사가 가끔씩 살펴본대로 흥미를 끌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는 삭막한 방이었다.

 

“응? 이런게 있었던가?”

 

그중에 리사에 눈에 띈 건 본적 없는 상자였다. 하얀색에 장식 같은 건 없는 두꺼운 종이 상자 였지만 리사는 그 상자에 관심이 갔다.

 

「리사」

 

상자 옆면에 검정색 싸인펜으로 써진 리사의 이름. 글씨체는 말 할 것도 없이 아빠의 글씨였다. 아빠의 방에서 발견된 자신의 이름이 써진 상자. 그 안을 확인하지 않을 정도로 리사는 어리지도 어른이지도 않았다.

 

잠시 뒤 파랗게 질린 얼굴의 리사가 방에서 뛰쳐 나왔다.


 

1.

“하아~.”

 

프로덕션 내에서 열리는 정기 회의에서 간신히 해방된 프로듀서의 입에서 커다란 한숨이 나왔다.

 

‘아이돌들을 상대하는 거나 스폰서나 방송사에 영업을 하는 건 나름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 하는데 사내 회의만은 영 적응이 안된단 말이야.’

 

같은 회사의 높으신 분들이나 여러 부서의 프로듀서들이 모인 자리. 거기다 자신은 이제 막 시동이 걸린 제3예능과 라는 부서의 말단 프로듀서이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대기업의 CF나 돔 규모의 라이브와 매일이 바쁜 전국 투어 같이 눈부신 행적을 그리고 있는 아이돌 부서의 선배 프로듀서들과는 아무래도 입장에 차이가 있다.

 

‘뭐, 다들 열심히 하라고 응원 해주고 있지만 말이야.’

 

실적 보고회에서 다들 주절주절 말 할 동안 일어나기 무섭게 앉아 버리는 무실적에도 ‘괜찮아! 이제부터 시작인 아이들인걸.’ 라고 격려해 주기도 하니.

 

“하아아~.”

 

하지만 그런 격려 뒤에도 신참에 후배 라는 위치로 인한 따끔한 충고는 끊이지 않았다. 이것 까지는 견딜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충고야 말로 지금의 프로듀서에게는 피와 살이 되는 중요한 기술들이었다.

 

“그래도 복장이 헐렁 하다느니 어울리지 않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아니잖아! 키가 작아서 그렇게 보이는 거 뿐이라고! 아니, 솔직히 조금 큰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양복을 맞춤으로 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비싸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아이돌들을 뒤에서 받쳐주는 니가 체력이 약해서는 안된다. 밥은 잘 먹고 있냐. 구두는 몇센치를 쓰냐. 조금 더 높이는 건 어떠냐 등등.

 

외견 때문인지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선배들의 과한 걱정이 프로듀서의 멘탈을 갈아먹고 있었다. 하다못해 복장에 관해서는 담당 아이돌인 어린애들 한테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이제는 어느정도 해탈 하기도 했다.

 

“후~! 어쨋거나 회의는 무사히 마쳤으니 부서로 돌아가자! 프로듀서가 아이돌들 한테 기운 없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두 손으로 뺨을 짝 소리 나게 치고 정신을 차려본다.

 

이런 행동들이 자신을 더 어려보이게 만든다는 것도 모르고 좁은 보폭으로 자신의 부서. 제3예능과로 향하는 프로듀서였다.

 

“그럼 치에들은 먼저 실례할게요.”

“바이바이~ 리사쨩!”

 

사무실로 가는 길에는 담당 아이돌들도 사용하는 레슨실이 있다. 마침 레슨실에서 나오는 치에와 미리아를 발견한 프로듀서가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사사키랑 아카기는 이제 집에 가니?”

“아! 프로듀서 님.” “프로듀서! 일은 끝난 거야?”

“뭐, 그렇지. 레슨실에는 아직 마토바가 남아 있는 거야?”

“...네.” “으...응..”

