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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제네가(家) 세자매

댓글: 8 / 조회: 1370 / 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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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07, 2016 17:56에 작성됨.

"이 이야기는, 뉴 제너레이션의 3명이 서로 자매지간이라는 설정으로 평범한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가는 작품입니다. 과도한 기대는 하지 말아 주세요... 라니, 미오쨩, 이거 저희가 읽으면 제 4의 벽을 넘는게..."

"워, 워, 시마무. 그런 이야기는 하는게 아냐. 잠깐, 우리가 자매지간이라는 설정이면 시마무라고 못 부르잖아? 시부린도?"

"...우리가 그런거 신경 써 줘도 의미 없지 않아? 그럼, 시작합니다."

 


1.

안녕하세요. 시마무라 우즈키입니다.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시마무라가의 장녀랍니다.
우리 시마무라는 3자매가 사이좋게 살고 있어요. 언제나 활기찬 막내 시마무라 미오, 냉정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착한 둘째 시마무라 린. 그리고 저, 시마무라 우즈키.
저는 동생들이 정말 좋답니다. 동생들이 바라는게 있다면 뭐든지 해 주고 싶어요.
그런데...

"흐에에에..."

피자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거죠...?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일이었어요. 그냥 TV를 보다가, 미오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을 뿐.

"피자 먹고 싶다-"

"왠일이야, 미오? 치킨 먹고 싶다고 안해?"

"에이, 린 언니. 아무리 나라도 맨날 치킨만 찾진 않는다구우?"

"그런데 별일이네. 무슨 바람이 불어서 피자를 먹고 싶다고 한거야?"

"음... 그냥? 오늘은 피자의 신님이 나에게 피자를 먹으라고 하고 있어. 린 언니, 우리 피자 한번 해볼까?"

"...너 요리 잘 못하잖아."

"에이, 해 보면 어떻게든 될거야. 어차피 우리 셋다 요리 그리 잘 하지도 못하면서 매일 어떻게든 차려 먹고 있잖아?"

"그거야 매일 해보기도 한거고, 간단한걸 하는거니까 그렇지. 피자는 아예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잖아... 근데 이런 이야기 하니까 나도 피자 먹고 싶어지네. 책임져, 미오."

"으윽... 내 용돈으로 통하는 피자 가게가 있던가..."

린하고 미오가 그런 말을 하고 있는걸 듣고 있자니, 제 속에서 말라죽기 일보 직전이던 언니 세포가 눈을 떴어요. 그래요. 저는 언니에요! 동생들이 먹고 싶어 하는거 하나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어야죠!

"두... 둘다!"

"...우즈언니?"/"...우즈키 언니?"

"제,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

 


"제가 왜 그런말을 한걸까요오..."

저는 마트의 야채 코너 앞에서 맥없이 흐느적거렸어요. 저, 그게, 피자에 양파가 들어가던가요? 올리브는 어디에 있는거죠? 토마토 소스는 케첩에 고추 페이스트를 넣으면 되는건가요? 아니, 매운맛은 낼 필요 없는걸까요? 고르곤졸라를 린쨩과 미오쨩이 좋아할까요?? 왜 인터넷의 레시피는 다 재료들이 제각각인거죠? 미오쨩을 위해서 닭고기를 같이 사 들고 가야 할까요? 그, 미오쨩이 좋아하는건 닭고기가 아니라 후라이드 치킨이었던가요? 아무리 그래도 피자랑 초콜릿은 안 어울리겠죠? 굳이 두사람이 좋아하는걸 챙겨 줄 필요는 없을지도...

"...으...우우..."

...생각해 보니까, 저도 피자 만들줄 모르는건 마찬가지였어요. 제, 제가 왜 거기서 나섰을까요. 요즘 언니의 위엄같은게 너무 안 산다고 생각해서 조급해졌던걸까요? 그치만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까 이런거 잘 만든다고 언니의 위엄이 살거 같지는 않은데...

"어라, 우즈키쨩?"

"...응? 카나코쨩?"

어느샌가 카나코쨩이 다가와서 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카나코쨩의 입은 시식 코너에서 가져온 빵을 우물거리고 있었고, 장바구니에는 각종 과자 재료가 한가득... 모른척 하기로 할까요.
그것보다, 마침 잘 됐어요. 카나코쨩이라면 도움이 될거에요.

"저... 저기 카나코쨩?"

"...응?"

"혹시... 도와주실수 있나요?"

 


"완성했네요!"

"응, 우즈키쨩, 완성했어."

"카나코쨩 덕분이에요."

"음... 그런데 말야... 우즈키쨩."

"네."

"...우리가 어째서 도우가 과자면 피자가 더 맛있을거라고 생각한걸까?"

"그러게요..."

우리는 완성한 피자를 바라보았습니다. 피자는 무난하게 구워..졌다고 생각해요. 치즈도 잘 녹아있고, 위에 올라와 있는 토핑들도 딱 알맞게 익었습니다.
하지만 도우가... 실시간으로 눅눅해져가네요...
뭔가 잘못된 것을 느낀 것은 피자를 8등분 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피자칼이 피자에 박히는 순간 피자가 쪼개졌어요. 파삭 하고. 파아삭 하고. 그래도 피자 도우가 바삭바삭하기만 하면 먹기 힘들다 정도로 끝났을텐데, 그 뒤로 소스가 과자에 배어들어 갈수록 눅눅해져 갑니다. 이미 들 수 없을 정도로 눅눅해져 있네요. 이래서야 한시간 정도 뒤면 이미 피자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을거 같아요.
근데, 그 이전에 맛이 있을까요, 이거.

