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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미시로 프로덕션 ~요리대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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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6, 2016 20:05에 작성됨.

복어.

동물계 척삭동물문 조기어강 극기상목 복어목의 어류로 옛날부터 동북아시아 권에선 맛있는 물고기로 이름이 높다. 과거 중국의 북송 시대의 시인 소동파는 복어의 맛을 보고 '복어의 신비로운 맛은 죽음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극찬하였을 정도다. 그로부터 천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현 시대의 사람들도 복어의 맛을 칭송하고 있다.

다만, 이 물고기는 맛보다는 그 몸 속에 품고 있는 독으로 더 유명하다. 테트로독신의 악명은 일본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접했을 게 분명하다. 소동파가 죽음과도 바꿀 만한 맛이라고 한 것은, 거추장스러운 찬미사가 아닌 말 그대로의 사실을 읊은 것일 뿐이다.

 

"오오, 슈토 아오이 선수가 꺼낸 저것은 설마.....?!"

 

"복어로군. 그것도 자주복."

 

상무가 스태프를 노려보았다. 상무님의 시선을 받은 스태프의 피부가 갑자기 새햐얗게 탈색되었다. 축하합니다! 스태프는 워보이 스태프로 진화했습니다!

 

"상무께서 날 보셨어! 날 70명의 아이돌이 맞이해주는 하렘으로 이끌어주실 거야!"

 

"전무다."

 

상무가 대답해주자 스태프가 기절해버렸다. 양 손으로 브이자를 그린 채, 황홀경에 빠진 듯 풀어진 얼굴을 하고선 말이다. 와우, 추잡해라.

 

"슈토 아오이 선수는 복어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재료는 자신이 직접 낚아올린 제철 자주복. 정확히는 다른 물고기를 잡다가 걸려들어온 잡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성대도 안 달린 주제에 그 비싸고 귀하신 자주복님을 잡어 취급하는 슈토 아오이의 위엄쩌는 모습을 보시고 계십니다. 자주복님께선 여러분 같은 흙수저도 못 되는 인간 이하의 노예, 혹은 노예 예비군들은 맛보긴커녕 눈으로 볼 기회조차 없을 귀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슈토 아오이는, 낚시로 낚아올린 이걸 잡어 취급한 것이다. 역시 고급 여관집 따님이시다. 금수저 인증이구만.

 

"자세한 설명은 필요없어. 그런데, 그녀는 복어를 다룰 수 있는 건가? 애초에 복어를 다루기 위해선 자격증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확히는 자주복이 아니라 자ㅈ....."

 

카와시마 미즈키가 카메라와 마이크에게 사인을 보냈다. 자지복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역시 카와시마 씨. 아나운서를 오래 한 덕분에 NG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처리하는군! 아, 참고로 해설의 미시로 상무님께서는 해설이 처음이시랍니다. 미숙해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알아서 접대하라고.

 

"자, 그럼 슈토 아오이 쨩이 복어를 어떻게 다루는 지 볼까요?"

 

카메라맨이 카메라를 들고 슈토 아오이에게 다가갔다.

다가가던 중, 카메라맨은 위화감을 느꼈다. 알바 하다가 우연찮게 방송국 카메라맨 일을 시작한 지 몇 년 째인 오오쿠보 씨(27) 는 수 많은 아이돌을 찍었지만 이런 일은 없었다고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직감이 말했다. 곧 그는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피사체인 아이돌이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는 것이다! 단순히 눈치 못챘다거나 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제대로 카메라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 쇼쿠닌 슈토 아오이 셰프의 내면세계에서 카메라라는 존재는 보잘것없는 미물에 불과했다. 오오쿠보 씨(27) 는 아이돌의 빛나는 모습이 아닌, 장인의 땀을 찍는 카메라맨이 되었음을 느꼈다. 새로운 경지에 발을 들이민 예술적 황홀감에, 그는 무심코 슈토 아오이에게 다가갔다. 그것이 실수였다.