 

치에와 미리아의 망설임 섞인 대답에는 프로듀서도 짐작 가는게 있었다. 최근들어 리사의 연습량에는 프로듀서도 심상치 않음을 느낄 정도다. 전에는 아리스와 함께 어서 새로운 일거리를 가져오라며 소란 이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지겹다고 말했던 레슨을 아침부터 저녁 까지 쉬지 않고 하고 있으니 걱정이 들만도 하다.

 

“치에… 요즘의 리사쨩을 보고 있으면 불안해져요. 언제나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제대로 쉬지도 않고…”

 

치에의 어린 얼굴에 근심이 쌓인 걸 보면 프로듀서도 마음이 아프다. 저절로 찌푸려지는 눈썹을 바로 잡으며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음… 나도 사사키의 의견에는 동의해. 하지만 다른 얘들도 아니고 마토바가 하는 일이니 말이야. 우리 부서에서는 타치바나와 사쿠라이와 함께 프로의식이 가장 높기도 한 마토바가 몸을 망칠 정도로 레슨에 무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워. 실제로 지금도 아픈데 없이 연습을 잘 하고 있고 말이야. 그야 나도 마토바가 평소랑 다르다는 건 알지만 정확히 그게 뭔지 알지 못하면 안그래도 자립심이 강한 마토바가 내 이야기를 들을 것 같지는 않아.”

“그렇...군요.”

 

사사키 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인 건 마찬가지지만.... 아쉽게도 마토바 한테 카오루나 니나 처럼 순진한 면을 기대할 수는 없으니.

 

“...아카기는 어떻게 생각해?”

“미리아는… 리사쨩이 즐겁지 않다고 생각해.”

 

미리아의 대답에 프로듀서가 잠깐 숨을 멈추고 다시 물었다.

 

“즐겁지 않다고?”

“응. 왜냐면 리사쨩 전혀 웃고 있지 않은걸. 춤 출 때는 언제나 웃으면서 즐거워 보였는데. 미리아나 카오루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나 웃으면서 가르쳐 줬어. 하지만 지금은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계속 무서운 얼굴로 춤만 추는걸.”

 

미리아의 이야기를 들은 프로듀서는 한동안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언젠가 미리아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프로듀서! 지금 일 하는 거 재밌어?』 그때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더라? 무언가에 쫓겨서 어떻게든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는 한심한 프로듀서였다.

 

“지금의 마토바도 똑같은 건가…?”

“프로듀서…?”

 

고개를 든 프로듀서의 눈에 불안한 얼굴을 한 미리아와 치에의 얼굴이 비쳤다. 거기에 입꼬리를 올리며 통통 하는 소리와 함께 들고 있던 서류 뭉치로 두 사람의 머리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마토바의 일은 걱정하지 말고 나한테 맡겨! 이번에는 제대로 프로듀스 해볼테니깐!”

“....! 응!” “....넷!”

 

지금은 나를 믿고 웃으며 대답해 주는 아이돌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 될 때다!


 

2.

“원, 투, 쓰리, 포! 원, 투, 쓰리, 포!”

 

트레이너의 박자에 맞춰 격렬하게 스텝을 밟고 마지막 포즈를 취한다.

 

“하아! 하아!”

“자, 자! 여기까지! 마토바도 이제 정리하고 돌아가야지.”

 

볼성사납게 턱밑 까지 차오르는 숨을 가다듬지도 못하고 무릎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자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서 머리카락은 이마에 덕지덕지 달라붙었고 옷매무새는 여기저기 흐트러져서 꼴불견 이라고 생각했다.

 

“아직이에요. 한 번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너 말이야. 그게 도대체 몇 번째 하는 말인줄 알아? 요즘들어 매일 같이 붙잡고 늘어져서는. 연습에 열중하는 건 좋지만 그만큼 쉬는 일에도 시간을 투자해야 된다는 거 마토바 라면 잘 알잖아.”

 

트레이너가 한숨을 쉬며 말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더 할 수 있다. 그런데 몇 번째..? 내가 그렇게 자주 말했던가? 잘 기억이나지 않았다.

 

“쉬는 거라면 집에서 충분히 하고 있어요. 컨디션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고요.”

