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 관련 소재인데 사람에 따라 불쾌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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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7, 2018 05:03에 작성됨.

프레데리카는 프로듀서랑 러브스토리를 알콩달콩 쓰고 있었어요. 시키는 프로듀서를 짝사랑중이었고요. 그러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대형 사고가 납니다. 프로듀서가 프레데리카를 태운 채 운전을 하다가 차에 있던 결함 때문에 그만.


팔다리가 다 부러진 프로듀서와 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동료 아이돌에게는 휴가가 주어졌습니다. 수술 후 이 정도 수준으로 끝난게 다행이라고. 하마터면 팔다리를 아예 다시는 못 쓸 수도 있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과 함께.


휴가 이후론 대충 다시 프로덕션이 잘 돌아가고 있었어요. 프로듀서는 그 날 이후 충격으로 정신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상담만 받고 약은 곁에 있는 홈메이드 약사님한테 처방전만 가져와서 받아요.


사고 이후로 프로듀서는 한 가지 버릇이 생겼어요. 침대맡에 널부러진 빈 병들 사이에서 뻗어버리는 거였죠. 머리를 비우려면 알콜이 필요했으니까요. 시키는 늘 그랬듯이 프로듀서에게 약을 주려고 프로듀서의 집에 갔습니다.


시키는 또다시 널부러진 술병들을 보며 한숨을 쉽니다. 술 마시면 안된다고 말했는데. 그렇게 말했는데. 프로듀서의 손목엔 상처들이 한가득. 으응. 나는 아무것도 못 했구나. 프로듀서는 날 돌아봐주지 않겠지. 으응.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다고. 내가 피한거야. 


온갖 감정이 시키를 깔아뭉갭니다. 사랑과 죄책감과 소유욕과 슬픔. 자신을 봐주지 않는 프로듀서가 쓰러져있어요. 어찌 보면 기회였죠. 잔다기보다는 의식을 잃은 듯한 프로듀서를 보자 참을 수가 없던 시키는 프로듀서와 하룻밤을 보냅니다. 추하다. 이러면 미움받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멈추지 못해요.


눈을 뜬 프로듀서. 몸이 묘하게 따땃한데 옆을 보니 이게 누군가. 상황파악이 즉시 된 프로듀서의 속이 뒤틀립니다. 스스로에게 구역질이 나서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서 모든걸 게워냅니다. 프로듀서는 시키와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어요.


내가 문제다. 다 나 때문이야. 프로듀서도 시키의 마음은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자신의 마음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프레데리카가 프로듀서의 마음 속에 박혀버렸죠. 사랑이 프로듀서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어요. 


자신은 움직이지 못하니까.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럼 곁에 있기만 해도 매일 보이지 않게 서로를 할퀴게만 될 테니까. 그래서 떨어지고 싶었어요. 자신이 곁에 있으면 상처만 입히니까. 나같은 살인자 퇴물 프로듀서와는 다르게 시키는 앞날이 창창한 천재니까.


프로듀서는 시키가 너무나 필요했습니다. 시키마저 없으면 자신에겐 아무도 없으니까. 사랑만을 제외한 모든 마음을 모아서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습니다. 떠나는 것 밖에 못하는 자신이. 스스로 고립되는 자신이. 마음을 받아들여주지 못하는 자신이. 프로듀서는 뿌린 적 없던 독한 향수를 향수병이 으깨져라 뿌립니다.


다음날 시키가 출근하니 사무실엔 향수냄새만 가득했어요. 프로듀서. 향수를 뿌렸구나. 참 많이도 뿌렸구나. 코뼈가 부숴질 정도로. 내가 아무 냄새도 못 맡을 정도로.


오로지 시키만을 향한 축객령이나 다름이 없던 프로듀서의 행동. 시키도 거부당할거라고는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완강할 정도는 아닐 거라고. 향수로 냄새조차 맡지 못하게 할 거라곤 생각도 못 한거에요.


나는 네가 가장 갈망하는 것을 지워버렸다. 넌 내 냄새를 맡고 날 따르겠다고 했으니 나는 니가 생각하는 나의 존재의의를 지웠다. 나는 이치노세 시키라는 인간과의 첫번째 만남마저도 부정한다. 이렇게 받아들인 시키는 멘탈이 나가죠. 시키는 그날 있을 어떤 일정도 참가하지 못합니다. 