 

"비켜라, 피 튄다."

 

칼의 노래라는 소설에 비슷한 대사 있던 것 같던데. 아무튼 버려진 섬들에 꽃이 피었고 카메라에는 붉은 피가 튀었다. 슈토 아오이를 찍고 있던 화면에 붉은 죽음의 표식이 나타났다. 의미 그대로의 죽음이 담긴 붉은 액체가, 담담히 자지복을 해체하는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이런 크기의 자지복이 존재하는가 싶을 정도로 검고 굵고 크고 거대한 자지복이 토막나버렸다. 크으 잔인해라 누군가의 생명을 이렇게 취급하다니 하지만 이것이 요리라는 것이다. 끝에 가서 시들어버리기 전에 잘렸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좀 낫지 않은가. 아니라고? 알게 뭐야 이 변태들아. 어차피 이딴 거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나 하면서 기뻐하고 있겠지 변태 자식들!

 

"히, 히익......"

 

카메라맨 오오쿠보 씨(27) 가 가랑이 사이를 한 손으로 가린 채로 재빨리 도망쳤다. 다른 남성 카메라맨들도 저곳으론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런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남자들을 조금이나마 쓸만한 물건으로 만들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그건 적절한 '손질'이지."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 멋대로 대답하지 마세요 토키코님.

토키코님께선 익숙한 솜씨로 돼지고기를 주무르고 계십니다. 섬세한 손길로 껍질이 벗겨진 돼지고기 사이에 양념이 상처 위의 소금처럼 잘 저며들도록 빈틈없이 고통을 가하고 계시는 그 모습은, 이미 모든 돼지들을 괴로움 속에서 지배하시는 여왕의 품위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아아, 서늘한 미소와 함께 고통 속에서 발버둥치는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다져, 그걸로도 모자라서 불 속에서 고문하며 극단적인 고통을 가하는 그 모습을 보며 피할 수 없는 숙명을 묵도한 돼지들이 울부짖습니다.

 

"크흐흐..... 몇 주를 넘게 천천히 훈제시킨 하몽이지...."

 

"히, 히이이익! 살려줘!"

 

"정신차려! 우린 안 죽어!"

 

"맞아! 우리의 생명은 토키코님을 위해 소비당할 가치도 없다고!!"

 

마지막에 이상한 것이 끼었다고요? 다릅니다. 토키코님을 위해 이용당하는 게, 토키코님에게 이용당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르는 돼지 이하의 미물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은 것일 뿐입니다. 세상 모든 돼지들은 저 햄의 최후를 부러워해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햄의 최후를 부담스러운, 자신에겐 안 어울릴 정도로 행복한 최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단 한순간의 쾌락에 소모되는 것 조차 영광에 겨운 일인데, 몇 주에 걸쳐 토키코님이 직접 손을 뻗으시사 끝날 것 같지 않은 잔혹한 고문과 고통으로 괴로움의 제단에 올려주시는 겁니다! 고통은 행복이고 괴로움은 행복이고 공포는 행복이고 절망은 행복일지어니! 모두 다 알겠죠?!

 

"와카라나이와."

 

숙련된 진행자 카와시마 미즈키 씨가 신호를 보내자, 카메라맨이 그녀 옆의 다른 참가자를 잡았다. 그래, 이쪽은 좀 났다. 아니, 훨씬 났다.

 

"요리란, 먹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만들어야 하는 법. 쓸데없는 기교만 가득 들어간 하찮은 장식이네요."

 

마유는 약간의 경멸을 섞은 눈초리로 토키코를 바라보았다. 토키코님의 명예를 위해 말씀드립니다만, 그분께선 지금 제1노예인 자신의 프로듀서를 생각하며 짤막한 소지지들을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찢고 자르고 짓이기고 분쇄하며 고문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 노예는 지금 심사위원석에 앉아서 기쁨 반 당혹감 반의 표정으로 처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의 주니어도 곧 저렇게 되겠죠. 허나 프로듀서라는 자가 비할 바 없는 위대한 영광을 떨떠름하게 생각하다니 이 얼마나 불경한......

