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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사「운명의 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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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01, 2014 01:15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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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ep" by Radiohead

 

비가 오늘 날이면 언제나 떠오르곤 한다. 이젠 닿지 않는 저편에서 서서히 흐릿해져가는 그 얼굴이.

눈은 가늘었던가, 컸던가. 코는 오똑했던가, 납작했던가. 언제부턴가 점점 사라져 가는 그녀의 얼굴을 억지로 짜 맞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녀의 미소만은 잊혀지지 않았다. 잊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를 잊을 수 없는 건, 그 미소 때문이 아닐까.

그녀는 떠났지만,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그녀가 자리잡고 있다.

"미우라 선배..."

이름을 불러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영화라면 "불렀어?"라며 뒤에서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차라리 그때 용기를 내서 고백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을까.

하지만 내가 선배 앞에 나서는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나의 고백'에는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항상 선배 앞에서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한 내가, 고백이라니...

선배를 처음 본 이래로, 선배만을 쫓아 다녔다. 되짚어보면 내 고교생활은 선배를 제외하면 남는 이야기가 없다.

그녀와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부활동에 가입했다. 그러나 매주 그녀와 얼굴을 마주치면서도 그녀와 이야기를 한 횟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겁쟁이였던 탓이다. 바로 옆에 있을때 조차 선배와 제대로 대화해 본 적이 없다. 그녀와 함께한 2년간. 내가 그녀와 한 대화는 몇 분이나 될까.

선배는 3학년이 되고서는 통 부활동에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할 용기조차 없는 나는 멀찍이서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가버렸다.

졸업식날까지, 나는 1년간 단 한 차례도 선배와 대화하지 못했다.

선배가 도쿄로 떠난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감히 그녀 앞에 설 수 없었다.

'선배, 나를 기억하긴 할까?'

그런데

놀랍게도

선배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비 오던 졸업식날, 체육관 뒤에 선배가 있었다.

"어머, 히로타군."

어째선지, 선배는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너한테도 축하받을 줄은 몰랐네."

혼란스러웠다. 선배가 나를 기억한다는 것이.

"고마워."

애써 준비했던 말을 다 까먹고, 꼴사납게 우물쭈물했다.

"물론. 나, 길은 잘 잃어도 사람 이름은 잊지 않아?"

하지만, 그녀는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

"작년 여름엔 즐거웠지. 히로타군, 그거 기억하고 있어?"

더듬거리는 내 말을 똑바로 들어주었다.

"앗, 내 정신좀 봐. 지금 바로 가야 해서. 미안해."

나는, 그런데도 제대로 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입만 뻥긋 거리면서, 손을 흔들며 사라져가는 선배를 보며,

"안녕. 히로타군."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한심했던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나는 탓하지도, 원망하지도 못한다.

지금의 내가 선배앞에 다시 선다고 해도, 제대로 말을 건넬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사랑을 떠나 보내고, 무작정 공부하기 시작했다. 도쿄에 가기 위해서. 선배를 다시 보기 위해서.

말을 걸지 못해도 좋았다. 멀찍이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았다.

선배가 보고 싶었다. 그녀를 다시 한번 '선배'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래서 죽은 듯이 공부만 한 1년, 나는 도쿄에 왔다. 그러나, 선배는 그곳에 없었다.

"아, 미우라씨 말이지? 중퇴했는데."

모든 게 무너지는 것 같았다. 수소문해도 선배의 소식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가.

회의감에 젖은 채로 무기력하게 1년을 보냈다.

결국 선배를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사실을 인정하고, 좌절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왔다. 남은 시간은 모조리 아르바이트와 공부에 힘을 쏟았다.

혹시 다시 선배를 만나게 된다면, 이번엔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잊혀져 가는 선배의 잔상만을 쫓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그날을 자꾸 떠올리게 했다.

창문을 굳게 잠그고, 커튼도 닫았다.

"비가 거세졌네."

혼잣말을 해도, 받아주는 이는 없었다. 3년째 이렇게 살아왔건만, 혼자라는 감각이 익숙해지진 않았다.

언젠가, 이자리에 선배가 있어서, 방긋 웃으며 내 말을 받아주는 날이 올까?

고개를 털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도, 그녀는 자꾸 내 마음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녀를 잠시라도 잊을 방법이 필요했다.