“트레이너님이 말하는 건 신체가 아니라 정신을 말하는 거야.”

 

대답한 건 트레이너가 아니라 갑자기 찾아온 프로듀서였다.

 

“아! 프로듀서님.”

“수고하십니다. 마토바 한테는 제가 잘 얘기할테니 오늘은 먼저 돌아가세요.”

“잠깐…! 뭘 멋대로…!!”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

 

프로듀서의 말에 발끈하고 나선 리사에게 손을 들어 제지 시키는 프로듀서. 불만스러운 얼굴을 한 리사 였지만 프로듀서의 진지한 표정과 곤란스러워 하는 트레이너를 보고 무시할 정도로 머리에 열이 오른 건 아니었다.

 

“그럼 저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마토바, 적어도 오늘만은 프로듀서님 말대로 충분히 쉬도록해.”

“...수고하셨습니다.”

 

레슨실을 퇴장하는 트레이너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 하고는 프로듀서를 쏘아보았다.

 

“그래서? 중요한 이야기 라는 건 새로운 일이야?”

“뭐, 대충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말 하자면 프로듀스에 관한 거지.”

“하아? 누구를 말이야.”

“당연히 마토바 너지.”

“...”

 

눈을 날카롭게 뜨고 프로듀서를 노려보는 리사. 하지만 프로듀서도 지지않고 올곧은 눈으로 리사를 마주보았다.

 

“마토바, 너 말이야 요즘 뭐 하고 있어?”

“... 지금 웃길려고 하는 거야? 당연히..”

“레슨 하고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내가 말하는 건 레슨 이외에 뭘 하고 있냐는 거야.”

“지금 책임전가라도 하려는 거야? 내가 일이 아니라 레슨만 하는 건 프로듀서가 영업을 제대로 못해서 그런거잖아!”

 

‘아...! 이게 아닌데?’

 

“아,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리사의 일갈에 눈에 띄게 당황하는 프로듀서. 방금전까지 당당히 서서  폼잡고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두 팔을 휘저으며 어떻게든 말을 정리하려고 바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아~ 정말!”

 

그런 프로듀서의 한심한 모습을 보고 리사도 기세가 빠져나간 듯 푹 하고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한 손으로 머리를 헝크러트렸다. 그리고는 다소 독기가 빠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프로듀서가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뭐야?”

“아..하하하… 그게 요즘 마토바는 레슨 이외에는 어떻게 지내나 싶어서 말이지.”

 

머쓱한 듯 뒷통수를 긁적이며 말을 꺼내는 프로듀서.

 

“어떻게 지내냐지 그야…”

 

평일에는 학교가 끝나면 레슨실에 와서 레슨을 받고 돌아간다. 그리고 휴일에는 누구보다 일찍 레슨실에 와서 저녁때 까지 쉬지 않고 연습을 한다.

 

‘어라? 나 뭔가 빠트렸나..?’

 

“마토바, 마지막으로 사무실에 가서 모두와 이야기 해본게 언제야?”

“언제냐니 그야 방금도…”

 

‘레슨이 끝나고 먼저 돌아가는 치에와 미리아에게… 인사를 했던가? 아니, 그 전에 오늘 둘이랑 무슨 말을 했더라? 그러고보니 요즘 사무실에는 들리지 않고 바로 레슨실로 왔던거 같은 기분이…’

 

“이제 알겠어? 요즘 마토바는 모두와 이야기 하거나 모여있는 일이 거의 없어.”

“...그게 뭐 어때서. 아이돌이 일이 없을때 레슨에 집중 하는 건 당연한 거야.”

“아카기가 그러더라. 요즘의 마토바는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고. 평소의 마토바 라면 비록 일이 없을 때라도 의욕에 가득 차서 아이돌을 즐기고 있었다고 생각해.”

 

프로듀서의 말에 리사가 입술을 깨물었다.