"...과자를 쓰더라도 안 배어드는 과자를 쓸수 있었을텐데."

"어... 어떡하죠, 카나코쨩?"

"그, 글쎄... 도우 재대로 해서 다시 굽..."

"얏호, 미오쨩, 집에 도...응? 무슨 냄새지?"/"다녀왔어. 어라, 피자...?"

하필이면 최악의 타이밍에 두사람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어쩌죠, 어쩌죠... 시간이라도 더 있으면 새로 구워 보기라도 할텐데...

"우즈언니, 그거 피자야? 어라, 카나코 언니도 있네?"/"우즈키 언니... 피자 구웠어?"

"아, 저, 그게! 둘 다... 그게... 딱히 언니의 위엄을 되찾겠다는 그런게 아니라... 굽긴 했는데 그게... 맛있게 한다고 도우까지 과자로 해봤더니... 완전히 망해서... 미안해요..."

횡설수설하며 스스로도 무슨 말 하는지조차 모른 채 마구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 저를 보는 린과 미오는 한참을 제 얼굴을 바라보더니 피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닥터 시마무라 린. 이 피자의 상태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미오쨩이 갑자기 의사 흉내를 냈습니다.

"또 또 장난...흠흠. 아아. 전문가의 소견으로는 흔히 생각하는 피자의 형태가 아니라 한입 크기로 잘라서 먹으면 꽤나 편하게 먹을수 있을거 같습니다. 이상-"

"그럼 당장 수술을 시작해야겠군. 이 수술은 내가 집도한다. 메스!"

그리고 린쨩이 그 흉내에 호응을 하더니, 어느샌가 두 사람은 피자에 달려들어서 한입크기로 잘게잘게 잘라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랑 카나코쨩이 그걸 멍하니 보고만 있자, 어느샌가 해체 작업을 다 끝낸(?) 두 사람이 씨익 웃으면서 저에게 완전히 먹기 좋게 된 과피자(가칭)을 보여줬습니다.

"헤헤, 어때, 우즈 언니?"

"너무 자책 하지 마. 언니가 한 일인걸."

...아아. 어쩐지 눈물이 나올거 같았어요. 정말... 정말 착하네요 두사람... 미안해요. 변변치 못한 언니라서...

"고마워요. 둘 다... 헤헤."

저는 눈물을 꾹 참고, 두사람이 들고 있는 접시에 담긴 피자를 집어서 입에다 넣었습니다.

"...맛 없어요..."

...요리 연습 해야겠어요.

 


2.

안녕. 시부ㅇ... 아니, 시마무라 린이야. 방금 말실수는 신경 쓰지마.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내 동생과 언니는 나름 학교에서 인기가 많아.
일단 내 동생 미오. 안 그래 보여도 문무양도, 일단은 용모 단정, 그리고 괜한 친구만 사귀는거 같지만 하여튼 교우관계 넒음. 두루두루 인기가 좋고, 천성적으로 친구 사이에서 인기가 있을 타입이지.
...방금 전 말을 그대로 미오에게 들려 줬다간 '쓸데없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라고 태클 먹을거라는건 무시하고.
그리고 내 언니 우즈키. 미오같이 두루두루 빼어난 모습을 보여주진 않지만, 항상 웃는 얼굴에 상냥한 성격이라 누구나 언니를 좋아해.
그런데, 나는 언니가 걱정이야. 미오야 보기보다 이런 저런걸 생각하고 행동하는 타입이라 자기 앞가림은 충분히 하는데... 언니처럼 무방비하게 그런 치명적인 미소를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면 남자들이 껌뻑 죽을거 아냐. 남자들은 전부 늑대라고 들었어.

"...저기, 린 언니."

"왜, 미오."

"그래서,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나와 우즈언니가 나름 학교에서 인기가 있다는 것과 지금 우리가 서예부 부실에 난입하려는 것과의 연관관계가?"

"동생 된 도리로써, 언니가 동아리 활동 가서 뭐 하는지는 알아야 할거 아냐?"

"아니아니, 일반적으로는 거기까지 알 필요는 없는게... 우리도 우즈언니를 조금 믿어 보자구?"

"아-니야. 나는 언니를 믿지 못하는게 아니야. 언니에게 꼬이는 남정네들을 못 믿는거지. 사람 없는 곳에서 착한 언니에게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그렇게 따지면 린 언니도 내 눈에는... 뭐 됐나. 그보다 린 언니. 질문이 있는데."

"응? 뭔데?"

"그럼 그냥 린 언니 혼자 가도 되는거 아냐??"

"..."

"..."

...눈치. 미오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압박을 준다. 으윽. 안 그런거 같은데 이런데서는 예리하게 파고든단 말야 미오는.

"...솔직히 무슨 말 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야. 내가 미오처럼 사교성이 좋은 것도 아니고."

"우와. 린 언니를 쿨하다고 생각하는 애들이 불쌍해."

"알아서 생각하라고 놔둬. 나는 한번도 스스로 쿨하려고 생각 해 본적 없으니까. 그보다 미오, 그러니까 네가 돌입해서 우즈키 언니의 동향을 살펴 봐 주면 안될까?"

미오가 또 눈치를 준다. 우와. 또 그 시선. 미안. 미안하니까. 이 언니 말 좀 들어주라.

"네, 네. 이 미오쨩에게 맡겨 주세요."

