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힛키마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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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0, 2015 14:08에 작성됨.

"......"

 

"......"

 

"......"

 

키사라기 치하야는 아이돌의 일로 바빠서 학교에 자주 오지 않는다. 기껏해봐야 5일에 2번 정도? 그것도 점심시간이 끝나면 바로 가버리는 일도 잦다. 그 때문인지 선생들 사이에서의 평가도 좋지 않고, 교우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반 내의 카스트 최하위 계층인 외톨이, 히키가야 하치만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겠지. 어쨌든 언제나처럼 나는 점심시간엔 옥상으로 올라간다. 점심시간에는 다들 책상을 붙여서 먹으니까, 나 같은 외톨이는 안 좋은 의미로 눈에 띈단 말이지

 

그러다가, 딱~! 하고 만나버린 것이다. 키사라기 치하야와, 또다른 푸르스름한 흐발의 미인과, 옥상에서 세 명이서 동시에 만나버리고 말았다

 

"......"

 

"......"

 

"......"

 

그 결과 세 사람 모두 당황해서 아무 말 도 못 한 채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어쩌지, 다른 곳으로 내가 돌아가야 하나? 키사라기는 내 손에 들린 도시락을 보고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제길, 옥상에 밥 먹으러 온 외톨이라는 걸 들키다니, 쪽팔린 걸

 

그때, 푸르스름한 흑발의 소녀가 말했다

 

"각자, 자기가 할 일이나 하자고. 어차피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을 생각이잖아?"

 

쿨하게 자기 할 말만 하고, 그녀는 옥상에서 한층 더 위를 향한 부분, 사다리로 올라가는 급수탑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바람이 불었다

 

강하게, 드리워진 암막을 걷어내는듯한 그런 치명적인 바람

 

미래를 담은 한장의 천이 한 평생 눈에 남으라는듯이 불어온 바람에 쓸린다. 시적으로 표현했으나, 결국 팬티가 보였다는 거다

 

잘 했어, 바람아, 너 진짜 잘 했어!

 

"검은 레이스, 인가..."

 

한숨섞인 중얼거림도, 행복한 중얼거림도 아닌 그 중얼거림은, 바다 향기가 섞인 여름색의 바람을 타고서 세계를 누비고 다닐 거다

 

"...바보 아니야?"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급수탑 위에 올라가 앉아버렸지만 말이죠. 문득, 급수탑 위로 올라간 소녀의 외견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등까지 길게 뻗어있는 푸르스름한 흑발. 리본을 하지 않고 풀어져 있는 가슴팍. 옷자락 끝을 묶은 셔츠. 발차기가 날카로울 것 같은 매끄러운 다리. 그리고 인상 때문인지, 아련하게 먼 곳을 바라보는듯이 보이는 패기없는 눈동자. 애교점이 한층 더 권태감을 연출하고 있다

 

눈 앞에 아이돌이 있건만, 또 다른 아이돌급 외모를 가진 미소녀와 옥상에서의 만남이라니, 뭐지? 이거 혹시 미연시야?

 

나는 옥상의 구석, 정확히는 철창 쪽으로 다가가 등을 기대듯이 앉아서 도시락을 까먹기로 했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것임을 무언의 약속을 나누었다. 키사라기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나는 도시락을 먹는다

 

그녀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또다시 옥상에서 은은하고 부드럽게 울려퍼진다. 그에 급수탑 위의 소녀도 반응한 듯, 살짝 키사라기를 쳐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먼 허공에 던진다. 그렇지만, 그녀의 입꼬리가 희미하게나마 올라갔을 거라고 생각된다

 

키사라기의 노래는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싼 맛있는 도시락을 먹으며 키사라기의 노래를 감상한다. 음, 마치 클래식을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는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거 은근히 사치 부리는 느낌이야

 

부자가 식사를 하면서도, 옆에 대동시켜 놓은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만찬을 즐기는, 뭐 그런 상상이 머릿 속에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그렇게, 식사를 다 끝마치고 나서도,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챠임벨이 울릴 때까지,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녀의 노래를 감상했다

 

*

 

방과 후, 하교 시간. 평소보다 교실에서 좀 늦게 나오는지라, 어느덧 노을이 지려는 듯 하늘을 붉고 어둡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마미 하루카입니다!"