 

"흥, 광년이 입은 살았네."

 

"마유는 토키코님이랑 싸울 생각은 없어요. 우린 서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잖아요. 안 그래요?"

 

그리고 마유는, 미소로 그녀와의 싸움을 피했다. 토키코님 역시 마유의 무례한 경거망동을 그냥 눈감아주기로 하셨습니다. 맹수는 왠만해선 서로 싸우지 않으려 하는 법이다.

 

"프로듀서를 위해 한 점, 또 한 점. 방해물들의 목을 뜯어내듯 도둑고양이를 썰어내듯 한 점....."

 

숙련된 사운드 기기 담당 오자와 씨(38)는 마유 주변의 마이크를 꺼 버렸다. 아이돌의 입에서 나와선 안 될 발언이 나와서가 아니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소리를 지우는 것 만으론 그녀의 중얼거림에 묻은 피냄새를 지울 수 없으리라. 그녀의 주변에 알 수 없는 광기가 흐르고 있었다. 온통 붉은 색이었다.

 

"붉구나. 건강한 색이야. 아하하. 전부 다 프로듀서를 위해. 우후후....."

 

사쿠마 마유의 자리엔 간이 정육점이 펼쳐져 있었다. 작은 송아지라 해도,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고기는 1인분을 훨씬 뛰어넘는다. 요리사 한 명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만한 '크기'가 아닌 것이다. 그녀는, 오로지 사랑의 힘만으로 그것을 다루고 있었다. 미리 깔끔하게 손질해 냄새를 완전히 뺀 내장, 뭉근하게 우려내고 있는 사골국물, 프랑스식 소 뇌 요리, 우설 스테이크, 눈 요리, LA갈비, 채끝살로스, 목심불고기, 장조림, T본 스테이크, 육사시미, 육회. 제한된 시간 안에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요리가 아니다. 적어도 양적인 면에선 모든 이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물론 질적인 면도 빼놓지 않았다.

프로듀서를 행복하게 만들고야 말 거라는, 잘 갈린 식칼보다 날카로운 의지가 인간의 한계를 넘나들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사쿠마 마유가 준비한 스테이크는.... 두 종류군. 미디엄레어와 웰던."

 

도축장을 감도는 혈향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상무는 냉정침착한 태도로 스피드웨건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예? 웰던은....."

 

"일반적으로 맛이 없다는 이미지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대로 조리하지 않았을 때 이야기지. 맛있는 웰던이야말로 만들기 가장 어렵다. 그리고.... 사쿠마 마유는 완벽한 웰던 스테이크를 굽고 있군."

 

미디엄레어는 방법만 알면 의외로 쉽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웰던은 다르다. 안쪽까지 다 익히면서도, 동시에 육즙을 완벽하게 남긴다는 건 일반인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마유는 해내고 있었다. 왠만한 셰프도 흉내내기 힘든 기술을 본 상무가 감탄에 찬 신음소리를 흘렸다. 아이돌보단 요리사로 나서는 쪽이 대성함이 분명하리라. 이는 슈토 아오이도 보증하는 사실이다.

물론 사쿠마 마유는 아이돌 은퇴 후에도 연예계에 남아있을 수 있는 수준의 저력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돌을 은퇴하면 아마 평범한 가정주부가 될 지도 모른다. 프로듀서와 사랑으로 맺어져있는 사쿠마 마유의, 아이돌을 '수단'으로서 선택하고 태생부터 팬을 배신한 자의 한계였다.

 

"그럼..... 카와시마 캐스터, 자네가 이번 대회에서 가장 놀란 점을 말해보게."