미오는 별수 없다는듯 손짓을 해 보이며 서예부실로 향했다. 서예부실 앞에서 잠깐 고개를 들어 문에 걸린 이름표를 보았다. 홍정교(紅井校). 우즈키 언니가 가입해 있는 동아리가 분명하다. 그리고 조금 멀찌감치에서 지켜 보고 있는 나를 돌아보고 눈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이리오너라!"

"미오?!!?"

그냥 냅다 서예부실 문을 열어제꼈다.

"무, 뭐하는거야 미오?!"

"뭐하긴. 린 언니 말대로 우즈 언니가 동아리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보려고 하는데."

"그래도 더 조용히 하는 방법이 있을거 아냐! 왜 이런 짓을!"

"아니... 뭐, 그냥? 조용히 들어가면 솔직한 모습을 못 볼테니까. 자, 봐. 우즈 언니의 동아리에서의 솔직한 모습이..."

미오는 그렇게 말하면서 동아리실 안을 가리켰다. 내 눈은 그 손가락을 반사적으로 따라가 방 안을 보았다.
그리고...

"그-러-니-까! 동아리 홍보를 하고 싶으면 서예동아리 답게 한자로 홍정교(紅井校) 라고 적어 주는게 맞다니까!"

"요즘 학생들은 귀엽지 않으면 돌아보지 않는다구요! 그러니까 여기선 큐트하게 가타가나로 핑크체크스쿨(ピンクチェックスクール)이라고 적어주는게 맞아요!"

"이건 동아리의 마지막 자존심이야! 동아리장의 명령이야! 어서 동아리 광고를 적어! 홍정교라고!"

"납득할수 없어요! 아무리 미호쨩이 제 친구래도 이건 따를수 없다구요! 핑크 체크 스쿨이라고 적을거에요!"

"뭐? 동아리장의 말을 안 듣겠다는거야? 지금 대회에서 상 타왔다고 뻐기는거야?"

"여차하면 미호쨩이 직접 쓰세요! 전 안쓸테니까! 아, 제가 1등한 대회에서 미호쨩은 18위 하셨죠? 쓰는건 제가 해야겠네요?"

"말 다했어?"

"다 했는데요?"

"이게-!"

"..."

"..."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우, 우즈키 언니가... 나의 우즈키 언니가... 그런... 나의 우즈키 언니는 그런 말은...

"하하... 솔직히 이럴거 같았... 린 언니? 언니?!"

나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한참 뒤, 정신을 차린 나와 미오는 동아리장이자 언니랑 친한 친구인 미호 언니에게서 설명을 들었다.
지금 서예 동아리는 정식 동아리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명뿐인 부원을 다섯명까지 늘리거나 학교에서 정식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근데 3명만 있는 동아리는 꽤 되는걸로 아는데... 미오도 나도 그런 동아리에 들어 있고.) 그걸 위해서 광고 전단지를 적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우즈키 언니랑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걸 알아도 충격은 가시지 않는다. 우, 우즈키 언니는 그런말 하지 않아... 우즈키 언니는 순위가지고 놀리는 그런 말 같은건 하지 않아... 아무리 미호 언니랑 친한 사이라지만...

"...결국 동아리에서는 걱정 할 필요 없었네."

"그러게. 세명 있는 부원이 전부 여자니까."

뭐 하여간 동아리에 남자도 없고, 남자가 접근할 일도 없는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안심이다. 미호 언니 가라사대, 말다툼 했던 것도 서로 친하다는 표현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 들일 필요 없다고는 하는데... 으음... 동생들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그런 모습을 보여주니까 아무리 그래도 쇼크가 심각하다. 못 볼 걸 본 기분이야.
우리가 잠시 견학하고 돌아가려는데, 미호 언니가 광고지 시안 두개를 보여주면서 질문을 했다. 이거 두개 중 뭐가 더 좋아? 문외한의 의견을 듣고 싶어. 라고.
나와 미오는 잠깐 지켜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대답했다. 대답 못하겠네요. 실은 저희, 문외한이 아니라서. 지금 안하고 있을 뿐이지.

"그런데, 동아리 존속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가입 해 줬어야 했을까? 동아리가 없어지면, 서예 할 곳이 없어지는거 아냐? 우즈키 언니 말야."

"글쎄...? 우즈 언니라면 동아리가 사라져도 집에서라도 서예를 할거 같아. 내가 생각하기엔 말야. 보기보다 한 우물 파는 성격이잖아, 우즈 언니. 그리고..."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런 이유로 서예부 가입하면 화 낼걸. 우즈 언니."

"...그럴까? 미호 언니에게 말고는 화낼줄도 모르는 그 우즈키 언니가?"

"그럴거야. 우리에게 화내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화내는 걸테지만."

"..."

그럴지도 모른다. 나도 미오도 서예에 대해서는 썩 좋은 기억이 남아있진 않으니까.
하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으면 아직까지 서예를 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건 우즈키 언니도 마찬가지일텐데, 어째서 우즈키 언니는 서예를 계속 하고 있는걸까.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린 언니."

"응? 왜 그래 미오?"

"방금 전에, 동아리 내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잖아?"

"그렇지?"

"그렇다면, 동아리 밖에서는 어떨까?"

"그게 무슨..."

이번에도 미오는 손가락으로 눈 앞을 가리켰다.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은 우즈키 언니를 둘러싸고 있는 땀내나는 남정네 두사람. 우즈키 언니는 척 봐도 곤란해 보이는 표정으로 아우아우 하면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미오."

"응."

"출동."

"알았어."

