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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쌓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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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05, 2015 00:39에 작성됨.

 

  "다, 다녀왔습니다."

 

 어색하고 작아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갔지만 '잘 다녀왔어?' 같은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목소리가 작아서가 아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검은색 커텐이나 침대의 커버 같은 조그마한 주장을 빼고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기숙사의 방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날씨가 더워져도 아무도 머물지 않는 방의 싸늘한 공기는 덥혀주지 못하는 듯 했다.

 

 "…어둠에 삼켜져라…."

 

 듣는 사람도 없었건만 나 자신에게 위로하듯 말해보았다. 아무도 없으니 평범하게 '수고했어.'라고 말해도 좋았을 텐데 무의식적으로 평소처럼 말해버렸다. 

 

 들고 있던 양산은 한쪽에 잘 세워두었다. 들고 있던 가방도 책상 한 쪽에 정리해서 올려두었다. 이걸로 방에 있어야 할 모든 물건들이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허전했다.

 한 사람이 쓰기에는 너무나 큰 방. 몇가지 악세사리와 옷들을 제외하고는 모으고 있는 물건도 없었기에 방은 텅텅 비어서 살풍경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에 사서 들여놓은 조그마한 냉장고만이 어색하게 놓여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소녀 분위기의 방이라던지 딱히 무언가 없이도 괜찮은 분위기가 흐르는 데도 여기만은 바뀌지 않았다. 기숙사의 본분에 충실하게 그저 잠시 임시로 묵고 있는 숙소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정리가 끝나고나서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피곤하다는 것이었다.

 데뷔를 한 건 좋았다. 누가 뭐래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게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었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지만 모든 일의 원인은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얘, 그 전학생 알아?'

 '아, 칸자키 양?'

 '그래그래. 칸자키 란코 양. 아이돌이라고 하던데?'

 '에에? 아이돌?!'

 '응응. 이번에 346프로덕션에서 새로 데뷔한 아이돌들이 많다는데 그 중에 하나랬던가.'

 '으응, 잘 모르겠는데.'

 '뭐, 유명하지도 않으니까. 게다가 칸자키 양, 어딘가 이상하고.'

 '솔직히 조금… 기분 나쁠지도….'

 

 아이돌 일 때문에 전학 온 학교에서도 나는 잘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클래스메이트들이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보내는 미묘한 시선은 눈이 따갑도록 받았다. 그래도 몇 명은 '란코쨩 귀여워!'라던가 다가와 줘서 친하게 진해고 있지만 모두가 나를 곱게 바라보지는 않았다. 일 때문에 학교를 빠지는 일도 잦아서 그 틈은 더더욱 메우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사교성이라고는 없는 내 탓이었다.

 

 '내 벗이여! 이대로는 의식에 필요한 마력이 부족하다…. 좀 더 성스러운 힘을 모으지 않으면…!'

 '…죄송합니다. 지금의 조건에서는 이 정도가 최선입니다.'

 '…읏, 그, 그렇다면 대신에 마계의 바람을…'

 '……?'

 '차갑게 흐르는 마계의 바람인 것이다!'

 '…드라이아이스입니까?'

 '역시 나의 벗이다!'

 '드라이아이스도 무리입니다. 다음 무대에 최대한 지장이 가지 않게 해야 합니다만….'

 '…….'

 

 아이돌 일 쪽도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았다. 어른의 사정이라는 것이다. 프로듀서는 어떻게 해서든 내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려고 노력은 해 주었지만 매번 한계에 다다랐다. 입지를 조금씩 쌓아가면서 할 수 있는 것들도 늘어나고는 있었지만 프로듀서가 곤란해 하는 일도 더욱 늘어났다. 역시 욕심밖에 없는 내 탓이다.