 

그녀가 마음을 고쳐먹지 않을 것을 만난 순간부터 직감한 미시로 상무는, 사쿠마 마유에게서 눈을 돌리고 다른 곳을 보기로 정했다. 방금 전과는 다른, 포근하고 편안한 공간을 향해.

 

"시부야 린입니다. 설마 린이 저 정도의 실력을 지녔을 줄이야......"

 

무심코 카와시마 미즈키가 눈물을 삼켰다. 저 곳을 볼 때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이 먹으면 눈물이 많아져서 큰일이라더니 저기 우사밍이 밍밍밍 밍밍밍 우사밍밍 전파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아지매의 마음을 이렇게나 자극하는 린의 요리란 대체 무엇인가 아아 세상은 얼마나 나나에게 더 잔혹해질 것인가! 네 이년 시부야 린! 프로듀서 할짝은 그만하고 무슨 요술을 쓰는 지 썩 정체를 밝히거라!

 

"즛~또 쯔-요쿠 so 쯔-요쿠 아노 바쇼에~ 아네모네스타~"

 

진 태앙의 젤러시의 위엄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전설의 콩라인 곡 NSN과 멀쩡한 곡 아네모네스타를 부르는 린의 손에, 그녀가 부리는 창(蒼) 의 비법, 아이올라이트의 마법, 근청석의 주술의 비밀이 담긴 정수가 들려 있었다. 그 정수에는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름이 있었으며,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그 비술을 알고 있었다. 이곳은 닌자와 사무라이의 나라니 비술 한두개 쯤 있어도 이상할 건 없다. 마법이 담긴 통에서 비술의 정수가 떨어져내렸다. 그 비술의 정수의 이름은.....

 

"미원?!"

 

맛이 딴판일세 우리 시골 국수와는 맛이 딴판일세 무엇을 치나우 아 아 아 아지노모도를 쳤구려의 그 아지노모토다. 미원이다. NSN보다 더 해롭다는 MSG다. 시부야 린은 요리대결 프로그램에서 대놓고 MSG를 쓰고 있던 것이다! 이런 미친! 이 여자 요리방송을 물로 보고 있어! 그런데 스텝도 심사위원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고! 그냥 울기만 할 뿐이라고! 속지마 저건 혐성이야! 배신의 달인이라고! 애초에 요리방송에서 MSG같은 거 쓰면 실격이잖아! 건강 문제는 둘째치고 이건 요리가 쉬워진다고! 그 전에 건강을 생각하는 웰빙 헬씨하신 시청자 어머니 여러분들이 낭낭하지 못한 마음이 팍 상해부렀슬 거라고!

 

아무튼 상식도 고정관념도 암묵의 룰도 윤리관도 혐성도 시탈린도 시청자도 뛰어넘고 작살을 내놓는 창조적이고 초스피디한 배신의 전문가인 시부야 린이 준비한 요리란 과연 무엇일까?! 후쿠시마산 해산물과 농산물로 만든 슈가밤? 그 근처에서 적당히 집어온 누카콜라&선셋 사르파사릴라? 명의 아미바께서 남긴 남두신권과 북두신권의 비급? 미안하지만 다 틀렸다.

린이 준비한 것은 일본의 평범한 가정에서 맛볼 수 있는 요리들, 즉 가정요리다.

 

".....엄마.....아빠..... 나나는, 나나는... 나나느은!!!"

 

"왕언니 그만해요! 우린 모두 용서받을 수 없는 불효녀라고요! 이제 와서 용서를 빌려고 해도 용서해줄 부모님조차 없다고요! 다 저곳의 노스탤지어 속에 묻어서 버리고 왔잖아요! 여기까지 와서, 부모님은 오래 전에 작고하고 여기까지 와서 어째서, 어째서어!!!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거냐고!! 저 석양은, 왜 이렇게 그리운 냄새가 나는 거냐고!!!! 미시로의 이름을 진 순간부터, 인간의 감정은 버리고 왔을텐데에!!!!"

