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힛키마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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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0, 2015 14:06에 작성됨.

옥상으로 가는 길. 나는 터덜터덜 힘 없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아니, 딱히 반에 있을곳이 없다든가, 반에 있기가 거북하다던가 하는 이유가 절대로 아니다. 이건 자유를 찾아나서는 생물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오히려 이렇게 하지 않는 반의 녀석들이 생물로서 잘못되어 있는 거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사용되지 않는 책상이 난잡하게 쌓여 있어서 사람 한명이 지나가는게 고작인 장소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문은 자물쇠로 잠겨져서 굳게 잠겨져 있을 거다. 그래야 하는데 그 자물쇠가 풀려서 흔들흔들거리고 있다. 어차피 어디 반의 잘나가는 녀석들이 떠들어대기 위해서 옥상을 연 거겠지. 정말 바보와 연기는 높은 곳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난 정적이나 침묵을 좋아한다. 다만, 이 문 앞에는 정적 대신 노랫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꽤 좋은 노랫소리다. 다른 사람이 옥상의 문 앞에 있는데도 나는 은근히 활발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 같은 외톨이는 보통 아무도 없을 때 활발해진다

 

변명은 아니고, 이건 그거다. 집에서만 큰 소리치는 것 같은게 아니라, 오히려 평소에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신경쓰고 있는 것 뿐이다. 어쨌든 이 노랫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증이 생긴다. 심장도 살짝 두근두근 거리고 있다. 마치, 옛날 보물찾기를 하던 때를 떠올리게 하는 감각이다

 

물론, 그 보물찾기, 나 혼자서 했지만

 

옥상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면 느껴지는 고양감. 푸른 하늘과 수평선을 보자 폐색된 세계에서 벗어난 듯한 자유가 느껴진다. 응. 그래. 이거지. 난 이걸 바라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노랫소리의 근원지를 따라 움직인다

거기에는 한 명의 소녀가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푸르스름한 머리칼의 소녀가 눈을 감고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가희(歌姬). 마치 딴 세상에 온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뻥 뚫린 옥상인데도, 그녀의 노랫소리로 가득 채워진 듯한 느낌이다. 대체 저 소녀는 누구일까? 학교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본 성악부에서도 저 소녀는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음악 감상 하기를 몇 분 후, 그녀의 노래가 끝났다

 

"후우......"

 

만족스럽게 불렀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린 그녀와 무심코 눈동자가 마주쳐버렸다

 

"....."

 

"....."

 

어, 엄청나게 어색한 분위기다. 마치 몰래 AV를 보다가 코마치에게 들켰던 때 수준의 어색함이다

 

어느 한쪽이 먼저 말을 꺼내는 일 없이, 우리는 한 5분 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멀뚱멀뚱 서로만 쳐다보았다

 

*

 

계속 아무 말도 할 수는 없었기에, 일단 들은 노래에 대한 솔직한 감상이라도 말해보기로 했다

 

"그...노래 잘 부르시네요..."

 

"...아, 감사합니다..."

 

일단 몇 학년인지 몰라서 존댓말을 썼다. 교복을 입고 있지만 분위기 탓인지 왠지 모르게 성숙한 모습이 보여 상급생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아니, 딱히 노안이라는 건 아니다. 눈 앞의 소녀는 분명 미소녀라고 부를 수 있는 소녀니까

 

그 다음에는 또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눈 앞의 소녀도 꽤나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인지 말을 더 잇지 못 했다. 그때, 소녀는 무언가 결심을 한 것인지, 주먹을 꽉 쥐고 갑자기 물어왔다

 

"저...저기, 제가 누군지 아시나요...?"

 

누군지 아냐고 물어본들 누군지 모른다. 혹시 유명한 사람? 아니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뭔가 알려질 수 있는 일이라도 하고 있나? 알고 있다, 라는 척이라도 하려 했지만 눈 앞의 소녀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지라 결국 솔직하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죄송합니다...누군지 모르겠어요..."

 

내 옆자리에 있는 녀석 이름도 모르는 나다. 갑자기 내가 누군지 아냐고 물어본들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겠지요...아직 무명이니까..."

 

무명(無名)? 뭐 이름이 알려질 만한 일이라도...아, 노래 부르는 것과 연동시켜서 생각해 본다면,

 

"혹시 가수이신가요?"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일단은 반년 전에 데뷔한 아이돌이니까요"

 

놀랐다. 요즘 아이돌은 대부분 십대로 중학생에서 고교생들이 넘친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같은 학교 학생이 아이돌, 이라는 경험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것이니까

 

"765 프로덕션의 키사라기 치하야라고 합니다. 부디,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랄게요. 저희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저희는 더 노래를 부를 수 있으니까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끝까지 예의 바르게 말하고 그녀는 옥상문을 넘어 가버렸다. 반년 전에 데뷔한 무명의 아이돌. 그런데도 프로 의식이 넘치고 있다. 아니, 대중의 이미지로 먹고 사는 직업이니, 비록 눈 앞에 있는 사람이 같은 고등학교의 학생 중 한 사람이라고 해도 예의 바르게 나설 수 밖에 없는 걸지도

 

*

 

"여어~ 히키가야. 오늘은 왠 일로 조용하게 넘어가는구나. 내 수업 시간이 들어있지 않아서 그런가?"