미오와 나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일어나서 재빨리 우즈키 언니 뒤까지 가서 섰다. 한창을 헤실거리면서 우즈키 언니에게 추파 던지려고 하고 있던 남정네 두명이, 우리 둘이 서니 표정이 굳어 버린다.
새삼 하는 말이지만, 나는 말 안하고 있으면 무섭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이번만큼은 무서운 얼굴이어서 참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 놈팽이들에게 겁줄수 있으니까.

"흐응. 우리 언니에게 무슨 볼일이실까?"

"우리도 끼워주지 않을래? 재미 없는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니겠지?"

응. 아무리 보기보다 성깔 있는 언니라고 해도 언니에겐 아직 우리가 필요해.

 


3.

안녕, 혼ㄷ... 아니, 시마무라 미오야. 자기 성도 헷갈리다니 내가 어떻게 됐나봐.

뜬금 없는 소리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일이 있지. 그런데, 나에게 맞는 일이란 대체 뭘까? 그걸 찾기 위해서 우즈 언니처럼 한 우물만 파는 사람도 있고, 린 언니처럼 뭐가 됐건 별 관심이 없이 지내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일단 다 해보는 사람도 있어.
그치만 역시 아무리 이것 저것 해 봐도 이거다 할만한걸 찾지 못하겠단 말이지...

"아이돌은 어때?"

"아이돌?"

이런 푸념을 들은 마에카와가 뜻밖의 말을 했다. 고기 완자를 집던 내 손이 그대로 멈춰 버린다.
시간은 점심시간. 우리 3자매와 마에카와가 한자리에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마에카와는 병약한지 자주 학교를 빠지기 때문에 클래스 내에서 어울리기가 힘든 모양이라, 우리랑 같이 어울리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별로 보고 싶은 광경은 아니니까. 혼자 밥 먹는거.
그러고 보니까 아이돌은 생각해 본 적도 없네.

"아이돌이라면..."

"TV에 나오는 그 애들 이야기 하는건가요?"

"응. 아이돌이란건 있지, 팬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는 직업이잖아? 세사람에게 어울릴거 같은데?"

우리 3자매는 눈을 깜빡이며 그런 마에카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니, 뭔 말을 해 보고 싶어도 워낙 갑작스러운 말이라...

"별로인데. 나는 남을 기쁘게 하는데 소질 없고."

린 언니가 별거 아니라는듯 감자조림을 베어 물며 말했다. 아니. 그건 린 언니가 조금 착각하고 있는거 같은데. 저번에 린 언니가 나랑 우즈 언니를 학교의 인기인이라고 했지만, 린 언니도 만만치 않다. 뭐랬더라, 그런 쿨한 인상이면서 원예부 활동 중에는 표정이 풀리는 그 갭이 참을수 없이 좋다고 했던가? 물론 나한테야 그냥 가끔 못미더운 언니일 뿐이지만. 그런데 아이돌, 아이돌이라... 나는 폰을 들어 대충 아이돌에 대해 검색해 보면서 말했다.

"별로 생각해 본적이 없네... 요즘 신데렐라 프로젝트라는 그룹이 떠들썩한 모양이던데. 그치만, 마에카와 말대로 아이돌이라는건 대단하다고 생각해. 저런건 팬들에게 봉사한다는 정신 없이는 불가능할텐데. 심지어 나이도 우리랑 비슷하잖아?"

"심지어 더 어린애들도 있어. 신데렐라 프로젝트 찾아 보고 있는 중이구나? 봐, 아카기 미리아. 나이가..."

"우와. 11살? 정말 괜찮은거야?"

...치열하구나, 아이돌 업계. 신데렐라 프로젝트라는 애들은 분명 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아이돌이 된거겠지...
내가 폰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언니 둘도 이쪽으로 모여서 내 폰의 화면을 쳐다 봤다.

"헤에. 모두 정말 귀엽고 예쁘네요! 아이돌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저런 귀여운 옷 정도는 입고 싶을지도. 헤헤."

"아니, 우즈키 언니같은 착한 사람에게는 아이돌 세계같은거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 저 미쿠냥 이라는 애 귀엽지? 저런 애들이 뒤에서는 경쟁 쩐다구? 분명 우리가 아이돌이었으면 먼저 출세하지 말라고 막 질투했을걸?"

"미, 미쿠냥은 꽤 밝은 성격으로 보이는데 그런 짓은 안 할거야, 린."

"흐응. 마에카와는 아이돌 좋아하나봐? 아이돌들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이네?"

"아, 저... 그게..."

"헤헤. 그래도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는걸 보면 아이돌이라는 것도 굉장할거에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린쨩!"

"그...럴래나?"

세사람이 열심이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동안, 머릿속에서 복잡한 생각이 피어올랐다. 경쟁... 경쟁... 아이돌... 연습생... 그리고 그 생각의 결론은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친척 언니 중에서 아이돌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지. 나는 미카 언니에게 짧막하게 문자를 했다.

[미카 언니, 우리가 아이돌 해보겠다고 하면 뭐라고 할거야?]

얼마 안 있어 돌아온 답장은 참 심플했다.

[하지마.]

...좋아. 내가 강하게 나갈 이유는 충분해. 나는 우즈언니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즈 언니."

"응? 왜 그래요 미오쨩?"

