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누아르] - 각본을 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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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3, 2017 00:42에 작성됨.

1) 영상화

 

 이 세계에는 ‘초인’이라 불리는 자들이 있다.

 

*

 

 키 작은 여자가 복도를 걸었다.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복도 벽이며 바닥이며 피가 튀지 않은 곳이 없지만 죽은 사람도 없었다.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단체로 나동그라져 있는 모습이라니. 호러틱하면서도 난잡한 광경이었다. 그 와중에 아파서 소리 지를 힘도 없는 녀석도 있었다. 그곳에서 쓰러진 괴한들을 피해 터덜터덜 걷는 여자의 모습은 언밸런스하기까지 했다.

 보기에는 중학생 수준으로 작은 신장, 젊어 보이다 못해 어린 얼굴. 누가 봐도 어린애 같지만 그녀는 자기 몸매에 굉장한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 가슴은 꽤 컸다. 하지만 어깨가 쑤신다면서 손으로 두드리는 행위에는 영락없이 나이가 반영되고 있었다. 뻐근하다, 뻐근해. 피곤함을 달래며 그녀는 복도 끝 문 앞에 섰다.

 문고리를 돌리자 턱, 하고 걸리는 소리가 났다. 여자는 힘을 줘서 강제로 문을 뜯어냈다. 종이짝처럼 뜯긴 철제문을 던지고 여자는 방 안에서 떨고 있는 남자와 마주했다. 오랜만이야. 반갑지 않은 인사를 건네자 남자가 침을 삼켰다.

 “오랜만이군. ‘투견’ 녀석.”

 “사나에야.”

 여자가 정정했다. 카타기리 사나에, 그게 내 이름이야.

 

 투견장. 개들을 싸움 붙여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시설. 여기서 개는 보통 노예로 붙잡힌 인간을 말한다. 즉, 콜로세움의 검투사들과 비슷하나 개들은 그들보다 훨씬 못한 대우를 받고, 훨씬 처절한 싸움을 한다. 그런 자극적인 모습이 꿈도 희망도 없는 빈민가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는다. 가족들 생활비를 바쳐 돈을 거는 놈, 사람을 잡아다 개로 팔아넘긴 놈, 시시한 볼거리로는 만족할 수 없어 막장까지 온 놈. 다양한 인간군상이 모여 승자에겐 환호를, 패자에겐 야유와 욕설과 증오와 갈 곳 없는 분노를 보낸다.

 당연히 불법이지만 빈민가에서 이 정도 범죄는 문제도 아닌데다, 밝은 세계에서 볼 수 없는 스포츠에 몇몇 귀족들도 관심을 보이는지라 모두 쉬쉬하고 넘어가고 있다. 또한 귀족들에겐 경기를 구경하고 돈을 거는 빈민들의 모습도 괜찮은 구경거리다. 그래서 주최측에서는 귀족들을 위해 경기를 조작하고, 절망하는 빈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나에는 몇 년 전까지 이곳의 개였다. 최강의 개 ‘투견’이라 불렸고 누구도 대적할 자가 없었다. 그녀만을 위한 룰로 여럿이 합심해 그녀에게 덤비는 경기도 있을 정도였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지금 특수경찰 전투복을 입고 자신에게 목줄을 채운 남자에게 돌아왔다.

 “밖에 내 동료들이 쫙 깔렸어. 난 혼자 돌격해서 먼저 들어왔고. 왜 그런 줄 알아?”

 사나에가 발을 딛었다.

 그 순간 방 안에 숨어 있던 괴한들이 튀어나와 사나에를 공격했다. 쇠파이프가 뒤통수를 후려치고, 칼이 허벅지를 찔렀다. 하지만 사나에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뒤통수 친 놈의 얼굴을 한손으로 잡아 구겨버리고, 놈의 일행들에게 던졌다. 부딪쳐서 몇 놈이 나가떨어진 사이 나머지 놈들을 정리했다. 주먹을 날리자 뼈가 우득, 부러지고, 몇 미터를 날아가 구석에 처박혔다. 정신을 차린 녀석들이 덤벼들었지만 한 대씩 명치를 박살내가 복도에 널부러진 놈들과 같은 꼴이 됐다.

 이 세계에는 초인이라 불리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육체는 인간을 넘어서 병기의 레벨에 이르렀으며, 대부분 괴물 취급을 받는다. 사나에도 그 중에 하나. 순식간에 열 명을 쓰러뜨리고도 그녀는 어깨 통증을 조금 거슬려했을 뿐이었다.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야 허벅지의 칼을 뽑고, 뒤통수에서 흐르는 따뜻한 액체를 만졌다. 살짝 따끔한 감각이 일었다. 머리 감을 때 귀찮겠네. 작은 불만을 중얼거리고 하얗게 질린 남자에게 다가갔다.

 “쟤네 포함해서 네 개들은 다 박살냈어. 박살냈지만, 죽이지는 않았지. 불쌍하잖아. 원해서 투견장 들어온 놈이 얼마나 된다고. 이게 다 사람을 돈벌이, 짐승으로 밖에 안 여기는 놈들 때문인데. 그래. 바로 너 같은 놈 말이야.”