 

"전 언제나 조용합니다만. 외톨이니까요"

 

"당당하게 말할 사안이 아니잖냐"

 

하교 시간, 우연히 히라츠카 선생님과 만나버렸다

 

히라츠카 시즈카. 내가 다니는 치바시립 소부(総武) 고등학교 교사로 담당 과목은 국어. 이외에 생활 지도 또한 맡고 있으며, 바지 정장이 잘 어울리는 쭉쭉빵빵한 몸매에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의 미녀 여교사다. 다만, 겉보기와 달리 내용물이 썩 좋지 못하다고나 할까

 

"너, 지금 이상한 상상하고 있지 않냐?"

 

"안 하고 있습니다. 전력으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는 중입니다"

 

"찔리는게 있으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겠지...뭐, 그런 건 상관없고...요즘은 너 말고도 다른 문제아가 있어서 조금 머리가 아프구나"

 

"전 문제아가 아닙니다만?"

 

그나저나, 또 어떤 문제아인지는 몰라도 선생님이 이렇게 한숨을 내쉬고 있으니 상당히 막나가는 녀석인가 보다. 이 소부고는 진학을 목표로 한 녀석들이 모이는, 나름 명문교라 할 수 있는 곳인데 그런 녀석이 있는 건가?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키사라기 치하야라고 알고 있나?"

 

"엇...?"

 

분명, 아까 전 옥상에서 보았던 그 소녀의 이름이 키사라기 치하야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문제아라니? 예의 바르고 성실해 보이는 소녀였는데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그 아이는 반년 전에 데뷔한 무명의 아이돌이라고 한다. 다만, 아이돌의 일 때문에 출석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말이지, 교직원들 사이에서 평가가 썩 좋지 않아. 게다가 교우 관계 또한 너 이상으로 시궁창이라 하더구나. 일단 너와 달리 합창부라는, 그럴싸한 동아리에 속해 있기는 한 모양인데, 선배들과 불협화음이 일어난 모양이야"

 

나도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여동생인 코마치에게 예체능 계열의 부활동에서는 선후배 사이에 관계가 딱딱 잡혀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후배가 선배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다니, 문제가 크긴 크네

 

'어쩐지 합창부에서도 본 적이 없는 건 아이돌 활동 때문이었나'

 

"성적은 좋고 성실하며 예의 바른 아이기는 한데, 고지식하고 소극적이라서, 나쁜 아이는 아니지만......아니, 너에게 이런 말 해봐야 시간만 끄는 것이겠군. 괜히 시간 잡아먹어서 미안하다"

 

"아뇨, 뭐, 괜찮습니다. 어차피 학교 끝나면 남는게 시간이니까요"

 

나, 외톨이니까 말이지. 하교 시간이라고 해도 곧장 집으로 직행할 뿐이다. 친구들과 논다는 선택지는 내게 없어

 

*

 

"다녀왔다, 코마치"

 

"아, 어서와 오빠!"

 

외톨이인 나에게 하나 자랑거리가 있다면 바로 내 사랑스러운 여동생 코마치에 대해서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집안과 달리 우리 남매 사이는 매우매우 좋아서 여동생이 오빠를 지갑으로 여긴다거나, 머슴으로 부린다던가, 그런 일은 절대로 없거든! VIVA 여동생! 우리 코마치보다 이상적인 여동생이 현실에 있을까 보냐!

 

"그러고보니 코마치. 너, 765 프로라고 들어본 적 있냐?"

 

"응? 거기도 예능기획사야? 처음 들어보는데? 그보다 나는 961 프로의 쥬피터 오빠들이 좋아!"

 

쥬피터, 폭발해라

 

방에 올라가 컴퓨터를 키고 한 번 검색을 해 보았다. 일단 회사에 관한 것이 인터넷에 뜨기는 하는데,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다. 멤버들의 프로필도 아주 간략하게 나와 있고 팬클럽이나 그런 것 하나 없다

 

관련 항목의 블로그나 카페 내용을 보면 키쿠치 마코토 남자답게 잘생겼다 라던가, 아마미 하루카가 잘 넘어진다거나, 야요이가 귀엽다거나, 후타미 쌍둥이 자매와 같은 학교 친구라는 녀석이 올린 썰도 있고 기타 등등 사소한 것들 밖에 없다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영세기업이구만

 

"키사라기 치하야, 라......"

 

프로필 사진의 이미지들 중에서 저 홀로 가장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항상 웃는 얼굴로 팬들과 시청자들을 대해야 하는 아이돌의 특징과는 상당히 안 맞는데, 얘 이래서야 괜찮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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