 

제3예능과에서 리사는 누구보다 어른스럽고 프로 의식이 높은 아이돌이다. 가끔은 프로듀서도 놀랄 정도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몰려서 시야가 좁아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감정에 사로잡혀서 일을 그르치는 아이는 아니라고, 프로듀서는 믿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옆에서 문제점을 지적해 주기만 해도 리사 스스로 깨닫는게 있을 거다. 그게 안된다면 도와주면 된다. 고민에 빠진 아이돌의 손을 잡아주는 거야 말로 프로듀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니까.

 

“마토바 니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너는 분명 니가 생각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 하려고 한 거겠지. 그래서 이렇게 레슨에 열중해 있는 거고.”

“프로듀서…”

“그리고 그 방법은 분명 틀리지 않을 거야!”

 

기어들어가 듯 프로듀서를 부르는 리사의 목소리에 자신있게 단언했다. 너는 잘하고 있다고!

 

“어…?”

“마토바는 절대 이유 없이 실없는 짓을 하지도 않고 프라이드가 강한 녀석이니까. 그리고 난 그런 마토바를 믿고 있고! 아마 힘들긴 해도 마토바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면 좋은 결말을 맞이할 거야. 다만 마토바. 너는 니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너다운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하고 있지만 마토바 한테는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친구들이나 ‘아이돌 마토바 리사’의 프로듀서인 내가 있어!”

 

『그러니까! 프로듀서, 다함께 같이 생각해보자! 어떡해야 즐거워 지는지! “다함께 즐겁게!” 라고 말했던건 프로듀서 잖아?』

 

놀이공원에서 했던 미리아의 말이 프로듀서의 머리에 떠올랐다.

 

‘언제까지고 아이돌에게 도움 받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프로듀서로 있을 수는 없지!’

 

“그러니까 말이야 마토바! 함께 고민하지 않을래?”


 

3.

“아! 진짜!”

 

답답함을 내뱉듯 소리지른 리사가 머리를 붕붕 흔들자 트레이드 마크인 탐스러운 트윈테일이 이리저리 춤을 췄다.

 

‘그나저나 언제봐도 엄청난 트윈테일이네.’

 

그 모습을 분위기에 맞지 않은 엉뚱한 생각을 하며 지켜보았다. 평소에도 눈에 띄는 트윈테일 이지만 땀에 젖어 윤기가 나는 머리카락이 주인의 기분을 반영하듯 역동적으로 출렁이는 모습은 프로듀서의 시선을 빼앗기 충분했다.

 

프로듀서로서 마토바 리사 라는 아이돌을 평가 하자면 우선 어린애답지 않은 높은 프라이드와 책임감 그리고 일에 대한 강한 의욕을 높이 산다. 또 리사는 패션감각이 좋고 유행에 민감한데다가 제3예능과에서 아카기, 유우키와 함께 댄스에 특기인 아이이기도 하다. 거기에 도발적인 눈매까지 더하면 이 나이대에서는 보기 힘든 카리스마가 생겨 라이브 방면의 일을 가져다 주면 분명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런 모든 부분을 합쳐도 마토바를 처음 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엄청난 트윈테일이다!” 라고. 거의 포니테일 수준의 볼륨을 유지한 마토바의 트윈테일은 제1과 제2예능과를 합쳐도 비교할데 없는 훌륭한 개성이다. 프로듀서로서 아이돌의 세일즈 포인트를 주의깊게 살피는건 의무와 마찬가지다.

 

“...그런 얼굴로 바라보면 소름 돋는데 말이지.”

“아..! 흠흠! 아니, 잠깐 프로듀서로서 다음 일에 대해서 생각 했을 뿐이야.”

“...너 우리한테 수상한 일이라도 시킬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믿을 수 없다는 기분과 기분 나쁜 것을 봤다는 얼굴로 프로듀서를 바라보는 리사. 마토바의 이런 솔직함은 조금 자제해줬으면 한다만… 담당하는 한참 연하의 아이돌에게서 이런 시선을 받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무튼! 마토바! 이런 나라도 너한테 힘이 되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 고민거리가 뭔지 이야기 해 줄 수 있어?”

 

다시 진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눈을 마주하는 두 사람. 거절 당하는 것 까지 각오한 프로듀서 였지만 의외로 마토바는 뭔가 내려놓는 표정으로 털털하게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정말이야?!”

