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누아르] 제작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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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8, 2017 18:37에 작성됨.

1) 영상화

 

 그 날은 모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 날. 한 남자가 침엽수림의 눈밭을 필사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한기 섞인 공기가 폐를 찌르고, 휑하니 부는 바람에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발이 눈에 푹푹 빠졌으며 그의 발자국 옆에서는 팔에서 흐른 피가 빨갛게 눈을 적셨다. 광활한 숲과 밤의 어둠이 추적자들로부터 지켜주고 있음에도 그는 수시로 뒤를 돌아봤다. 자신을 쫓는 특수경찰이란 자들이 얼마나 지독한 놈들인지 알고 있으니까.

 뒷세계 조직들에게 불법 무기를 공급한 것이 남자의 죄목이었다. 딱히 권력이 높은 것도 아닌 어디까지나 중간관리자 포지션. 위에서 내려오는 돈을 몰래 빼돌려 재미를 보았으나 딱 한 번 일을 너무 대담히 저지른 게 화근이었다. 돈을 세탁하기 위해 유령회사 하나를 사들인 것은 좋으나 한 번에 옮기는 액수가 너무 많았다.

 꼬리가 길면 당연히 잡히는 법. 특수경찰들은 꼬리뼈째로 잘근잘근 씹어 먹으며 조직을 추적했다. 이미 상부는 괴멸상태. 남자는 간신히 빈민가에 숨어들었으나 특수경찰들은 집요하게 쫓아왔다. 결국 부하들까지 버리고 왕국 북쪽까지 도망쳐 다다른 것이 여기. 이곳이 남자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남자는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어이없게도 이런 상황에서조차 담배가 고팠다. 아니지. 이런 상황이니까 더욱 피우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지칠 대로 지쳐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휴식이 필요했다.

 한 모금, 딱 한 모금만 빨자. 속으로 되뇌며 남자는 라이터를 꺼냈다. 손바닥으로 조심히 가린 채 불을 켜고 입에 문 담배로 가져갔다.

 그 때, 심상찮은 바람이 숲을 몰아쳤다. 손바닥으로 가린 것도 무의미하게 불이 꺼지고 당황한 남자는 담배를 떨어뜨렸다. 어디 떨어진 거지? 남자는 어둠속을 더듬었다. 때마침 구름이 걷히고 달이 드러났다. 어스름한 빛이 스며들자 하얀 눈들이 빛을 반사해 조금이지만 주위가 밝아졌다. 덕분에 담배를 찾아 기뻐하면서 고개를 들자 남자는 매서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무리와 마주쳤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기척조차 느끼지 못 하고 이렇게 붙잡히다니. 떨지도 못 하고 남자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간신히 눈을 굴려 그들의 행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추위에서도 따뜻해 보이는 두꺼운 털옷, 얼굴을 가린 마스크, 한손에 들고 있는 총, 마치 늑대와 같은 눈. 남자는 조금 안심했다. 이들은 경찰이 아니다. 어딜 봐도 특수경찰임을 나타내는 별문양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여기가 늑대굴 입니까?”

 남자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자경단이군요. 개처럼 납작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전 지금 쫓기고 있습니다!

 “경찰들을 피해 여기까지 왔어요! 여긴 놈들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제발 숨겨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보답은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도망치면서도 끝까지 금괴 하나를 챙겨왔거든요! 이 가방 안에 들어있는데…….”

 잠깐. 무리의 리더가 말을 끊었다. 남자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리더는 마스크를 벗어 얼굴을 드러냈다. 위로 솟구친 리젠트 헤어, 날카로운 눈빛, 꽤 잘생긴 미남으로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여자였다.

 정정하고 싶은 게 있는데. 여자가 뻐근한 몸을 풀며 말했다.

 “여긴 ‘늑대굴’이 아니라 ‘화이트 타운’이야. 딱히 싫어하는 이름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정식 명칭으로 불러줬으면 해.”

 “죄, 죄송합니다. 여길 소개해준 사람들이 다 그렇게 불러서.”

 “확인을 좀 하겠어. 경찰에게 쫓기고 있다 했지? 그럼 넌 범죄자인가?”

 “그게……. 맞긴 하지만, 이젠 그런 일은 질려버려서요.”

 “됐어, 그럼. 도와줄 생각 없어. 돌아가자!”

 자, 잠깐만요! 남자는 여자의 발목을 잡았다. 이렇게 가버리면 안 된다, 제발 도와 달라, 사례는 얼마든지 하겠다. 추하게 매달리다 눈물까지 터뜨렸다. 여자가 돌아보자 부하가 말했다. 나츠키 단장, 얼른 가죠. 나츠키라 불린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잠시 동안 남자를 바라보다 자신이 가진 구급용품을 던져주었다. 그 상처라도 치료해.

 “미안하지만 마을을 위해서라도 널 도와줘서는 안 돼. 특수경찰이 쫓아오고 있으니까.”