"내 말 잘 들어. 내가 알기로, 아이돌은 오디션으로 일반인이 선발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연습생 시절을 거쳐. 어릴때부터 아이돌이 되기 위한 특화 교육을 받는다는 이야기야. 하지만 그러고도 아이돌이 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어. 알겠어? 몇번이고, 몇번이고, 날 수 있을거란 기대를 하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당연히 날아가는건 극소수고, 거기에 내가 있으리란 보장은 없어. 하지만 계속 뛰어내려. 계속 해 온게 그거니까. 이거 말고는 생각할수 없으니까. 계속해서, 계속해서. 게다가 날아 올랐다고 해도 저 신데렐라 프로젝트처럼 인기를 얻으리란 보장은..."

"미, 미오쨩?! 갑자기 왜 그래요?!"

"미, 미오! 우즈키 언니 겁주지 마!"

"그치만! 그때처럼 우즈 언니가 그때처럼 상처 받는 모습 따윈 보고 싶지 않다고!"

"아-니-다-냐! 아이돌을 나쁘게 말하지 마라냐-!"

 

안 좋은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몇년간의 노력이 한 순간에, 한 사람의 말에 물거품이 됐던 기억.
그때 우리 세자매가 모두 상처를 받았을테지만, 그 중에서도 우즈 언니가 가장 상처를 받았을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린 언니가 우즈 언니 과보호 모드인 것도 그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고...아니, 그냥 언니콘인걸지도 모르겠지만.

"...니까, 한번만 더 그러면 나도 화 낼거야?"

"네에-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정말로 오랜만에 린 언니에게 혼났다. 뭐. 혼날 일 한거 맞죠. 인정합니다. 그래도 린 언니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건지 이해해 줘서 그렇게 심하게 혼나진 않았지만.

혼나고 난 뒤, 소파에 누워 TV를 켜서 멍하니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음악 프로에서, 미쿠냥이라는 이름의 아이돌이 냥냥거리면서 춤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호라. 저게 그 미쿠냥이구나.

"...린 언니."

"왜, 미오?"

"저 미쿠냥, 마에카와 닮지 않았어?"

"...설마. 그 마에카와가 저렇게 헐벗고 컨셉잡고 놀리가 없잖아."

"...그렇겠지? 그렇게 믿어 주자구."

뭐, 일단은 잊기로 할까.
다음부터 마에카와 앞에서 아이돌 이야기는 하지 말기로 하고.

 


4.

"린 언니, 나 사버렸어! '후타바 안즈의 보들보들 우사쨩 배개'!"

미오는 가끔씩 충동구매를 한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럴때마다 그런 미오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역할은 전적으로 린이 맡는다.

"...아이돌 굿즈 같은 비싼거 사면 못쓴다? 그런거 다 이쁘장한 애들이 얼굴 팔이해서 비싸게 팔아먹으려는 상술이야."

"에이- 이정도면 가챠같은거 보단 훨씬 건전하지 않아?"

"...가챠쯤 되면 아예 사기 치는거 아냐? 하여간. 아이돌 산업같은건 누가 만든건지 원. 팬들 등골 빨아먹는 양심 없는 짓이라니까."

"린 언니, 그거 우리가 하면 안되는 소리인거 알지? 미카 언니도 아이돌인데."

"뭐 그렇긴 한데..."

"하여간 이 배개로 미오쨩은 안즈의 기분이 쳐되는거에요!"

저건 니나 라는 아이돌의 말투던가. TV 앞에서 우사쨩 배개를 배고 늘어져서는 TV 채널을 돌리고 있는 미오의 모습을 바라보며 린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이돌이란 뭘까."

 

"미오- 나 장 봐 왔어... 미오?"

저녁식사를 만들기 위해 린이 잠시 나갔다 오니, 미오가 왠지 배개를 껴안고 앉아서 웅크린 채 궁상을 떨고 있었다.

"미오? 왜 그래?"

"있지, 린 언니. 나 깜빡 졸았어."

"응? 배개 배고 있는 시점에서 졸거 같았는데..."

"꿈을 꿨어. 린 언니랑, 우즈 언니랑, 나랑. 셋이서 아이돌 하는 꿈을."

"...희안한 꿈이네."

"거기서 우리는 자매 사이도 아니었고... 셋이서 유닛을 하고 있었어."

"...응."

"그런데... 내가 첫 라이브 무대에 너무 기대했다가 실망해서... 아이돌 그만두겠다고 소리쳐 버리고... 언니들한테 폐를 끼쳐 버렸어."

"..."

"언니들도 있는데 내가 그런 소리나 하고... 나 진짜 나쁜 애야아아아아-"

"미오! 진정해! 그냥 꿈이잖아!"

"나같은 애는 리더도 아냐! 기껏 선생님이 리더로 뽑아줬었는데! 으아아아아!
...저녁 장 봐왔네? 정신좀 차려야겠어. 저녁 준비는 내가 할게."

...저정도로 기분 전환이 빠른것도 능력이다. 저녁거리를 들고 부엌으로 향하는 미오의 뒷모습을 보면서 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갑자기 저녁을 안 해도 되게 되니 할 일이 없다. 린은 우사쨩 배개를 배고 아까의 미오처럼 멍하니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언니- 린 언니- 밥 먹... 린 언니?"

저녁을 준비한 미오가 거실에 돌아오니, 이번엔 린이 배개를 껴안은 채 웅크린 상태에서 궁상을 떨고 있었다.

"...미오."

"응."

"꿈 속에서, 우리 자매 셋이서 아이돌 활동을 하고 있었어."

"...응."

"그런데, 너랑 내가 이런 저런 다양한 일을 하는동안 언니는 뒤쳐졌고... 그래서 언니가 아이돌 활동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다는 식의 말을 했어. 자기는 아직 아이돌이 되면 안되는 사람이었다고."

"...응."