“단! 어디가서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면 안돼! 알았어?! 만약 이 약속을 어겼다가는 니가 로리콘인 걸 밝혀서 사회적으로 매장할테니까!”

“아니, 난 로리콘도 아니고 이래봬도 사춘기 여자아이의 고민을 안주 삼을 정도로 섬세하지 못한 어른도 아닌데…”

 

리사의 무서운 소리에 석연치 않았지만 아무튼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듀서로서 아이돌을 위해 이 정도 위험도 감당하지 못 할 수는 없다.

 

프로듀서의 대답에도 리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볼을 살짝 붉히고는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즉슨 이랬다.

 

얼마전 리사가 아버지를 부르러 서재에 들어갔을때 리사의 이름이 쓰여진 상자를 발견했다.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걸 알지만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열어보았고 그 내용물에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12세 소녀가. 그것도 마토바가 충격을 받았을 정도의 물건. 일단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고 물었다.

 

“...안에 들어있던게 뭔데?”

“..선물.”

“응?”

“선물! 그러니까 내가 여태까지 아빠한테 선물한 생일선물 이라고!”

“에?”

 

마토바의 고백을 듣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프로듀서. 본인이 제대로 들은게 맞는지 혹시 놓친게 있는건지 검토하면서도 지금 들은 이야기를 확인한다.

 

“어.. 그러니까 마토바의 말은 여태까지 마토바가 아버지한테 준 생일선물을 모아둔 상자가 아버지 서재에서 발견 됐다는 말이지?”

 

‘그게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야?’ 라는 말을 삼키며 천천히 마토바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대로였어… 내가 선물할때와 마찬가지로.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뜯었던 포장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던 거야.”

 

“그건 마토바의 아버지가 딸이 준 선물을 사용하지 못 할 정도로 소중하게 여겨서…”

 

다행히 “팔불출 이라서 그런거잖아.” 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리사가 프로듀서의 말을 끊고 소리쳤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아빠가 내가 준 선물에 기뻐했던 것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도! 난…내가 화가 난 건 나 자신한테서야!”

“마토바 자신…?”

 

마토바의 격정을 받아들이며 조심스럽게 의문을 표했다.

 

“그래! 아빠는… 나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알아서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데려다주고 내가 갖고 싶은 것만 선물해줬어! 이 리본도! 신발도! 전부 아빠가 나한테 준 선물이라고! 그런데… 그런데 나는 아빠가 뭘 좋아하는지 뭘 갖고 싶어하는지 아는게 없어… 그래서 아빠한테 준 선물도 전부 내 취향에 아빠가 사용할 수도 없는 장난감 같은 악세서리나 장식품 뿐이었어…!!”

 

고개를 숙인채 소리치는 리사. 아래로 뻗은 팔은 두 주먹을 불끈 지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재서야 프로듀서는 깨달았다. 리사가 무엇에 화가 났고 어떻게 그걸 해결하려고 했는지.

 

“난 내 이기심을 용서할 수 없어! 좋아한다는 말뿐에 사실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 기준으로 아빠를 이해하려 했어! 하지만 아이돌은 아니야. 내가 아이돌이 되고 싶은 이유는 아빠가 TV에 나오는 아이돌을 보고 ‘귀엽다.’ 고 했기 때문이야. 비록 이것도 내가 아빠에게 귀엽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거지만 이거 뿐이라고! 내가 아는 아빠가 좋아하는 거란… 그러니까 나는 아빠가 좋아할 수 있는 최고의 아이돌이 되지 않으면 안되!”

 

솔직하게 놀랐다. 이제 겨우 12살. 그런 아이의 결의가 이 정도나 될 줄이야… 마토바의 두 눈에 가득한 결의가 온몸을 꿰뚫은 거 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속으로 물었다. 이 정도면 그냥 내버려둬도 되지 않을까? 이토록 굳은 결심을 옆에서 흔드는 짓을 내가 해도 괜찮을까? 대답은 이미 정해져있다. 하지만 이런 망설임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마토바의 의지는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

 

이대로 두면 마토바는 분명 톱아이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소중한 것도 잃게 될 것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프로듀서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이렇다 저렇다 해도 결국 마토바는 아직 어린애인 것이다. 그러니까 가르쳐줘야 한다. 동료에게 의지하는 방법과 조금 더 솔직해 질 수 있는 힘을.