 “제발 도와주세요! 원하신다면 금괴를 더 드리겠습니다! 이대로 잡혀가기 싫어요! 도와줘! 도와달라고! 이 개자식들아!”

 남자는 권총을 꺼내 나츠키를 겨눴다. 그 순간 나츠키의 샷건도 남자를 겨누고 일말의 자비 없이 쏴버렸다.

 사방에 피와 총성이 튀었다. 워낙 순식간이라 부하들도 조금 놀랐으나 이내 익숙하게 남자의 시신을 나무에 눕혀줬다. 자리를 떠나려는데 또 다른 무리가 황급히 달려왔다. 별문양이 박힌 겨울용 제복. 특수경찰이었다.

 그들은 물어볼 것도 없이 상황을 파악했다. 역시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나츠키의 앞에 섰다.

 “또 멋대로 범죄자를 죽이셨군요.”

 “저쪽이 먼저 총을 들었어. 정당방위였다고.”

 “범죄자라도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자꾸 이러시면 곤란해요.”

 “그럼 애초에 우리 영역에 발들이지 않게 했어야지. 이 녀석이 혹시라도 마을 안에 들어오면 어쩌라고 살려두라는 거야. 우리도 바깥일에 상관하고 싶지 않아.”

 상관하고 싶지 않다……. 경찰이 비꼬는 어조를 입에 물었다. 얼마 전에 그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범죄조직 스베르흐노비의 보스와 측근들이 북쪽으로 왔다더군요. 우리 특수경찰에서 재빨리 추적했는데, 기차를 타고 화이트 타운 안으로 들어간 뒤로 행방이 묘연하답니다. 혹시 당신들이 숨겨주고 있다거나…….”

 “그쪽들이 무능한 일을 우리 탓으로 돌리지 말았으면 해.”

 “나츠키 씨. 우리는 지금까지 화이트 타운의 규격 외 행동들을 굉장히 많이 봐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베르흐노비가 관련됐다면 이야기가 다르죠. 놈들과 우리 사이에 조만간 큰 충돌이 벌어질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아무리 당신들이라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뭐라고! 자경단원들이 고함을 쳤다. 대놓고 이를 드러내지 않았을 뿐 저들은 명백한 도발을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총을 쏠 기세로 달려들자 특수경찰들도 대응하려 했다.

 그 때 다시 한 번 총성이 울렸다. 순간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나츠키의 샷건이 허공을 향해 있었다. 그녀는 부하들과 특수경찰들을 번갈아 쏘아봤다.

 “잘 들어. 화이트 타운은 경찰이 아닌 자경단이 지킨다. 이건 어린 애들도 아는 상식이야. 그 누구도 우리 마을에서 멋대로 행동할 수 없어.”

 “아니요. 화이트 타운도 결국 왕국의 일부입니다. 당신들이 범죄자를 감싼다면, 우리는 이 눈을 밀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잡을 겁니다!”

 “그럼 해보시지! 충돌? 무사하지 못해? 그 딴 건 밖에서나 통용되는 말이야! 세상 모든 것을 적으로 돌린다 해도 마을은 지킨다! 너희는 이 바람을 뚫지 못 해! 다시 한 번 말하지! 여긴 화이트 타운이다!”

 

 

2) 설정

 

자경단

화이트 타운을 외부로부터 지키는 자경단. 혹한의 지형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움직임과 완벽한 통솔 아래 발휘되는 전투력 덕에 '늑대 무리'라고도 물린다. 원래는 마을의 사냥꾼들이었으나, 뒷산의 자원을 노리고 몰려든 범죄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자경단을 결성했다. 현재는 사냥꾼 세대는 거의 은퇴하거나 죽은 상황. 그 뜻과 힘을 이은 젊은 세대들이 새롭게 이끌어 나가고 있다. 마을 보호 외에도 외부로부터의 물자 조달 등의 일도 도맡아 하는 등 화이트 타운에서 더 이상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 되었다.

 

'자경단장' 나츠키

화이트 타운 출신으로 자경단의 현 단장. 고향을 싫어하진 않았으나 마을 안에만 있는 것을 답답히 여겨 바깥으로 나갔었다. 같이 마을을 나온 아키와는 잠시 헤어져 밴드를 결성,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그럭저럭 괜찮은 생활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 마을에서는 알 수 없던 바깥의 범죄, 죽어가는 빈민들, 싸움을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 세상살이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했다. 그래서 마을이 외부세력에 의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위험을 무릅쓰고 마을로 돌아갔다. 자신의 고향에 바깥의 더러움을 묻힐 수는 없었으니까. 전투력은 평균 수준이었으나 흔치 않은 카리스마로 위기 때마다 큰 도움이 되었다. 후에는 싸움 끝에 전투력도 성장, 전 단장의 은퇴 후 모두의 인정을 받아 새로운 단장이 되었다.

 

 

3) 기획 단계

 

스페이드P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요. 네?"