 

짱구 극장판 9기 어른제국의 역습에 나올 법 한 광경이었다. 상무님이 구슬피 울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되새긴다.

된장국, 유채무침, 냉두부박이, 꽁치구이, 양배추롤, 새우튀김, 니쿠쟈가 등등...... 무심코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노스탤지어가 그녀가 있는 자리, 이미 한 가정의 부얶이라고 불러야 할 곳에 머물고 있었다. 칼솜씨는 슈토 아오이에게 밀리고 요리의 품질은 토키코에게 집념은 마유에게 밀린다. 달콤함은 볼 것도 없이 아직 안 나온 셋에 훨씬 못 미친다. 섬세함과 정확함은 시키의 발끝도 못 따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요리에선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의 맛이 배여 나왔다. 먹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요리의 본질에 가장 접근한 것은 그녀였다.

 

"대체.... 마유한테 부족한 게 뭐길래...... 미원 넣은 요리 따위에...."

 

자신이 아무리 기교를 부려도 저것에 이길 수 없음을 직감한 마유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바닥에 주저앉을 뻔 했지만, 그녀의 프로듀서가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고 있기에 절대로 쓰러질 수 없었다. 최후까지, 최후의 최후까지 싸워야 했다. 애초에 마유는 승패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린에게 질 수 없다는 순수한 투지가 솟아올랐다. 미원 같은 것에 의지하는 허접한테 지는 건 수치이자 치욕이라는 심리도 작용한 듯 싶다. 애초에 말이야 건강이고 뭐고 미원 같은 걸로 부족한 실력을 숨기려는 건 반칙이라고! 사도라고! 구제할 수 없는 쓰레기짓이라고! 시부야 린 네년이 그러고도 요리사냐! 네년은 요리의 명예를 더럽혔다! 오오 고든 램지이시어 이곳에 강림하시사 그 성스러운 FUCKING한 WORD로 그녀를 범하소서!

 

"냐햐~ 있는 것도 고정관념 때문에 제대로 못 쓰는 바보들이 많네~"

 

.....마유를 포함한 좌중의 모든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일침이 회장을 관통하였다. 귀여운 지혜와 불확실한 광기는 공존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을 증명한 미친 아이돌의 비웃음이 그들의 마음을 바늘 달린 솔로 갉아내었다.

 

".....연구실?"

 

기계가 반복적인 쇠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화학약품들이 녹아내려 뒤섞이고 불 속에서 다시 하나가 되어 굳어진다. 화상 위에 생긴 농포가 단단하게 굳어진 것 만 같은 끔찍한 비주얼의 무언가가 끓어오르자, 시키가 기다렸다는 듯 스포이드로 그것을 흡수하였다.

 

"캬라멜라이즈~"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지성이 없는 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지혜가 있는 자들은 미증유의 그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지성과 지혜와 지식을 전부 다 갖춘 자들은 상식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작은 세상이 붕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누, 눈 있는 자들은 보아라! 귀 있는 자들은 들어라! 오오 신이시어 저것이 무엇이옵나이까, 아지다하카가 자하크의 탈을 벗고 드디어 우리 신앙자들을 말살하려 드나니, 알라께 가호를 입은 귀인 파리둔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

 

이과 출신 음향감독 누자베스 씨(42세, 레바논 계 프랑스인, 외인부대 출신) 가 갑자기 신을 찾기 시작했다. 참고로 이 인간 기독교인이다. 레바논은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는 나라라고! 옆집 헤즈볼라 아저씨가 기독교도 시장을 지지하는 동네야! 요즘은 그 근처 동네는 다 막장이지만! 아무튼 기독교인이 알라를 왜 찾는 걸까. 어차피 같은 사막 친척이긴 하지만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아마도 이 세상의 바깥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학생이 대학 발표과제로 이슬람과 ISIS를 선정한 후 자신의 금붕어 똥 속의 대장균 시체보다 못한 지식을 전부 동원해서 밤새 PPT를 만든 결과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은 데다가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슬람교 여성 유학생과 종교 및 문화에 관해 상당히 심도있는 토론을 나눈 것과 관계가 있을 리가 없다 햣하 학점 건졌다 유후 헤헤 우헤히후히헤헤후하히 이름고증 그런 거 몰라 