"그런데... 내가 아이돌이 된 이유는 언니의 미소 때문이었어. 그런 언니가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니까 난 견딜수가 없어서...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래서 언니한테 큰소리를 쳐 버렸어."

"..."

"거기서 큰소리 치면 어쩌자는거야... 언니가 약해져 있는데 달래주진 못할 망정... 되려 미오 네가 언니를 보듬어 주고 있었고... 난 멍청이야아아아아. 꼴사나워어어어어어."

"지, 진정해 언니. 꿈이잖아?!"

"언니, 언니, 언니, 우즈키, 우즈키, 우즈키이이이이이!"

"정말로 진정해! 아직도 꿈에서 덜 깼잖아!"

 


그리고 다음날.

"...미오쨩, 린쨩."

"...우즈 언니?"/"우즈키 언니?"

"저, 저 배개를 배고 잤더니 꿈을 꿨어요."

"...응."/"...응."

"꿈속에서, 우리 셋이 아이돌이었어요."

"...응."/"...응."

"그런데,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두 사람을 따라잡을수가 없어서... 두 사람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데, 저만 저만의 빛나는걸 찾지를 못해서..."

"..."/"..."

"선생님은 제 장점이 미소라고 해 주셨는데... 그치만... 그치만... 미소는, 웃는건 누구라도 할 수 있잖아!"

"우즈키 언니?!"

"지, 진정해, 우즈언니!"

"아무것도 없어... 나에게는 아무것도...!"

"자, 잠깐! 꿈이야! 꿈일 뿐이니까!"

"근데 이 배개 뭐 있는거야? 이거 배고 잔 사람은 죄다 악몽밖에 안 꾸는데?!"

"버려! 내 돈 주고 산거지만 버려버려! 이런 흉흉한것 따위! 사라져라 니트의 망령! 찝찝한 기억과 함께!"

 


5.

"미호 언니, 우즈키 언니 무슨 일 있어?"

"으...응? 무슨 말일까나?"

"어제 보니까 언니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들어 오더라고. 무슨 일 있나 해서..."

"...역시 뭔가 숨기는건 못하는구나, 우즈키."

"그래서 말인데, 무슨 일 있어? 미호 언니라면 알거라고 생각해서 물어보는거야."

"...그 바보가. 숨길거면 좀 잘 숨길것이지. 잘 들어..."

 

시마무라가(家). 나와 미오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하아..."

"린 언니, 우리 어쩌지?"

"글쎄..."

"근데, 미호 언니가 말한 이사장이라는 인간, 우리 어릴때 꼬장부렸던 그 인간인거 확실해?"

"...내가 불려갔을때 본적 있어. 미시로재단 이사장이라더라."

"하필이면 그런 사람한테 서예부의 존망이 걸릴 줄은..."

그리고 또 한숨.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흐른다.

"...기분 안 좋네. 또 그날이 생각나 버렸어."

"진정해 린 언니. 구태여 그때 일 들춰낼 필요 없어."

"생각 안 나게 생겼어? 그때 가장 상처 받은건... 다름 아닌 미오, 너잖아."

"..."

 


우리는 어릴적부터 같이 서예를 했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건 아니라고 기억한다. 그냥 셋이 있는게 좋아서 하다 보니 계속 하게 되었던 거겠지.
이런말 하긴 그렇지만, 우리는 꽤 재능이 있는 애들이었다. 그래도 중학교까지는 적지 않은 수의 아이들이 서예를 했는데 거기서 셋이 나란히 학교 대표로 뽑일 정도였으니까.
우리의 글씨가 남들 앞에 걸렸다. 서예전시전의 자그마한 학생 코너였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 우리는 우쭐해진 상태였다.

"이 볼품없는 행서는 뭐지?"

그런 우리의 앞에서, 그 여자는 가차없이 미오의 글씨를 까내렸다.

"기초도 안되는 주제에 멋대로 멋부린 글씨지 않은가. 이런게 정말로 전시관에 걸릴 가치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나?
이 옆의 예서도, 썩 잘 쓴 글씨 같진 않군. 기교로 부족한 기본기를 덮으려고 하고 있어.
그리고 이 해서는... 너무 모범적이어서 재미가 없군. 맨날 같은걸 보고 베끼기라도 한건가?
이 행서가 가장 볼품 없지만, 셋 다 자격 미달이군. 우리 미시로재단의 명예를 걸고 하는 전시회에 이런 글씨따윈..."

"흑...흐윽..."

"미... 미오!"

미오는 아직 어렸다. 독설을 여과없이 전부 들어 버린 미오는 그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아직 어렸다.

"사과해!"

구체적으로는 상황 못 가리고 어른에게 대들정도로.

"뭘 사과하라는거지?"

"미오가 울고 있다고! 너무 심한말이라고 생각 안해?"

고백할게 있는데, 쿨하단 소리 듣는거 치고는 난 꽤 다혈질이다. 일단 욱하면 앞뒤 생각 안하고 행동하고 볼 정도로. 이런 면에서는 나도 미오랑 꽤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그 여자는 어린 나를 화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사실을 말한 것 뿐이다만? 왜 저 여자애가 울...아악?!"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 여자를 후려패고 있었다. 주먹에 감촉이 느껴지고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지만,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되려 황망해 하는 그 여자에게 당당하게 고함을 치고 있었다.

"당신이 뭘 알아! 미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맨날 웃으면서도 뒤에서는 얼마나 노력하는 애인데..."

"린쨩! 진정하세요!"

"...설마... 너희들이 쓴건가? 이건 고명한 서예가들의 전시전인데..."