프로듀서는 시키가 그렇게 멘탈이 나갈 거라곤 생각을 못 했어요. 내가 뭔 짓을 한걸까. 내 상처만 생각하고 시키의 상처는 생각 안 한거구나. 프로듀서는 뭐라도 하기 위해 시키의 연구소로 달려갑니다.


시키의 연구소에는 케로신과 가솔린을 비롯한 인화성 물질이 가득합니다. 뭔가 잘못되면 적어도 건물 하나는 남아나지 않을 만큼. 시키는 초점없이 눈 앞에 널부러진 그런 물질들을 바라봅니다.


미안해. 나 프로듀서를 덮쳤어. 욕망에 허우적대면서. 하하. 그래서 미움받고 버림받았어. 이제 프로듀서는 영원히 프레쨩 꺼야. 난 떨어져나갔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뻗던 순간 문이 열립니다. 바로 자신을 버린 줄 알았던 프로듀서에요.


프로듀서는 아무 말도 없다가 한 마디를 꺼냅니다. 미안해. 그리고 온갖 자기고백이 이어집니다. 난 겁쟁이야. 널 상처입히기 싫어서 떠나고 싶었어. 널 미워하는게 아니야. 어찌보면 치졸한 변명이었지만 시키에겐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었습니다.


프로듀서의 진심어린 사과에 시키는 이번엔 프레쨩한테 다른 의미로 사과를 올립니다. 향수를 뿌릴 땐 언제고 니가 없으면 안 된다고 울먹거리는 프로듀서. 완전히 마음이 꺾인 채 내뱉은 뭐든 할게라는 말. 시키는 그럼 술부터 끊으라는 말을 쏘아붙입니다.


시키. 하고싶은거 다해. 난 괜찮으니까. 프로듀서는 그저 같이 있을수만 있다면 행복했습니다. 뭘 할 기력이 없어요. 그럴 동기도 없고. 자신감도 없고. 시키는 자신을 머릿속까지 파고들어가고. 사랑이 없는 포옹과 입맞춤에 끌려다니고. 메마른 채 상처투성이로 프로듀서를 끌고 다니는 시키는 스스로 갈라지고.


그리고 어느 날. 시키가 여느 때 처럼 프로듀서랑 마주봅니다. 차이점이라면 시키가 한 손을 뒤에 숨기고 있었다는 점. 약이야? 시키는 아무 말 없이 시험관을 프로듀서의 입에 들이밉니다. 재빠르게 시험관을 잡아채는 프로듀서. 무슨 약인지 안 말해줄 거야?


시키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침묵합니다. 하아. 나는 늘 무언가를 털어놓을만한 사람이 아니구나. 프로듀서는 한 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시험관 안의 내용물을 들이킵니다. 쓰고 아린 화학약품의 맛과 함께 프로듀서는 휘청거립니다.


프로듀서의 골절당한 팔은 유리가 되어 굳어있었습니다. 뻗어있긴 하지만 아무도 잡을 수 없도록. 사랑은 이제 없어요. 사랑이 있었는데 지나친 마음의 열기에 타서 증발한 지 오래에요. 이제는 열기에도 사라지지 않는 타르같은 집착만이 남았습니다. 새까맣고 끈적하고 이글거리는 집착.


시키는 약을 먹이고 프로듀서의 유리 팔을 부숴버릴 생각이에요. 내 손을 잡을 수 없다면, 다른 누군가한테 손을 뻗치지 못하게 하도록. 날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면 적어도 다른 사람은 바라볼 수 없도록.


마취약으로 암전하는 시야 속에서 프로듀서는 자신을 들춰맨 시키를 바라봅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뻗을 생각도 동기도 의욕도 없긴 했지만 모든 것을 허락해줘야 한다고 마음먹었으니 무엇이든 하게 해줄 생각으로. 시키는 그래도 프로듀서의 마음을 가져갈 수가 없지만요.


집착의 수렁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서로는 상처입히기만 하고, 어둠은 사라지지 않아요. 하지만 프로듀서와 시키는 서로가 빛과 화이트아웃 속에서 홀로 고립되는 것보단 둘이서 어둠 속에서 상처입고 고통받는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로듀서는 금주에 성공했고, 더이상 자해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키는 동료 아이돌의 죽음을 버티고 일어섰다는 말과 함께 인기가 절정을 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프로덕션은 승승장구중입니다.




요즘은 바빠서 글은 커녕 소재 정리할 시간도 없네요.


제게 이 소재를 살릴만한 필력이 있다면 참으로 좋을텐데. 근데 만약에 쓴다면 아랫판으로 가야할지도 고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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