방 청소를 할까 하던 차에 탁자 위에서 먼지 낀 리모콘을 발견했다.

먼지를 털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로봇이 뛰어다니는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고 있었다. 채널을 위로 돌리니 한물 간 밴드의 뮤직비디오가, 전국시대 배경의 사극이, 뉴스가, 통신판매 방송이...

티비는 내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 곧 실증이 났으나, 끄기도 아까워서 채널을 몇 번 더 돌려댔다.

그리고, 정말 견디지 못해서 전원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765프로덕션의 미우라 아즈사씨입니다."

나는 엄지를 우뚝 멈췄다. 동시에 사고도 멈추었다.

사회자가 손을 내밀어 소개하자, 스테이지 위의 한 여성의 모습이 클로즈 업 된다.

짧게 자른 머리에,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그녀는, 화사한 미소를 피우며,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나는 그 미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잔상은 잃어버린 형상을 되찾았다. 얼굴 없는 미소에 드리운 그림자가 걷혔다.

미우라 아즈사가, 다시 나타났다.

모든 것이 퍼즐처럼 다시 제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모든 조각을 되찾은 마음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선...배?"

무의식적으로 다리가 움직였다. 눈치채고 보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선배다. 선배가 틀림없다. 머리는 짧아졌지만, 얼굴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다. 그날 못다한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스크린 너머에 있었다. 티비 뒤에는 벽이 있을 뿐이다.

나는 들썩이던 몸을 추스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선배가 어째서 티비에...?

"아이돌이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여성 사회자가 물었다.

"네. 운명의 상대를 찾기 위해서 랍니다."

그녀가 미소와 함께 회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매번 그랬듯이 심장이 뛰지 않았다.

오히려 쩍쩍 얼어붙고 말았다.

"운명의...상대?"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이건 또 특이한 이유네요."

"우후훗, 그럴까요?"

"그럼 곡도 운명의 상대를 위한 곡으로 준비 하셨겠네요?"

"네."

 

노래가 시작되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조명이 꺼지고, 스포트라이트가 선배를 비춘다.

 

 

 

전 항상 여기에 있었어요

당신이 오길 기다렸어요

당신이 찾아 주기를 기다렸어요

 

당신은 오지 않는데도

저는 항상

당신이 오기만을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되기를

그런 헛된 바램을

 

하지만 이젠 기다리지 않아요

당신을 찾아 떠날거에요

이젠 어린 아이처럼 굴지 않을래요

당신이 거기에 있다면

찾아갈게요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당신은 어디에...

 

 

 

전율했다. 그리고 실감했다.

그녀의 노래는 내가 아는 어휘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선배에게 마음을 빼았기고 말았다.

그리고, 현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스테이지 위에 서 있고, 나는 쪼그리고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다.

선배는 이제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녀와 나는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다.

그녀의 대칭점에 서고 싶어서 도쿄에 왔다. 그녀와 동등한 눈높이에서 그녀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선배에 비해 나는, 너무나도 작다.

차라리 알지 못했다면 좋았을 것을. 하다못해 꿈으로 남았다면 좋았을 것을.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의 곡이 끝나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감사합니다."

"와, 정말 대단한데요. 이렇게까지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사회자들이 너스레를 떨며 칭찬을 해대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선배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그 미소를 멀리서 지켜봐야만 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소한 그녀의 미소는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운명의 상대는 어떤 사람인가요?"

"우후훗, 그건 저도 잘 몰라요."

"네?"

"어머, 말씀 드렸잖아요? 운명의 상대를 찾기 위해 이자리에 왔답니다?"

"아...하. 그러니까 운명의 상대가 되어줄 누군가를 찾고 계시다, 이 말인가요?"

"네."

그런데, 선배는 조금 못됐다. 항상 그런 식으로, '혹시 나도...?'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기대는 항상 실망만을 불러왔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흐음, 그럼 운명의 상대의 조건같은 건 없나요?"

"없어요."

"음...외모나, 직업이나, 그런것도요?"

"없답니다. 있다면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 그거 하나 뿐이에요."

기대를 하지 않을래야 안 할수가 없게 만든다. 선배의 미소에는 그런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선배는 항상 그랬듯이 치사하다. 그리고 사랑스럽다.

그녀의 운명의 상대가 되고 싶다. 이미 그녀를 위해서 청춘을 다 쏟아버린 채다.