"이사장님! 여긴 전시전에 마련된 학생 특별관입니다! 프로들의 자리가 아니라구요!"

"...!"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그것이 프로의 글씨라고 착각했던게 분명하다. 불운한 오해였다는 거겠지. 하지만 이미 어린 미오의 마음은 꺾인 상태였다.

"흑... 나 이제.. 서예 안할래..."

 


"그래서 미오, 넌 그 여자 용서할 수 있어?"

"기억이 없어서 그런데, 우리가 그 여자한테 사과 받았던가?"

"안 받았을걸."

"...그 뒤로 나랑 린 언니는 서예를 그만뒀지. 하지만 우즈키언니는 그만두지 않았어."

"...말 돌리는구나."

"...눈치 챘으면 굳이 언급하지 않기."

"그래. 하여간 그때 난 불려가서 한참을 혼나고, 그대로 욱해서 서예를 그만두겠다고 큰소리 치고 나와 버렸어. 너도 서예를 그만뒀지. 하지만 우즈키 언니만큼은 서예를 그만두지 않았어. 생각해 보면 우즈키 언니도 상처 받은건 마찬가지였을텐데."

"응. 그런데 그런 서예부가 다음주에 이사장이 시찰 올때 부원 5명이 없으면 해체란 말이지..."

잠깐 정적. 좀 고민하는거 같던 미오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린 언니. 원예부는 괜찮아?"

"원예부는 학교 인가 받았으니까 괜찮아. 네 사진부는?"

"사진부는 실적이 확실하거든. 학교에서 필요한 사진을 제공해 주기도 하고."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는거야?"

"응? 무슨 말이냐니?"

"갑자기 원예부 상황 물어보는게 괜히 하는 소린 아닐테고. 이 상황에서 괜히 물어본거라고 하지 마. 내가 아는 미오는 그런 애가 아니니까."

인정한다. 내가 생각해도 난 좀 직설적이다. 그래서 사람 사귀는게 어려운 거기도 하고. 미오의 그 뻔뻔함을 좀 본받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말해야겠어. 미오가 무슨 생각하는건지를 알아야 하니까.

"...우리가 좀 도와줄까? 우즈 언니 말야."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누워있던 내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 올라서 미오를 바라보았다.

"안 되잖아? 우리가 서예부 폐부를 막기위해 억지로 부원이 되면 상처 받을건 우즈키 언니라고 말한건, 다름아닌 미오 너였어."

미오도 덩달아 몸을 일으켰다. 일견 진지한 표정이 지나가는듯 했지만, 정말로 한 순간뿐. 미오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지나가는 말을 한다는 투로 내 질문에 대답했다.

"아니 그게, 몇년 지났으니까 이제 취미로 좀 글씨를 써 봐도 되지 않나- 해서."

"뭐야, 그런 변명을 하잔거?"

"그치만, 싫은건 아닐거 아냐? 린 언니도."

"당연히 그렇지만 미오 넌..."

미오에게 대답하려다 말문이 막혀 버렸다. 내 말을 듣는 미오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은 어딘가 슬퍼서...
...미오가 이런 표정도 지을수 있구나.

"괜찮아. 난 정말 괜찮으니까, 걱정 하지 않아줘도 돼. 우리 착한 린 언니."

"...미오. 약속 하나만 해."

"응? 뭔데?"

"무리하지 마."

"에이, 활기 넘치는게 내 장점이잖아! 걱정 하지 마, 린 언니."

...그래서 걱정인거야. 내 동생.

 


"린쨩, 미오쨩. 저 왔어... 에? 두분 다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아, 우즈키 언니 왔네. 미오랑 이야기하다 보니 생각이 나서 말야. 간만에 서예를 좀 해 보려고..."

"아아- 그치만 곤란하네- 안한지 너무 오래돼서 가물가물해-"

"아아- 어딘가에서 진득하게 해 볼만한 공간 없을까나-"

"음...아! 저기, 지금 서예 동아리에서 부원을 모집중인데..."

"(작전 성공이네.)"

"(이러면 우즈 언니도 자기 탓 하지 않을거야.)"

 


"너희... 우즈키 도와주려고 가입하는거지?"

...였는데, 미호 언니에게 바로 들켰습니다.

"헤헤. 왜 그렇게 생각하는걸까나, 미호 언니?"

"어떻게 알긴. 그냥 얼굴에 적혀 있는걸."

"음...그래? 그럼..."

"...하아. 뭘 어떻게 하겠단게 아냐. 그냥 그 바보가 복 받았다 싶어서 해 본 소리야. 이렇게 된 이상, 시찰 나올때는 부탁할게."

뭐 하여간, 미호 언니도 눈치는 주지만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어쨌건 동아리가 유지는 되는거니까.

 

하여간 이러저러해서 시찰날.

"흠. 이곳이 서예동아리인가."

"(왔다!)"

밉상으로 생긴 역삼각형 아줌마(실례)가 동아리실 안으로 들어 섰다. 나와 미오는 시선을 신경 안 쓰려고 했지만, 상대가 상대다 보니 신경을 안 쓸수가 없었다. 나는 먹을 가는 척 하면서 미오의 눈치를 봤다.

"(침착해 미오. 어차피 저쪽에서는 기억 못할거야.)"

"(응. 난 말끔해. 온전한 정신이야.)"

그 말대로, 미오는 표정 변화 하나 없는 평온한 상태였다. 물론 평소의 미오를 생각하면 저거 자체가 겉으로 꾸며내고 있는 태도라고 생각되지만, 본인이 그러겠다는데 말릴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리하지 말래도. 정말.