 

길을 걸어가던 도중, CD 앨범의 노상 판매를 보았다. 흑녹색 머리카락의 여성과 그 옆에는 머리에 리본을 두 개 달고 있는 소녀, 아마미 하루카. 분명, 어제 765 프로에 대해서 검색해 보았을 때 보았던 아이돌이다

 

'저런 식으로 홍보를 하고 있는 건가'

 

본인이 직접 CD를 팔고, 악수회를 하고 다닌다...약소 기획사의 슬픔이라는 거로구나

 

'한 곡, 들어볼까?'

 

그 키사라기 치하야가 속해있는 기획사의 아이돌이다. 한 곡쯤, 호기심 삼아 들어보는 편도 나쁘지 않겠지

 

*

 

"직접 들어본 결과......영 아니올시다인데?"

 

아마미 하루카의 곡의 이름은「태양의 질투」. 내용은 '여름의 더위보다 더 뜨거운 사랑이야기'에 대한 태양의 질투인 것 같다

 

"음정이 불안정해"

 

내가 키사라기 치하야의 노래를 최근에 들어 상당히 귀가 예민해진 탓일까. 이 노래, 기대 이하다. 왜 약소 기획사인지 대충 알 것 같을 정도로

 

특히나「지금 Diving」이라는 가사가「지금 다이핀치(대위기)」라는 몬데그린으로 들린다. 확실히, 대위기이긴 하네. 기본적으로 노래가 안 되어서야 어떻게 아이돌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무대에 올라 립싱크를 부르면서 춤이라도 춘다면 모를까, 얘들, 무대에 오르는지도 모르겠고, 그 전에 TV에 안 나오니 어디서 춤추고 노래하는지도 모르겠다

 

"......TV를 보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을 꿈꾸었겠지만, 현실은 냉혹하다고, 아마미 하루카"

 

노래를 껐다

 

*

 

교실에서 쉬는 시간이면, 나는 항상 이어폰을 귀에 꽂고 책상에 드러누운 채 잠을 잔다. 물론 이건 잠을 자기 위함이 아니다. 주변에 신경을 쓰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보통 자는 녀석은 건드리지 않거든. 놀 친구도,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는데 그냥 멍하니 앉아 있어봐야 좀 그렇잖아? 그렇다고 10분 밖에 안 되는 쉬는 시간에 어디 나갔다 올 수도 없잖냐. 화장실 가는 일이 아닌한

 

그때, 내 근처에서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가밍! 이거 봐봐! 이거!"

 

"헤에~ 이거 누구? 잘생긴 남자네?"

 

"헤헷, 765 프로의 키쿠치 마코토 군이야. 최근에 데뷔한 아이돌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렇게 잘생긴 남자의 성별이 사실은 여자! 보통의 선머슴과 달리 정말 잘생긴 여자라고 할까?"

 

사가밍은 또 누구냐. 애칭이지? 그런 이름은 보통 DQN 네임(이상한 이름)이잖아

 

'그보다, 키쿠치 마코토, 라...'

 

지난번에 765 프로에 대해서 검색을 해 보았을 때 보였지. 나이는 16세의 여고생. 하지만 생긴 건 남자. 레알 잘생긴 남자. 인터넷에서도 마코토 군, 잘생겼어~ 라는 글과 사진이 꽤 있었다

 

아무래도 765 프로 내에서 가장 인지도 높고 광팬이 있는 건 키쿠치인 모양이다

 

'남자는 머리빨, 이라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솔직히 얜 얼굴도 잘생긴 애가 헤어스타일도 이러니까, 진짜로 잘생긴 남자로 밖에 안 보이지'

 

하지만, 얘도 아이돌은 아이돌. 자세히 보면 여성스럽게 생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머리만 등까지 길러도 천상 여자로 밖에 보이지 않겠지. 아마 그런 식으로 고정하고 있는 건 보이시한 여자애라는 컨셉으로 밀어붙이기 위함일 것이다

 

중성적이고 멋진 이미지의 여아이돌. 여학교 내에서의 은밀한 백합. 연상의 잘생긴 여성에 대한 동경이라든가, 그런 걸 노리고 데뷔한 거라면 확실히 통한 모양이다