 

 오늘따라 방이 더욱 어두웠다. 검은색 커텐이 쳐져 있으니 어두운 게 당연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도 더했다. 밖에 있을 때는 평소보다 더 맑은 날씨였던 걸 생각해보면 기분 탓이겠지. 마음이 어두우니 방도 어둡다. 어두운 사람에게는 어두운 것만 보인다. 칸자키 란코는 어둡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아무도 없는 방 안, 침대에 누워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서로 즐겁게 웃고 있는데 나는 왜 어두운 방에서 울음을 참고 있을까.

 

 문득 고향에 있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중학교 2학년. 이제 겨우 스스로 무언가를 하는 법을 하나 둘씩 깨달아가는 나이일 텐데 나는 반쯤 멋대로 혼자 집을 나와서 살게 되었다.

 

 '후, 후후후… 나의 재능을 알아보는 자가 있을 줄이야….'

 '란코? 무슨 일이니?'

 '때는 무르익었다! 붉은 태양을 어둠이 삼키고 별도 빛나지 않은 지금, 봉인된 힘을 깨달은 천사가 날아오를 때가!'

 '얘는 또 무슨…… 오디션?'

 '크크크, 연회의 시작이다!'

 '얘는 엄마한테 말도 안하고!'

 '후, 후후…후에?'

 '이런 걸 혼자서 결정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에에…….'

 '나도 남편도 여기에 직장이 있는 몸인데 도쿄로 갈 수도 없고, 내가 어떻게 널 혼자 보내. 안 돼. 절대로 허락 못해. 처음부터 얘기라도 했으면 모를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은 이렇게 되었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게 증거가 되겠지.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 대신에 기숙사가 있다는 걸 알아보고 사무소까지 따라와서 나를 맡겨준 것도 엄마였다. 딸의 꿈을 어떻게 배신할 수 있냐면서, 쿠마모토로 돌아가는 엄마의 눈은 그렁그렁했지만 얼굴은 웃고있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꺼내 집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통화 버튼에 손이 갔지만 차마 누르지는 못했다. 지금 전화를 해버리면,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버리면 모든걸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어질까봐 누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노력해 왔던 것들, 참아왔던 것들을 내버리고싶은 마음이 생길 것만 같아서 손이 떨렸다.  

 그러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후, 후후…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더냐."

 "란코니?"

 "…어, 엄마?"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틀림없이 엄마였다. 착각할 리가 없었다.

 

 "란코, 잘 지내고 있니?"

 "가, 갑자기 전화는…"

 "글쎄, 갑자기 오늘따라 란코 생각이 나지 뭐니. 우리 딸아이 잘 하고 있으려나.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괜찮니?"

 "흐, 흐흥… 타천사의 날개는 꺾이지 않는다…."

 

 말을 하면서 스스로도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분명히 엄마라면 알아차리겠지.

 

 "…그래. 엄마도 여기서라도 응원하고 있단다. TV에 나오는 모습도 보고 있고."

 

 일상적인 이야기 몇가지가 더 이어지고 통화는 끝났다. 분명 전화를 하기 전에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버리면 무너질 것만 같아서 두려웠는데 지금은 오히려 무언가 녹아서 후련한 기분이었다.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다. 쉽고 편하고 좋기만 한 일도 없다. 이제와서 돌아갈 수도 포기할 수도 없기에 계속 나아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힘든 일 하나 둘 정도는 충분히 짊어지고 갈 수 있다. 나는 누구보다 성스러운 타천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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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짧네요. 짧아. 시리어스. 란코 1인칭. 결론은 무리수였습니다. 폭발!

카시와기 유키의 화산재(https://www.youtube.com/watch?v=NjEwQT6gpcA)라는 곡을 주제로 썼습니다.

실제로 아이돌이기도 하고.. 사쿠라지마라는 화산이 있는 가고시마에 살기 때문에 이런 곡이 나왔죠.

란코가 살고 있는 쿠마모토에도 화산이 있고.. 혼자 14살의 나이에 도쿄에 올라와 아이돌 생활을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았기에 써 봤습니다. 이래저래 어색하지만! 1인칭에서 중2의 향기도 별로 나지 않고 이상하게 유식해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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