 

“마토바의 말은 잘 알겠어. 하지만 역시 이런 무리한 레슨은 프로듀서로서 허락할 수 없어.”

“뭐?! 너 여태까지 뭘 들은 거야!”

 

마토바의 역정에 웃으면서 손을 잡았다. 깜짝 놀라는 마토바. 곧바로 빼려는 그 손을 더 강하게 쥐고는 입을 열었다.

 

“대신 네 힘이 되어줄게. 그러니까 잠깐 나랑 가지 않을래?”

“..어, 어디를?”

“데이트.”


 

4.

해질무렵 시부야의 번화가는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쇼핑이나 데이트를 하러 나온 사람들로 꽤나 번잡했다. 그런 혼잡하지만 세련된 길을 프로듀서와 리사가 걷고 있었다.

 

“어이 로리콘. 내가 지금 당장 파출소로 달려가면 안되는 이유를 하나 라도 말해보시지.”

 

잔뜩 언짢아 하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프로듀서. 거기에는 예상대로 아니, 예상했던 거 이상으로 얼굴을 찌푸린 리사가 불쾌한 눈으로 프로듀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그전에 아이돌로서 그런 얼굴은 좀 자제해줬으면 하는데 말이지, 프로듀서로서.”

“흥! 어차피 나 따윈 유명하지도 않아서 알아볼 사람도 없어. 거기다 이런 표정이면 말 할 것도 없겠네.”

 

안그래도 좋지 않은 기분이 더욱 뒤틀렸는지 볼을 살짝 부풀리며 기세 좋게 고개를 돌린다.

 

프로듀서의 데이트 제안을 받은 리사는 처음에는 ‘미쳤어?!’ ‘소름!’ ‘우엑!’ 등등 프로듀서의 마음을 천갈래 만갈래 찢어놓을 만한 소리를 너무나...진심을 가득 담아 소리쳤지만 어떻게든 설득해서 지금은 땀에 젖은 레슨복에서 리사의 센스가 돋보이는 사복으로 갈아입은 상태다.

 

앞에는 핑크색 하트에 반짝이는 금색으로 LOVE 라고 새겨진 연한 청색계열의 오프숄더를 입어 좁은 어깨워 팔을 어김없이 드러냈고 거기에 금색 장식이 박힌 검은색의 두꺼운 가죽밸트를 허리에 비스듬하게 걸쳐놓았다. 아래로는 핑크색 라인이 그려진 검은색 미니스커트에 끝을 레이스로 장식한 사이 하이 삭스를 신어 하얀 허벅지가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트레이드 마크인 트윈테일에는 핑크색 호피무늬의 리본으로 장식해서 전체적인 색감과 스타일이 아주 잘 어울어졌다. 주위를 둘러보면 전부 최신 유행의 옷이나 화장으로 장식한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어쩌면 지금 시부야에서 가장 귀여운건 마토바가 아닐까?

 

“뭐 귀여우니까 상관 없지만.”

“뭣..>?!”

 

사심 없는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자 마토바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무, 무,,, 길 한복판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로리콘?!?!”

 

빡!

 

“으악!”

 

뒤에서부터 다리를 쎄게 걷어 차인 프로듀서. 자칫 넘어질뻔 했지만 아무리 프로듀서의 신장이 작더라도 라시와는 한참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안미안! 그치만 귀엽다고 한 건 사실이라고!”

“큭! 어쨋든 빨리 용건이나 끝내! 도대체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갈셈이야?”

“글쎄…”

“뭐?”

“하하! 사실 나도 아직 뭘 살지 정한건 아니거든. 마토바의 아버지와는 처음 사무소에 입사할때 인사한게 전부고. 아! 저거는 어떨까? 이리와봐 마토바.”