 

'뭐든지 어중간한 3류 아이돌보다는 나은가'

 

보컬 능력치가 바닥인데 댄스랑 비주얼로만 승부하는 양산형 아이돌들이 넘쳐 흐르는 이 시대. 키쿠치 마코토의 노래는 들어본 적 없지만, 진짜 한 우물만 판 것인지, 이 정도의 얼굴이라면 아무리 못 해도 팬들의 반응은 평타 이상 칠 수 있을 것이다

 

'뭐가 되었든 정점을 찍는 것은 좋은 일이다!──라는 걸까?'

 

그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다

 

*

 

방과 후, 오늘은 서점에 들렀다. 소년점프 보러 왔다구. 잡지 코너로 발을 옮기던 중, 우연히 키쿠치 마코토와 만나버렸다. 키사라기 치하야에, 아마미 하루카에 이어서 이번에는 키쿠치 마코토인가

 

우연도 세 번 이상이면 운명이라는 말도 있던데, 나는 765 프로와 운명으로 엮여진 건가...그럴 리 없지. 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인간의 모든 노력과 행동, 그 전부가 타인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는 거니까. 그렇게 따지면 내가 외톨이가 된 것도 운명이라는 거잖아. 뭐야 그거, 싫잖아. 그런 운명

 

키쿠치 마코토는 순정만화를 읽고 있었다. 빤히 응시하는 걸 눈치챈 것일까, 서로 눈이 마주치자, 당황하며 물러났다. 어쩔 줄 몰라하는 당황한 표정. 어이, 진정해라. 그러니까 나까지 당혹스럽잖아

"그, 그러니까...! 나, 이렇게 보여도, 여자라서..."

 

"아니, 오해는 안 한다만? 네가 여자인 것, 잘 알고 있다"

 

"......에? 어떻게?"

 

"그야, 목울대가 튀어나와 있지 않잖아"

 

목젖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목 안에 난 것만 목젖이다. 따라서 이런 뜻으로는 쓰일 수 없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둘 다 포함할 수 있는 뜻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식으로는 후두돌기, 후두융기라고 부르고, 울대(성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남자의 목 밖에서 볼 수 있다. 물론 여성이라도 목젖 부분을 만지면 자극 때문에 튀어나올 수 있다고 하지만

 

전설에 따르면 아담이 선악과를 먹다가 걸려서 생겼다고 하여 '아담의 사과(Adam's apple)'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다. 선악과를 먹지 마라는 야훼의 경고를 잊고 먹다가 갑자기 기억이 나자 목에 걸려버린 것이라나 뭐라나

 

"그리고, 설령 네가 남자여도, 문제 삼을 일 있나? 취향존중은 중요한 거야"

 

"......아, 이해해줘서 고마워"

 

이런 오해를 자주 산 것인지, 키쿠치는 밝게 미소지었다. 과연 이게 그 인터넷에서 말하는 100만불짜리 미소라는 건가. 진짜로 잘생겼구만. 내가 여자였으면 반했을 거다

 

"저기 말이야, 오해받기 싫으면, 그냥 머리를 기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면 좋겠지만, 입장 상 이 상태로 고정할 수 밖에 없어서"

 

역시 내가 생각한대로 저 모습은 컨셉인 모양이다. 보이시한 미소녀라는 컨셉

 

"아, 나는 765 프로의 키쿠치 마코토야. 남자팬은 하나도 없고 여자팬만 있는 실정이라 조금 곤란한 입장이거든. 관심, 많이 가져줘!"

 

"......아, 그래"

 

착각하지 말자, 히키가야 하치만. 아이돌은 대중의 이미지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관심을 받으면 살고, 관심을 받지 못하면 죽는다. 마치 외로우면 죽어버리는 토끼처럼. 절대로 나를 좋아해서 저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

 

 

손을 흔들며, 키쿠치는 먼저 가버렸다. 아이돌이라는 것도 참 피곤하겠구만, 생판 타인의 앞에서도 적극적이고 친절한 모습을 보여야 할 테니까. 나라면 죽어도 못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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