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P) 아이돌 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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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2, 2017 23:38에 작성됨.

겨울P

 

(링크와 이어짐)

 

 

1) 스베르흐노비сверхновый

 

 저택의 문이 열리자 검은 양복을 입은 조직원들이 정렬해 있었다. 마치 성경에서 모세가 갈랐다는 바다처럼. 험악해 보이면서도 절제된 분위기, 폭력과 품위라는 상반된 개념이 뒤섞인 바다를 그녀는 자연스레 걸었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에는 강인한 권위가 담겨 있어 뚜벅, 뚜벅 소리가 날 때마다 조직원들은 어깨에 찌릿한 감각을 느꼈다.

 몇몇은 힐끔거리는 시선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려했다. 모자에 가려 온전한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데도 알 수 있을 만큼 그녀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매력에 홀릴 뻔하다가도 모자 아래 감춰진 날카로운 눈빛에 스치는 순간 소름 돋는 한기를 느끼고 깨닫게 된다. 이곳은 바다가 아니라 설원이며, 그녀는 이 설원의 지배자라는 사실을.

 얼어붙은 조직원들을 뒤로 하고 그녀는 복도를 걸었다. 회의실이 보이자 그 문 앞을 지키던 조직원들이 보고를 했다. 두 분 다 이미 와 계십니다, ‘보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짧은 머리칼에 밝은 인상을 한 여자와 와인처럼 붉고 긴 머리칼에 고양이상을 한 여자가 그녀를 반겼다.

 묵직한 문이 닫힘과 동시에 보스라고 불린 그녀는 모자를 벗었다. 그것을 스위치로 굳어 있던 표정이 녹듯이 변했다. 방금 전 여자와 동일인물이라고 보기 힘든 그녀, 아나스타샤는 마치 소녀 같은 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보고 싶었어요. 미오, 시키.”

 두 사람이 인사를 받았다.

 “나도 보고 싶었어! 아냐!”

 짧은 머리의 여자, 혼다 미오가 아나스타샤를 와락 안았다. 아나스타샤도 굉장히 편안한 얼굴로 그녀에게 안겼다.

 “요즘 자주 못 와서 미안. 요즘 구역 관리하기 바빠 가지고. 혼자서 힘들었지?”

 “괜찮아요. Спасибо(고마워요), 미오. 덕분에 거리가 더 안전해졌어요. 아, 시키도 마찬가지예요.”

 붉은 머리칼의 여자, 이치노세 시키가 손을 흔들었다. 냐하.

 “배려는 고맙지만, 안타깝게도 시키냥은 이번에 칭찬 못 받을 것 같은 걸. 오늘 모인 거 그 일 때문이잖아? 그치?”

 아나스타샤와 미오가 조용해졌다. 둘 다 자리에 앉아 좀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면에 폐허의 사진과 그곳에서 부상당한 조직원들, 피해규모를 수치화한 그래프 등이 나타났다.

 스베르흐노비сверхновый. 뜻은 초신성. 그녀들이 이끄는 마피아 조직의 이름이다. 규모는 전국 최대, 비공식적으로 재계와 정치계 등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름으로 보호 받고 있는 마을들이 수십 개나 있었다. 화면에 나온 폐허는 그 중 하나. 이치노세 시키의 관리 구역 중에 하나로 얼마 전 특수경찰이라 불리는 조직에게 공격당해 현재는 파괴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구역은 보급지대. 무기나 식량 등의 보급품을 관리하며 전국의 조직에게 보내는 요충지로 다행히 민간인이 거주하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한 조직의 피해는 상당하였다. 그것도 조직의 최고 간부인 시키가 저지른 실책. 경제적 피해를 넘어서 스베르흐노비의 기둥 중 하나가 무너졌다. 아무리 나라도, 오히려 나니까 문책이 있을 것이다, 라는 게 시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모든 피해 자료를 보여준 뒤 아나스타샤가 말한 것은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조직 안에 경찰 스파이가 있는 것 같아요.”

 미오와 시키가 움찔했다.

 “보급 물자를 보내는 시간, 그 경로, 경호대의 취약한 부분. 이번 경찰의 공격은 세 가지를 완벽히 노려서 이루어졌어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와 비슷하게 허를 찔려 공격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고요. 그 때는 그저 경찰이 치밀하다고 생각했지만…… 시키까지 당한 이상 의심 가는 건 하나 밖에 없어요.”