 피 묻은 칼을 번쩍 들었다. 남자가 눈 깜빡할 새도 없이 칼을 찍어 내렸다. 쾅, 소리를 덮는 비명이 터졌으나 남자는 금방 깨달았다.

 아프지 않아. 피도 안 나. 칼은 남자의 얼굴 옆 벽에 박혀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곤죽으로 만들어서 네가 개 취급한 사람들에게 던져주고 싶어. 근데 나도 명색이 경찰이고, 지금 생활이 마음에 들고, 투견이 아니라 사나에니까,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다.”

 철그덕, 하고 수갑이 바닥에 떨어졌다.

 “네가 알아서 차. 언니가 베푸는 자비다.”

 

 

2) 설정

 

초인

인간을 뛰어넘은 힘을 지니는 인간. 맨손으로도 훈련 받은 비초인 백 명을 잡을 수 있으며, 콘크리트 벽을 부수고 칼에 찔려도 멀쩡하게 움직이는 등 몸 자체가 무기나 다름 없다. 극한의 상황에 몰린 인간이 살기 위해 한계를 넘어서면서 드물게 발현된다. 초인 안에서도 급이 나뉘고, 비초인이라도 두뇌와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초인을 이길 수 있다.

 

'투견' 사나에

빈민가의 투견장에서 최강으로 인정 받은 '투견'이자 현 특수경찰 소속 경찰. 직위는 팀장. 본래 일반경찰이었으나 범죄자를 쫓던 중 부패한 상층부에게 배신 당해 좌천, 쫓기던 범죄자의 복수로 납치 당해 투견장으로 끌려갔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과거도 이름도 잊고 처절하게 싸움을 벌였다. 그러던 중에 자연히 초인으로 각성. 무패를 기록하며 수많은 빈민들에게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귀족이 마음에 들어했던 개를 이겼다는 이유로 투견장에서 버려지고, 살인 누명을 쓴 뒤 도망자 신세가 된다. 끝까지 저항하려 했으나 특수경찰에서 체포, 삶을 포기했을 때 특수경찰에서 그녀의 과거 기록을 찾아낸 덕에 누명을 벗는다. 덕분에 바닥으로 떨어졌던 경찰에 대한 믿음이 조금은 돌아왔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상부는 끈질긴 설득을 한 끝에 그녀는 투견이 아닌 특수경찰 사나에로서 범죄와의 싸움에 복귀한다.

 

 

3) 기획 단계

 

가을P "...... 나쁘진 않은데, 갑자기 초인이라니. 뜬금 없지 않아?"

가을P "이거 원래 본격적인 누아르물이었는데. 겨울이가 싫어하지 않을까?"

 

스페이드P "저 하고픈 대로 만들라 그래서 하고픈 대로 만든 겁니다."

스페이드P "전문 배우들 써서 만드는 드라마였으면 저도 이러진 않았죠. 작품성이 그쪽이 더 좋을 테고."

스페이드P "그런데 현실적인 이유에 부딪치게 되더라고요."

 

가을P "현실적인 이유?"

스페이드P "이 작품은 근본적으로 아이돌물이에요."

가을P "아하."

 

스페이드P "이 프로젝트는 우리 회사 이름 걸고 진행하는 거라 반드시 아이돌이 나와야 해요."

스페이드P "근데 우리 회사 아이돌들은 개성이 튀어도 너무 튀어요. 전문성을 강요하다간 오히려 문제 생길지도 모르죠."

스페이드P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초인이라는 설정을 통해 오락성을 높이고 세계관의 확장을 노리는 겁니다."

 

가을P "판타지가 되는 건가."

스페이드P "수위도 좀 조절해야죠. 어려운 작업이 될 거예요."

가을P "기존의 누아르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스페이드P "그래서 백야...... 겨울 녀석이 절 부른 겁니다."

 

스페이드P "배우 지망생 시절에 직접 각본도 써보고 촬영장 알바 뛰며 연출도 배웠거든요,"

스페이드P "삼류 작가보다는 훨씬 나은 작품을 쓸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가을P "믿음직한데. 란코랑 아스카를 맡기길 잘했어."

스페이드P "저도 그 애들 덕에 즐거운 회사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스페이드P "그럼...... 오늘은 밤샘인가요?"

가을P "이번 주 내내 철야일 거다."

스페이드P "끝내주는 구만."

 

 

 

 

 

 

 

 

 

 

예전 만큼 딥다크한 내용을 쓰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사실 너무 딥다크한 내용을 쓰는 것도 지쳐서 이게 좋은 것 같기도 합니다.

차피 초인이라는 설정은 예전부터 있던 것이고, 단지 이번에는 '왜 이런 설정이 생겼나?'라는 당위성을 부여했을 뿐.

여기서는 스페이드P가 쉽게 해결한 것처럼 나오지만, 사실 작품성과 오락성은 굉장히 심오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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