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타루와 라플레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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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2, 2018 15:43에 작성됨.

호타루를 보면서 가장 생각나는 꽃은 라플레시아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라플레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이고 지독한 냄새가 나기로 유명하죠. 라플레시아는 꽃을 피우는 데 한달이 넘게 걸리지만, 그 꽃은 일주일만에 시들어버린다고 합니다.

제가 호타루를 떠올린 이유는 라플레시아의 꽃말 때문입니다. 바로 장대한 미와 순결이죠. 라플레시아는 다른 나무에 기생하면서 살아가고, 그 기생한 나무 위에서 한달이 넘게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꽃을 피우려고 분투하고, 꽃이 피어도 시체 썩는 냄새에 나비도 벌도 아닌 파리들만 잔뜩 꼬입니다. 그리고, 라플레시아는 일주일도 채 안되어 그 꽃마저 시들고 말죠.

그럼 어째서 라플레시아의 꽃말이 장대한 미와 순결이란 말입니까. 말만 들으면 꽃말을 지은 사람이 추악함을 아름다운 것으로 여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라플레시아엔 부정적인 말들만 잔뜩 붙어있습니다. 참으로 기구한 팔자가 아닐 수 없네요. 하지만 그 팔자만큼이나 삶도 참 파란만장합니다.

나무에 기생하여 살아갈 수밖엔 없는 나약함과, 피는데 한달이나 걸리는 긴 시간도, 시체 썩는 냄새가 나고 파리만이 꼬이는 추악함마저도, 피고 일주일만에 져버리는 덧없음까지. 그 모든것이 끝이 난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요. 새로운 라플레시아가 피어나고, 그 모든 부정을 반복합니다.

그렇기에 라플레시아의 꽃말이 장대한 미와 순결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까지 억척스럽게, 추하게, 비루하게 살고, 그것을 반복하면서도, 라플레시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라플레시아는 그 모든 과정을 반복해야 새 꽃을 피우고, 자신을 이어갑니다.

그 생명의 창조를 위해 결국 꼬이는것은 파리 뿐이지만, 그 파리가 모여서, 홀로 날아다니는 나비도, 벌집의 일벌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꽃가루를 옮깁니다. 자손을 셀 수 없이 많은 곳에 남깁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라플레시아는 살아남아야 했고, 결국엔 살아남습니다.

비록 그 과정이 아무리 더러워도, 그만큼 라플레시아의 궁극적인 결말은 숭고합니다. 바로 살아가는 것이죠. 그렇기에 꽃말을 장대한 미와 순결이라고 할 만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라플레시아의 삶이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게 만드는 것들 뿐이니 라플레시아가 아름다워지는 겁니다.

라플레시아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고 이제야 호타루 이야기를 하네요. 호타루가 소속했던 회사 세 개가 도산했다는 이야기는, 호타루라가 지금까지 세 개의 나무를 거쳐왔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요. 이제 갓 중학생이 되었고, 꽃을 피우지 못한 라플레시아. 나무는 그냥 꽃이겠거니 하고 라플레시아를 받아들였지만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346프로는 호타루를 감당할 수 있는 나무입니다. 뿌리가 깊게 박혀 흔들려 쓰러지지 않고, 잠식당한 것으로 무너지지 않을만큼 내부도 튼튼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프로듀서가 호타루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듀서는 호타루에게 마법을 부리려고 합니다. 늘 그랬듯이 여자아이한테 마법을 부려 유리구두를 신기고 무도회에서 모두의 선망을 받았던 신데렐라로 만들 겁니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지나갑니다. 호타루에 대한 입소문을 얼핏 들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꽃은 피지 않았으니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꽃이 피어납니다. 말이 안나올 만큼 아주 커다란 꽃입니다. 하지만 매혹적인 튤립이 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화려한 장미가 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요정이 마법을 부리니 탄생한 건 유리구두를 신긴 신데렐라가 아니었어요.

그 커다란 꽃을 보고, 사람들이 호타루를 보고 열광하지만, 만개한 라플레시아는 시체썩는 냄새가 납니다. 벌은 없고 파리만 잔뜩 꼬이기 시작합니다. 구역질이 나는 베게영업의 손길, 떨쳐낼 수록 집요해지는 악성 팬들과, 한가지 면만 부풀려서 그것을 아주 세상의 진리로 만들려는 기자들만 있습니다.

온 파리들이 호타루를 보려고 몰려들고, 나무는 냄새나고 파리떼가 창궐하게 됩니다. 몇몇 사람들도 호타루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프로듀서는 그래도 거기서 빛을 봅니다. 비록 냄새가 난다고 해도. 끌어들이는 것이 파리라 해도. 그 커다란 꽃을 홀로 피워냈고, 그 꽃에 다들 열광하니까요. 파리만이 온다고 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죠. 그 수가 엄청난데다가 아무도 불러오지 못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기에 프로듀서는 호타루에서 빛을 봅니다. 장미만 튤립만 꽃입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편헙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나요. 주변 사람들을 설득시키려고 해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호타루가 프로덕션에서 제일 큰 꽃이기에 일단은 그래도 좋게좋게 넘어가는 듯이 보이긴 합니다. 그런데 당사자는 그러지 못해요.

미안해요. 이제 전부 끝내버릴 거에요. 프로듀서. 고마워요. 나같은 사람의 감사라 미안하지만 고마워요. 하지만 나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어요. 그냥 내가 사라지면 전부 끝나는 일이에요. 호타루는 높은 옥상에서 자신을 찾아낸 프로듀서에게 감사의 말을 남깁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세요. 나는 알고 있다고요. 살고 싶잖아요. 고흐처럼 죽기 싫다고 말하라고요. 몸에서 썩은 냄새가 나고 파리가 꼬이니까 자기가 썩었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멀쩡한 귀를 도려내고 심장을 스스로 쏴버리는. 그런 죽음은 저도 싫어요. 호타루씨는 썩지 않았어요. 살아있다고요. 앞으로도 살 거에요.

그렇게 호타루는 살아남습니다. 냄새나는 꽃을 피우고 파리를 몰고 다니지만, 이는 얼마 가지 않습니다. 라플레시아가 피는 기간은 1주일정도니까요. 커다란 꽃이 활력과 생기를 잃을 때. 냄새도 파리도 사그라들어가고 나무 옆에 튤립과 장미만이 자라나기 시작할 때. 시들어가는 꽃은 질 때를 알고 스스로 나무에서 물러납니다.

아이돌 시절의 영광은 사라지고, 파리도 사라지고, 꽃은 무사히 시들었습니다. 호타루는 346프로라는 나무에서 시들어나가고, 또다른 나무에 새 씨앗을 뿌리며 다시 기댈 겁니다. 이번엔 얼마나 큰 꽃이 필까요. 어떤 불행이 찾아올까요. 새 나무는 호타루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호타루는 그래도 살아갈 겁니다. 장대한 미와 순결이라는 꽃말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위해서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글을 써도 호타루의 시그니쳐 꽃은 결국 백색 국화란건 안 변할 겁니다. 이름부터가 그러니까요. 초반에 라플레시아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에 반해 정작 호타루 이야기는 진부하네요. 글 잘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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