 시키가 입술을 핥았다.

 “그래서 우리만 불렀구나. 간부회의에 징계위원회까지 화려하게 반겨줄 줄 알았는데, 이상하다 했어.”

 “다른 간부들은 못 믿어요. 보급지의 정보를 빼낼 정도면 일반조직원으로는 불가능하니까. 그리고 얘기는 또 하나 있어요.”

 화면을 넘기는 버튼을 앞에 두고 아나스타샤는 망설였다. 괴로움을 삼키는 게 역력한 모습에 미오는 의아해했다. 아냐? 버튼이 눌리고 화면에 나타난 것은 마약이었다. 미오는 놀랐지만 시키는 의연한 태도였다.

 아나스타샤가 말을 이었다.

 “습격당한 보급 창고를 정리하다 발견된 물건이에요. 이거에 대해 설명이 필요해요, 시키.”

 미오의 시선이 바쁘게 움직였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긴장감이었지만 ‘그럴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미오에게도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향한 진한 의심의 냄새를 맡고 시키가 입을 열었다.

 “아냐는 나를 의심하고 있구나.”

 “우리가 지향하는 건 혼란이 아닌 평화예요. 거기서 마약은 당연히 금지고요. 다시 말할게요. 설명해주세요, 시키.”

 “그러니까 의심하는 거잖아. 내 구역에서 마약이 나왔고, 이 조직에서 내가 하는 일은 그렇고 그런 일이고. 이거 어쩌지. 시키냥 좀 상처 받았는데. 우리가 겨우 이런 일로 흔들릴 사이였을 줄은…….”

 “설명하세요!”

 쾅, 하고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에 미오가 움찔했다. 급하게 시키를 살폈지만 그녀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설명하면 어쩌게? 믿을 거야? 아니면 안 믿을 거야? 내가 어떤 대답을 하길 원하는 거야? 응? 확신이 없으면 나도 확신을 주지 못하지. 예를 들자면, 그래. 내가 범인이라고 밝혀졌을 때.”

 ‘보스’가 직접 나를 쏜다는, 그런 확신.

 아나스타샤의 눈이 떨렸다. 동시에 미오가 소리쳤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시키냥. 진심으로 그런 소리하는 거 아닐 거라고 믿을게.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얼른 설명해. ‘아냐’에게.”

 날이 선 말이었지만 오히려 분위기가 풀렸다. 시키의 입가에 미소가 돌더니 아나스타샤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떼어주었다.

 “나도 몰랐던 일이야. 부하들이 얼마 전에 잡은 마약 조직에서 빼돌렸나 봐. 자기들끼리 쓰려고 했겠지. 양도 적고, 자기들끼리 유통 루트를 확보할 수 있을 리도 없잖아. 그리고 애초에 마약은 꽉 잡고 있는 조직들이 있어서 소규모 판매해봤자 이익이 안 나와. 이 사실들을 내가 모를 리 없고, 보고 받은 아냐도 모를 리 없지. 그러니까 아냐.”

 시키가 은근한 음색을 냈다.

 “의심하기 싫으면 그러지 않아도 돼. 아냐가 힘들어 하는 거, 난 재미없어.”

 “맞아. 우리끼리 있을 때는 친구니까.”

 미오가 두둔했다. 두 사람이 씩, 웃자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불안이 사라짐을 느꼈다. 또한 눈물을 참을 수 있었다. 조직을 물려받고 대의를 위해 살게 된 뒤부터 항상 그래왔다. 이 두 사람 앞에서라면 자신은 ‘보스’가 아닌 ‘아냐’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웃었다.

 “Спасибо…….”

 

 

 *

 

 나도 보고 싶었어!

 요즘 구역 관리하기 바빠 가지고.

 혼자서 힘들었지?

 무슨 소리하는 거야!

 진심으로 그런 소리하는 거 아닐 거라고 믿을게.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얼른 설명해.

 우리끼리 있을 때는 친구니까.

 

 머릿속에서 스치는 자신의 말들이 혼란스러웠다. 또한 스스로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지러웠다. 회의실에서 보았던 사진들은 죄책감이 들게 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패한 정부가 군림하고 빈민들이 죽어가는 세상에서 과연 마피아를 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체 정의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믿는 것을 정의라고 한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 걸까.