스페이드P "갑자기 우리 아이돌들 관련 루머성 기사들이 우르르 뜨는 건 어째서일까요, 언니."

 

치히로 "정치적인 외압이에요. 우리를 보는 시선이 그렇게 곱지 않거든요."

치히로 "단편 드라마로 만들었을 때 민감한 사회 비판적 요소들이 많이 나와서요."

치히로 "연예계는 원래부터 그런 쪽이랑 연관이 많잖아요. 야쿠자라던지."

치히로 "전에는 대형 소속사에서 압박하더니 이제는...... 머리 아프네요."

치히로 "그리고 별 건 아니지만 우리 동갑이에요."

 

스페이드P "아이돌들 이미지 훼손으로 초장부터 기세를 꺾는 건가. 직접적으로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치졸한 압박이라."

스페아드P "딱 야쿠자들 하는 짓이네. 소속사 측에서 일일이 대응하는 건 힘들겠죠?"

 

치히로 "안 그래도 클로버 팀장님이랑 가을P는 그거 때문에 바빠요."

스페이드P "네. 업무를 못해 먹을 수준이더라고요. 흐음......"

치히로 "이 정도 경고면 사실상 제작 취소를 해야 될 수준이에요."

스페이드P "큰일이네요. 우리 작품은 퀄리티를 위해 100% 사전 제작을 할 건데."

치히로 "뭔가 뾰족한 수가 없으려나......"

스페이드P "어디. 인터넷에서 얼마나 난리가 났는지 볼까요...... 어라?"

치히로 "왜 그래요?"

스페이드P "인터넷이 다른 쪽으로 난리가 났네요."

 

스페이드P "갑자기 정치 비리 관련 스캔들이 우르르 터졌어요."

스페이드P "그로 인해 경찰들이 무지하게 바빠졌다고도 하고......"

스페이드P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치히로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나쁜 일은 아니에요."

치히로 "여론의 관심이 다른 쪽으로 쏠리면 이런 경고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치히로 "다행이다...... 정말 행운이네요."

 

스페이드P "...... 행운이라. 아."

치히로 "왜 그러세요?"

스페이드P "아뇨. 아무것도."

 

스페이드P '이 정도면 재앙이라 불릴만도 하네.' 키득

 

 

10분 전

 

여름P "어, 나야. 지금 당장 착수할 작업이 있어."

여름P "내가 모아놓은 비리 관련 자료들 말인데. 일본이랑 관련 된 거 방출해."

 

카코 "오랜만이에요, 사장님. 네? 무슨 일이기는요♪"

카코 "제가 스폰하는 회사에 전화도 못 하나요. 그냥 선물 좀 드리려는 거예요."

카코 "괜찮은 기사거리들이 많이 생겼는데, 그 정보들을 미리 드리려고요."

 

여름P "정치, 경제, 사회. 분야 가릴 거 없이 핵폭탄을 날리라고."

여름P "오늘 하루 동안 인터넷에 연예인들 이름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카코 "아이돌 기사요? 그런 루머들은 언제나 나오는 것들 아닌가요?"

카코 "팩트 체크도 되지 않은 그저 그런 정보를 다루면 안 되죠. 시간 낭비예요."

카코 "언론의 기능은 바로 진실을 올바르게 전하는 것. 전 그렇게 생각해요."

카코 "그러니까 사장님의 회사를 믿고 제가 지원하는 거죠."

 

여름P "아. 그리고 포털 사이트 쪽에도 전화 해서 내 말 좀 전해."

여름P "개수작 버리다 걸리면 본사에 대형 화재 터질 거니까 묵묵히 일이나 하라고."

여름P "너무 과하지도, 미지근하지도 않게 그냥 평범하게 처리하라 그래."

 

여름P "이건 경고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경고."

카코 "몇몇 의원 분들과 인터뷰도 잡아드릴게요. 제가 얘기 하면 안 만날 수 없을 거예요."

여름P "이 회사는 그 누구도 손 대지 못 한다고 이번 기회에 확실히 공표하자고."

카코 "고맙기는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지킬 뿐인 걸요."

여름P "알았으면 이제 전화 끊고 신속하게 움직여라."

카코 "저야 말로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세요, 사장님♪"

 

뚝-

 

여름P "너랑 바로 얘기가 통해서 다행이야."

카코 "저야 말로 여름P가 먼저 전화 걸어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름P "외압에 굴하지 않는 마을 이야기를 쓰는 중이잖아."

여름P "그런데 우리가 외압에 굴하면 안 되지."

 

카코 "간만에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기분이 좋네요."

카코 "아직 안 끝났지만."

 

뚜르르르-

달칵

 

여름P/카코 "나야. / 카코랍니다♪"

 

 

 

 

 

 

 

 

 

 

우리가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일들 뒤에는 어쩌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근데 샷건 들고 있는 나츠키 완전 멋있을 것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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