"(그래. 우리 둘만 침착하게 넘기면...)"

"에... 저, 저분은...?!"

"(...응?)"

미오가 조금 무리하는거 같지만 그래도 안심하고 글씨에 집중하려는데, 갑자기 우즈키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우즈키 언니의 눈이 흔들리고,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미미미미호쨩. 저, 저분이 이사장님인건가요...?"

"으, 으응. 그런데? 너 왜 그렇게 떨어?!"

...우즈키 언니는 몰랐던거구나. 그제서야 미오도 저 사람이 이사장이라는걸 내가 말하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실책이... 언니도 눈치 못 채고 있을거란걸 예상 했어야 하는데!
우리 세사람이 패닉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이사장은 동아리실을 둘러보며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근처에서 멈춰서서, 우리가 쓴 글씨를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

"..."

"...자네들."

"네, 네?"/"으응?"/"ㄴ, 네!"

"혹시, 예전에 학생 대표로 전시회에 나간적 있나?"

...들켰다. 그때에서 몇년이나 지났으니 안 들킬줄 알았는데. 어째서지. 어째서 들킨거야. 완벽한 작전이었잖아. 이사장한테 찍히면 이 동아리는 끝장인데!

"아, 저, 그, 그게..."

"네, 그렇습니다만?"

당황해서 바들바들 떨면서 대답하려는 우즈키 언니의 말을 끊고 퉁명스러운 미오의 대꾸가 들어찼다. 미, 미오?!

"그렇군. 혹시 글씨체를 보고 그렇지 않을까 생각은 했다만..."

"그래서요?"

미오는 이사장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역시 미오는 저 인간 아직 용서 안하고 있구나. 당연하겠지. 나같아도 어린 마음에 상처준 사람은 용서하기 힘들거다. 틀렸다. 미오도 냉정한 판단이 되지 않는 상황이야. 이제 어떻게...

"그땐 미안했다."

...응? 의외의 말에 고개를 들어 이사장을 보았다. 이사장은 우리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채로, 우리에게 사과를 구하고 있었다. 고개를...숙인다고?

"그때, 아이들에게 하면 안될 말을 했으면서, 정신이 없어서 사과를 못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만날 기회도 없었고. 너무 늦은 말이지만 이제라도 사과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가 용서 될런지 모르겠구나."

"..."

"..."

그리고 잠시동안의 정적. 우리 모두의 이목이 미오에게 집중되었다. 미오는 자신에게 집중된 이목도 신경쓰지 않고, 붓을 놀려 글씨를 써내려갔다. 어렸을때부터 미오 답다고 생각했던, 거침없는 붓놀림으로.

"...너무 늦었잖아요."

종이에 커다랗게 글씨를 다 쓰고는 미오는 대답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서 이사장을 바라보았다.

"너무 늦어서, 전부 잊어버렸어요. 누구시더라?"

그리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야말로 미오 다운 미소였다.

"...그렇군. 나는 미시로재단의 이사장이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저는 시마무라 미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미오의 미소는, 어딘가 의젓해 보였다.

 


"동아리가 문 안닫게 되었어요! 이게 전부 린쨩하고 미오쨩 덕분이에요!"

"종종 글씨 쓰고 싶으면 찾아갈게, 우즈 언니."

석양이 지는 거리. 집으로 가는 길. 나는 한걸음 뒤에 물러서서 우즈키 언니와 미오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쓴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미오, 정말로 용서한거야?'
'용서한게 아니야. 잊기로 한거야.'
'다른걸까?'
'다른거야, 아마도.'
가끔씩 미오는 내가 이해 못할 이야기를 할때가 있다. 평소의 유쾌한 미오와는 완전 딴판인 사람 같지만, 그 또한 미오인거겠지.
...어딘가 막내에게 밀리는 기분이 들어 언니로서의 위엄이 안 사는것 같지만...

"저기, 우즈 언니."

"응? 왜 그래요, 린쨩?"

"...우리가 서예를 관뒀을때, 어째서 언니는 서예를 계속 했던거야?"

미오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런 질문을 한다. 우즈키 언니는 멋적게 웃으며 뺨을 긁적거린다.

"음... 그게... 말하기 좀 부끄러운데..."

"괜찮아! 우리끼리인걸!"

"그게... 저희 셋, 서로 관심사도 다르고, 성격도 많이 다르잖아요? 그런데 서예할때만큼은 함께여서, 정말로 기뻤어요. 그래서... 제가 계속 서예를 하면 오늘처럼 다시 셋이서 함께 할 날이 오지 않을까...하고. 그러면 기쁠거다 싶어서..."

"우즈 언니..."

"헤헤. 그래도 오늘이라도 같이 했으니 소원 성취 했네요... 히엑? 린쨩?!"

"언니..."

어딘가 눈물이 나올거 같아서, 우즈키 언니를 양손으로 감싸고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미오도 나에게 질세라, 우즈키 언니를 꼬옥 안아주었다.

"응. 우즈 언니, 종종 찾아갈게."

"우즈키 언니... 여태 쓸쓸하지 않았어?"

"아니에요. 저 열심히 하는건 자신 있어서...헤헤헤."

"우즈 언니. 우리 언니..."

"우즈키 언니... 언니..."

"헤헤헤, 언니랍니다."

응. 내가 이래서 언니를 좋아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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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물 써보고 싶어서 끼적끼적.

근데 일상물은 써놓고도 이게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감이 안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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