 

"자, 그리고 이 조미료들을 넣으면~"

 

소르비톨, 미원, 자일리톨, 효소 등등..... 온갖 미신과도 같은 효능을 지닌 물질들이 섞여들어가 요리를 만들어낸다. 아아, 태어난다.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경지가. 인류의 멸망과도 같은, 달콤한 쾌락 속에서 사람들을 짜내 녹여죽이는 맹독의 요리가!!!!!!!

 

"잠깐! 맹독이라면 복어잖아!! 내 컨셉 빼앗아가지 마! 사시미로 담궈버린다 앙♥"

 

"아오이쨩이 쓰는 그 조미료는 화학반응의 산물이라고~ 그리고 날 협박하려면 샷건은 가져오시지?"

 

"단순한 화학반응이 아니야! 이건, 예술의 혼의 담긴 요리야! 복어 잘못 요리하다 죽는 사람이 몇명인지 모르는구나?"

 

"혼? 미안하지만 영혼의 냄새를 맡은 적은 없어~ 증명할 수 없는 걸 가져오지 말라고~ 총 맞아 죽는 사람 숫자는 알아? 거기에 나도 기여하고 있거든?"

 

자 이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도돌이표. 아이돌들은 아이돌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도록 냅두고 상무님에게 돌아가자.

 

"전무다. 예상 외로 상당히 다양한 요리가 나오는군. 전부 다 달콤한 걸로 나올 줄 알았는데."

 

"그야 미시로 프로덕션 아이돌사업부 소속의 아이돌들은 하나같이 괴인인 동시에 전문가들니까요. 아마 이능력자도 있을 걸요? 사실 야마토 아키 양은 아이돌들의 전투력을 두려워한 자위대에서 몰래 파견한 스파이라는 설이..... 상무님?"

 

야마토 아키의 소문이 진실임을 알고 있는 미시로 상무께선 어느 새 그 사실이 소문의 형식으로 나돌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전해듣곤 한숨을 쉬었다. 이능력 운운은 둘째치고, 이곳의 아이돌들 중 일부는 위험생물군에 분류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자위대에서 경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 참고로 코우메의 그 아이는 진짜다. 이능력자 있구만.

 

".....봐, 저 괴인들을 뭔 수로 다 데리고 있어. 지금이라도 프로젝트를 백지화해야 한다고. 회사는 무너질지 몰라도, 저것들이 치요다 구 한복판에서 맘먹고 날뛰기라도 한다면 일본이라고 하는 국가가 무너질 거야. 일본침몰의 위기라고. 카와시마 미즈키, 아직 늦지 않았다. 너만이라도 본래의 아나운서로 돌아가. 이 방송을 보고 있는 모두에게 경고....."

 

카와시마 미즈키가 또 한 번 완벽한 타이밍에 신호를 보냈다. 카메라도, 사운드도 다시 한 번 아이돌들을 잡았다. 미시로 상무가 뭐라고 말한들, 카와시마 미즈키의 머리 속엔 '하일 아이돌사업부'의 구호만이 조용히 덧씌워질 뿐이었다. 무엇을 숨기랴, 카와시마 미즈키는 시간의 흐름을 멈출 수 있는 이능력자인 것이다! 이는 데레스테의 토픽이 증명하고 있다!

 

"전무다."

 

"아무도 말 안 했는데요?"

 

그러고보니까 이제 나레이션에 태클걸고 있구나. 하지만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구나. 아아 슬퍼라 계모님 아아 슬퍼라 상무님

 

"그럼 남은 것은..... 스위티한 3인조로군."