"혹시 모르죠."

이제와서 포기한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잖아.

선배와 같은 위치에 서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그런데 선배가 더 높은 곳에 있다면?

"만약 여러분 중에서, 절 행복하게 만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소심함을 변명삼아 그녀를 보내버린다면, 그걸 참을 수 있을까?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그녀를 보며 참을 수 있을까?

"기꺼이, 받아들일 거에요."

그녀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랬듯이, 그녀의 미소에 이끌렸다.

 

#


밤, 765프로덕션.


"아즈사씨, 수고하셨어요."

"아니에요."

 

아즈사는 싱긋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조금 지쳤는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모두들 그녀가 이 사무소에서 가장 열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목표는 터무늬없었지만, 누구도 그녀의 열의는 무시하지 않았다.

 

"저기저기, 언니."

 

아즈사가 차를 홀짝 마시고 있는데, 쌍둥이 아미와 마미가 그녀의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아즈사는 차를 쏟을 뻔 했지만, 개의치 않고 여유롭게 한 번 더 마신 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두 쌍둥이는 제 실수를 알아차렸지만, 생글생글 웃는 아즈사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앗, 무슨 이야기 하려 했지?"

"아니, 잠깐만."

 

두 소녀는 잠시 머리를 맞대더니, 다시 똑같은 얼굴을 들이밀었다.

 

"생각났다."

"언니, 운명의 상대 찾으면 아이돌 그만둘꺼야?"

"글쎄?"

 

아즈사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별로 상관없다는 눈치였다.

 

"에~? 아이돌이 연애하면 위험한 거 아냐?"

"언니는 처음부터 운명의 상대 찾을려고 아이돌 한다고 했으니까 괜찮을지도."

"후훗, 언젠가 너희들도 그런 사람을 만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몰라."

 

세 사람이 수다를 떨고 있는데, 사무실 문이 열렸다.

오늘은 더 이상 업무가 없었기 때문에, 다들 이 낯선 방문객의 정체를 무척이나 궁금해 했다.

열 네쌍의 시선이 모인 곳에 두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한 명은 사장이었으나, 처음보는 다른 한 명의 모습에 다들 어리둥절해 했다.

 

"사장님? 그쪽 분은 누구시죠?"

"내가 말 안했나? 오늘 부로 새로 들어온 프로듀서군일세."

"에?"

 

사무실의 모두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몇몇은 하던 일을 멈추고 헐레벌떡 뛰어 나와 낯선 남자를 둘러쌌다.

소녀들에게 둘러싸인 사내는 기가 죽어서 약간 움츠러들었다. 마치 자신에게 향한 모든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 같았다.

 

"이거 참, 조금 비켜주게. 이러면 제대로 소개할 수도 없지 않나."

 

사장과 사내는 좁은 통로를 벗어나 사무실 한 가운데에 도착했다.

 

"자, 인사하게."

 

사내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한 박자 먼저 나온 목소리가 이를 가로막았다.

 

"히로타군...?"

 

모두의 시선이 아즈사에게 쏠렸다. 아즈사는 자신이 '히로타군'이라고 부른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소 생글생글 웃기만 했던 그녀라 다들 상당히 놀란 기색이다.

여전히 움츠러든 채인 사내는 조금 뒷걸음질 쳤으나, 곧 고개를 휙휙 돌리더니 똑바로 섰다.

그의 기행에 소녀들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시선을 아즈사에게 맞추느라 안간힘을 쓰며 어눌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 히로타군."

 

아즈사와 사내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무어라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잠잠히 지켜보던 아미가 한마디 툭 뱉었다.

 

"혹시 이쪽이 언니의 운명의 상대?"

"에엑?"

 

덕분에 조용한 사무실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히로타는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헛소리만 해댈 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사장덕분에 그는 곧 구원받을 수 있었다.

 

"으흠!"

 

사장의 헛기침소리에 모두가 움직임을 일제히 멈추었다.

 

"잡담하는 건 상관없으니까, 일단 소개 먼저 하지. 그보다 프로듀서군좀 놓아주게. 새로 산 양복이 찢어지겠군."

 

항상 자유분방했지만, 이런 것만은 끔찍하게 챙기는 사장이었다. 쌍둥이도 자신들이 조금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히로타의 옷깃을 놓고 슬쩍 뒤로 물러났다.