“어? 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

 

프로듀서는 리사의 의문을 뒤로 하고는 근처에 있는 매장을 가리키며 그녀를 이끌어갔다.

 

“여기는…”

“양복점이지! 저번에 마토바의 아버지를 봤을때 정장이 잘 어울리는 깔끔한 분이셨던 걸로 기억하거든. 그러니까 여기가 좋지 않을까 하고.”

“그게 아니라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마토바는 여태까지 아버지 한테 준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지? 그러면 이번에는 마토바의 아버지도 좋아하고 직접 사용할 만한 선물을 드리자!”

 

프로듀서의 말에 충격을 받은듯 리사의 몸이 한순간 굳어버렸다. 리사의 눈동자가 점차 충격에서 당황으로 바뀌면서 입이 열렸다.

 

“너..! 이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인 걸로 보여?!”

“글쎄. 오히려 마토바가 문제를 너무 복잡하게 본 거 아닐까?”

“뭐라고?”

“여태까지의 마토바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항상 어렵고 힘든 길을 갔을지도 몰라. 그래서 이런 방법이 우습게 들릴 수도 있고. 하지만 마토바. 의외로 사람은 단순하고 솔직한 방법에 감정이 더 잘 전해지는 거야. 지금의 마토바 라면 알 수 있잖아? 류자키나 이치하라 같은 동료들과 함께한 지금이라면.”

“....”

 

영리한 마토바가 프로듀서의 말에 바로 반론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체감해서 그럴 것이다. 무슨 일이든 울고 웃으며 꼬옥 달라붙어 버리는 순수한 동료들의 체온을. 그리고 그런 동료들의 솔직함을 받았을 때의 자신의 감정을.

 

침묵하는 마토바를 두고 매장에 진열된 상품들을 둘러본다.

 

“오! 이 수트면 마토바의 아버지도 좋아하지 않을까? 오오! 표면이 미끌미끌 하면서 부드러워! 나도 이런걸 입으면 앞으로 영업이 더 잘될까? 이게 가격이...일십백천만십..헉!”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수트를 보고는 방정을 떠는 프로듀서를 보고 리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한심해 보이는 프로듀서가 제안한 바보 같은 방법이지만 아빠에 지지않을 정도로 리사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걱정해 주는 프로듀서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비켜봐 프로듀서! 여기 xxx브랜드 매장이잖아. 여기선 제일 싼 것도 오십만엔은 넘는다고.”

“엑! 그러면 조용히 다른 매장으로… 아! 이거면 괜찮지 않을까?”

“넥타이?”

“그래! 이거면 수트에 비해서 개성 있게 고를 수 있고 금액적으로 부담도 되지 않고.”

 

프로듀서와 리사가 넥타이 코너를 둘러보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은 프로듀서가 옷걸이 역할을 하면서. 가끔은 ‘아빠는 이렇게 키가 작지 않아서 논외네.’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복잡하게 얽힌 리사의 마음도 어느새 매끄럽게 풀려나가 넥타이를 고르는데 열중한다. 날이 저물면서 프로듀서와 리사의 하루도 끝이난다.

 

“프로듀서 자, 여기.”

“이게 뭐야?”

 

아빠에게 선물할 넥타이를 고르고 매장에서 나온뒤 리사가 프로듀서에게 작은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프로듀서가 열어보자 거기엔 은색 넥타이핀이 어느새 분홍색 리본으로 예쁘게 장식까지 되있었다.

 

“프로듀서 넌 키도 작은데 수트까지 헐렁 하고 넥타이도 항상 칠칠치 못하게 흐트러져서 더 못나보인다고. 앞으로는 그걸로 아빠처럼 어른스럽게 하고 다니라고.”

 

감동과 상처를 동시에 받은 프로듀서가 리사를 바라보자 어느새 두발자국 정도 앞서 나가 있었다. 급하게 쫒아가는 프로듀서를 뒤로한 리사의 뺨이 이미 사라진 저녁놀 같이 붉게 물들었다.

 

 

 

ps. 리사 영업을 한 번 해보려고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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