 

회화가 맞물리지 않는다고? 하일 아이돌. 저기 구석에서 자기 아이덴티티 돌려달라며 술로 항의하는 건 절대로 사토 신일 리가 없다. 저 분은 권법 잡는 귀신이자, 남두성권의 남두육성 중 한 명으로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치는 순성의 '신'이다! 서던 크로스의 마천루의 꼭데기에서 유리아 프로듀서를 두고 운명적인 싸움을 벌여, 결국 패퇴당할 숙명을 받아들이는 순정남 신인 것이다! 아이돌 따위가 아니다!

 

"스위티 3인조.....

애플파이 프린세스 토토키 아이리

쇼콜라 티아라 미무라 카나코

화과자의 일등성 시오미 슈코."

 

"사실 이쪽이 대회의 메인 이벤트입니다. 지금까지 서술한 20키로바이트(메모장,UTF-8 기준) 이상의 글이 사실 전부 프롤로그에 지나지 않았다는 거죠. 상무님, 이 말도 안 되는 노잼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각본가를 해고하는 것 말곤 따로 방법이 없지. 대체 어떤 무능한 멍청이가 이딴 똥덩어리를 싸지른 거지? 풀릇은 엉망진창인 데다가 내용물도 웃기지도 않는 드립들로 가득 채운 쓰레기를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로군. 마치 과제고 글쓰기고 다 뒤로 미루다가 나중에서야 생각해내서 작업에 들어갔다가 왠지 쓰다 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텐션이 폭주해서 사이드스토리만 계속 써 대다가 결국 주인공들을 쩌리로 만들어버리는 모로윈드 작법의 나쁜 예를 보는 듯 하군."

 

아이돌은 여자아이. 여자아이는 달콤한 것. 그렇다면, 달콤한 것을 거느리는 저 셋이야말로, 이번 미시로 아이돌 쿠킹 대회의 왕좌에 어울리는 진정한 공주님인 것이다. 더 프린세스 오브 스위트 에가오의 자리는, 처음부터 저 셋의 것이었다. 셋 외의 참가자들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기술을 보이기 위해, 단지 그것을 위해 모인 것일 뿐. 애초에 이 대회에서 눈여겨보던 건 애플파이 프린세스와 쇼콜라 티아라의 목숨을 건 혈투가 아니었는가.

 

"뭐, 무능한 쓰레기는 나중에 처분하는 걸로 하고....... 미시로 전무다! 잘 들어라!"

 

"상무님?! 갑자기 무슨?!"

 

미시로 상무가 일어서서는 시오미 슈코와 미무라 카나코, 토토키 아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들의 싸움은, 지금부터다! 너희는 이제야 올라가기 시작한 참이다! 이 끝없이 먼 달콤함의 탑을!"

 

스케반 아라시, 1975년, 쿠루마다 마사미 작. 상무와 아베 씨의 나이를 유추해볼 수 있다.

 

 

 

 

 

"저기, 그런데 이쪽은 아무도 안 찍나요?"

 

타치바나류를 선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라고 아리스가 다 들리게 말했다. 상무는 모른 척 했다. 카메라맨도 모른 척 했다. 타치바나류의 악명은 미시로 프로덕션을 뛰어넘어 외부의 방송국 관계자들에게까지 널리 퍼져있던 것이다. 오오 두려워하라 타치바나류 그리고 두려워하라 이딴 게 한 편 이상 남아있다는 사실을!

 

"우리도 쩌리당했는데 뭐."

 

슈코의 위로를 가장한 불평은 아무도 안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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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나는 뭘 쓴 걸까. 혹시 지난 화에 광기를 다 써버린 걸까. 왠지 스스로의 손모가지를 잘라버리고 싶어지는 날이야.

안 그래? 거기 모니터 너머의 당신.

자, 그럼 오늘도 열심히 흑역사를 만들죠! 음 요새 낮과 밤이 뒤바뀐 수면부족 생활을 하다보니 손모가지랑 머리가 이상해진 거야! 분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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