히로타는 엉망이 된 옷매무새를 대충 정리하고, 모두 앞에 섰다.

 

"에...히로타 유우지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의 프로듀서가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히로타는 무지하게 딱딱한 어투로 인사를 마쳤으나, 사장은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제 인력난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게 되었군, 안 그런가?"

 

"다행이네요."

 

코토리가 말했다.

 

"그럼 이제 사무소의 아이돌을 소개해야지, 자 먼저..."

 

 

#

 

 

한바탕 소동 후, 사무실의 모두는 차례로 귀가하기 시작했다.

 

"안녕히 가세요."

 

히로타는 아즈사와 함께 사무실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던 히로타는 아즈사의 눈치를 보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오, 오랜만이네요. 선배."

"응."

 

잠시 대화가 끊겼다. 히로타는 머뭇거리다 다시 말을 시작했다.

 

"저...기억하고 있으셨네요."

"후훗, 말했잖니? 나, 사람은 잘 잊지 않아."

 

아즈사가 웃었다. 히로타는 슬쩍 시선을 돌리며, 약간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했다. 그 탓에 아즈사가 또다른 미소를 짓는 것은 볼 수 없었다.

 

"그, 그랬죠..."

"많이 놀랐어. 설마 히로타군이 프로듀서가 될 줄이야."

 

아즈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가요?"

"혹시, 나 때문에 프로듀서가 된 거야?"

 

아즈사는 시선을 똑바로 히로타에게 맞추었다. 그녀는 살짝 웃고 있었다. 히로타는 순식간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헛소리를 뱉기 시작했다.

 

"에? 아, 아니 그게, 저..."

 

아즈사는 잠깐동안 무척 즐겁다는 듯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베시시 웃었다.

 

"농담이야."

 

히로타는 고개를 푹 숙이며 무어라 중얼대기 시작했다. 조금 기분나쁜 광경이었지만, 아즈사는 신경쓰지 않는 듯 이야기를 이었다.

 

"나, 아직 운명의 상대를 찾지 못했어."

 

히로타는 약 2초의 시간동안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려 적절한 대답을 찾았지만, 결국 "그런가요."라고 이야기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아이돌이 되면서 수 많은 사람을 봐왔지만... 그런 상대는 없었어."

"그런데, 사실은 내가 여태껏 봤던 사람주에 운명의 상대가 있었을지도 모르잖니? 내가 지나쳐버린 거 뿐이고."

"아니면, 정말 가까운데에 있었는데 여지껏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몰라."

 

아즈사는 다시 히로타의 두 눈에 시선을 맞추었다. 히로타는 차마 고개를 돌리진 못하고 두 눈동자를 슬금슬금 오른쪽으로 돌렸다.

 

"어쩌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그럴지도 모르고."

"에, 그 말은..."

 

히로타는 딱총맞은 비둘기같은 표정으로 아즈사를 쳐다 보았으나, 그녀는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후훗, 히로타군은 어떻게 생각해?"

 

히로타는 쓴웃음을 지었다.

 

"놀리지 마세요."

"미안해. 너무 귀여워서 그만"

 

미소짓는 아즈사를 보며, 히로타는 이제서야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완전히 기억해냈다.

자신이 어째서 그녀에게 빠졌는지도, 이런 그녀의 모습을 그가 얼마나 멀리서 지켜보았는지도.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선배."

 

그는 더 이상 낙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프로듀서가 되었으니 그녀와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권리를 얻은 셈이다.

나머지는 모두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빙글 돌던 아즈사가 멈춰섰다.

 

"왜?"

 

"저, 선배를 좋아해요."

 

아즈사의 눈이 한 순간 휘둥그레지고, 입은 살짝 벌렸지만, 곧 본연의 얼굴로 돌아왔다.

 

"응, 그렇구나."

"그러니까, 노력할거에요. 선배를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도록."

 

아즈사는 항상 그에게 짓던 미소로 답했다.

 

"기대할게?"

"기대하세요." 

 

아즈사씨

 

 

 

 

---

 

히로타는 아즈사와 대화 하며 옛 시절을 대부분 기억해 냈지만, 단 한가지만은 빠뜨렸다.

"...선배? 여기 어디죠?"

"어머. 미안. 나 또 길 일었나봐."

바로 그녀가 심각한 길치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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