오랜만에 돌아온 그리운 저택에서 혼다 미오는 전혀 편안하지 못 했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할 일은 마쳐야 했다.

 그녀는 전화를 들고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잠깐의 신호 뒤 연결이 되었지만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계하는 것이다.

 미오는 신원을 밝혔다.

 “특수경찰 소속 혼다 미오. 보고 드립니다.”

 그 날은 이상하리만치 비가 쏟아지는 밤. 하늘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

 

 

2) 첫 기획

 

아냐 "......"

미오 "......"

시키 "......"

 

겨울P "어때?"

 

미오 "괴, 굉장해!"

미오 "이건 뭐랄까, 진짜 그, 영화 같아!"

 

겨울P "드라마 스토리야. 단편."

미오 "그래도! 뭔가 좀 본격적인 그런 느낌. 으으...... 나 혼자는 설명 못 하겠어!"

 

시키 "냐하. 백야가 드물게도 들떠 있던 이유가 있었네."

미오 "그거야! 이게 그러니까, 겨울P가 처음으로 만든 기획인 거잖아!? 그치?"

시키 "정확히는 처음부터 끝까지 백야가 만든...... 첫 단독 기획."

미오 "겨울P가 진행하는 일!"

겨울P "맞아."

 

겨울P "지금까지는, 선배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어."

겨울P "내가 기획을 내도, 누군가 다듬거나, 책임자가 바뀌거나 했지."

겨울P "하지만 이번엔, 온전히 내가 진행해."

 

아냐 "프로듀서가 우리를 위해, 기획한 일...... 인 거죠?"

겨울P "그래."

 

겨울P "다만, 문제는 있어. 이거 꽤, 본격적이거든."

겨울P "정통적인, 아이돌의 노선과는 많이 달라. 굉장히 무거운, 그런 분위기니까."

 

아냐 "그래도 좋아요."

아냐 "그야 이 기획...... прекрасно. 정말로, 정말로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겨울P "부담이 많이 갈 거야. 대사, 라던가."

아냐 "괜찮아요. 새로운 도전, 이니까."

겨울P "이미지가, 많이 달라질 수도 있고......"

시키 "그런 건 이미 위에서 판단 끝난 거 아닌가? 해도 된다고."

미오 "후후후. 연기파 아이돌 혼다 미오의 재능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고!"

겨울P "다들 괜찮다면, 좋아."

 

겨울P "스베르흐노비, 누아르 기획. 가자."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이 단편 드라마 기획은 뜻밖의 대성공.

그것이 이후 프로덕션의 주력 사업 시리즈가 되는 아이돌 누아르의 시작이었다.

 

 

 

 

 

 

 

 

 

 

뭔가 프롤로그 느낌입니다.

 

스베르흐노비сверхновый

본문에도 썼지만 러시아어로 초신성.

아나스타샤, 혼다 미오, 이치노세 시키로 이루어졌다는 설정의 가상의 유닛이자

드라마 속에서 세 사람이 속한 마피아 조직의 이름입니다.

 

유닛으로서는 별(아냐)과 별(미오)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폭발, 그로 인한 화학작용(시키)을 의미하는 이름입니다.

드라마 속에서도 의미가 존재하는데 그건 나중에 밝히겠습니다.

 

유닛 스베르흐노비는 팬들 사이에서는 줄여서 '스베르'라고 불립니다.

그냥 보기에는 전혀 연결점이 없는 아이돌들의 조합이라 시작은 꽤 의아한다는 느낌이었으나

겨울P가 직감을 발휘한 센스로 의외의 케미를 찾아내 근근히 활동하고 있었죠.

그리고 그 정점이 아이돌 누아르.

 

사실 작가의 편애를 굉장히 많이 받는 유닛이에요.

미오와 아냐가 제 타입별 최애들이고, 시키도 개성적이라 좋아하는 캐릭터.

공식에서의 접점이라고는 신년 극장에서 같이 나온 것 밖에 없지만

중간에 겨울P를 넣으니 하나로 묶여서 잘 움직여 줬습니다.

고마워 얘들아.

 

조직 스베르의 정확한 설정은 나중에.

분량도 퀄리티도 얼마 안 되는 저 소설을 쓰느라 오늘 뇌를 너무 혹사했습니다.

다음에 더 퀄리티 있는 이야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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