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e Line - 발큐리아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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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2, 2017 16:18에 작성됨.

질문이 들어와서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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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Valkyrie Experiment(ヴァルキュリア実験プロジェクト)

- 일본 내에서 추진되었던 실험 중 하나, 인체 실험으로 종전에 알려진 Super Soldier Project와는 별개의 프로젝트로 추진되었다. 나카소네 총리 재임기간에 추진된 강한 일본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 중 하나로 파악되나 정확한 내용은 불명. 일단 알려진 것은 Super Soldier Project와는 담당자, 담당 연구원들이 많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코드는 입실론. 따라서 통칭 입실론 프로젝트라는 명칭도 쓰였다.

갓 태어난 여아나 유치원 들어가기 전의 여아, 특히 부모가 없는 여아를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 ‘발키리의 혼을 이식한다.’라는 것이 주된 계획이었으며 이를 통해 강한 여성을 만들고 여전사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진행된 실험이었으나 실험 과정에서 성공률이 낮아서 말이 많았었다. 당시 초기에 예측한 성공률은 약 70%였으나 실제는 겨우 1%도 안 되는 수준.

1989년 쇼와 천황 사후 헤이세이 시대가 도래하면서 실험에 대한 이야기가 도시전설처럼 들려왔고 결국 90년대 초 사회당이나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에서 실험의 유효성 및 실체, 그리고 진상 등에 관한 반박을 제기하면서 실험이 일반인에도 조금씩 알려졌다. 당시 실험에 약 2000명의 어린 아이들이 동원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단 5명만 실험에 성공, 이후 그대로 동결을 가장한 폐기처리되었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가면 급히 수정된 수정란으로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었는데 이는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실험에 쓰인 애들의 향방은 현재 불명확하나 일설에 의하면 다들 세상 밖으로 나가서 살고 있다는 듯. 모두 어린 아이들이었으니까 아마 그렇게 되었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실험을 지휘했던 인사는 이후 학계에서 승승장구했다고 하나 이 부분은 현재 확인이 안 되고 있다. 또한 이 실험에는 하야미 카나데의 부모가 관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었으며 이 건으로 인해 하야미 카나데는 충격을 받고 회의 중 수사본부 건물에서 자해를 함으로 인하여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여파로 인해 반쯤 폐인이 될 뻔 했었고 결국 사건 종료 후 검찰을 떠나게 된다. 당시 하야미 검사는 수사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 나 같은 사람이 없어야 한다. 나는 저주받은 자.’라 하면서 법정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후 검찰을 그만 두고 후미카와 아리스를 찾으러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실험 대상자 중 현 수사본부에 있는 사람은 아래와 같다. 뒤에 나온 성공과 실패는 당시 실험 성공 또는 실패를 의미한다.

미후네 미유 - 실패
닛타 미나미 - 성공
사기사와 후미카 - 성공
아이바 유미 - 성공(유아를 이용한 실험 중 마지막 실험 성공자였음)
아나스타샤 - 실패(수정란을 이용한 첫 실험체 - 이후 현재의 모친에게 착상됨.)
타치바나 아리스 - 성공
타카모리 아이코 - 성공

이 외의 경우 확인이 안 되는 편. 이 때문에 이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수사본부는 발칵 뒤집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하야미 검사의 자해 사건으로 인해 그 사실이 알려졌다.

참고로 이 실험 이후 일본회의가 설립되었으며, 이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 중 많은 이들이 일본회의의 회원이 되었다. 이들을 한번에 때려잡자고 제안한 사람은 한국인으로 당시 수사본부에 있었던 송재혁이었으며 재혁은 이 작전과 함께 아카사카 프린스 하우스 클래식 건물을 인수하는 것까지 같이 실행했었다. 다만 후자의 경우 꽤나 늦게 성공시켰다는 듯. 당시 재혁이 아카사카 프린스 하우스 클래식 건물을 인수하려 한 이유는 한국사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자세한 것은 이 글을 한 번 긁어보시길)
(아카사카 프린스 하우스 클래식 건물은 본래 영친왕 이은공과 이방자 여사가 도쿄에서 거주하던 집이었다. 이후 1955년 프린스호텔이 인수하면서 구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의 본관으로 쓰였다가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이는 재혁이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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